연수를 떠나면서 필자가 세운 첫 번째 목표는 중국어 실력을 늘리는 것이었다.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언어 능력은 필수라고 생각해서다.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온
대학생들이 대부분인 어학연수 코스에 등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좀 더 명확한 목표가
있으면 동기 부여가 될 것 같아서 중국어 어학능력평가 시험인 HSK에도 몇 차례 응시했다.
연수 초기 만난 사람들 중에는 연수 왔으면 가족들하고 열심히 여행이나 다니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열심히 공부한 게 훨씬 잘 한 선택
이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1년 동안 다닌 푸단대 어학연수 코스는 A반부터 J반까지 10단계로 나눠져 있다.
한 학기에 2단계씩 올라가는데, 실력이 좋으면 월반도 가능하고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유급도 된다. 연수 떠날 당시 신SHK 4급 합격증이 있었던 필자는 반 편성 시험에서 4단계인
D반에 배정받았다. 교재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강의 내용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D반 수업이 이뤄지는 강의동은 좀 오래 된 건물이어서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화장실 가는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었고 처음에는 기초를 다지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서 푸단대에서 가장
시설이 좋은 100주년 기념관에서 수업이 이뤄지는 C반으로 내려갔다.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 건 시험을 봐야 하지만 내려가는 건 별도의 절차가 필요 없다.
C반으로 내려가니 선생님이 말도 천천히 하고 비교적 쉬운 단어로 설명을 해서 수업 듣기는
한결 수월했다. 하지만 내용이 너무 쉬워서 이렇게 공부하다가는 중국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는 언제쯤 가능할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HSK 시험에 응시하는 것이
었다.
HSK 교재를 사서 보니 학교 수업 내용 보다는 단어 수준도 높고 뭔가 도전해 보고 싶은 의욕도
생겼다. 독학을 하다 보니 학원에 다니는 게 훨씬 효율적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빨리
합격하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구베이에 있는 HSK 5급 대비 주말반에 등록을 했다. 구베이에서
제일 큰 학원인데도 불구하고 수강생이 4명에 불과했고, 필자를 제외하면 모두 중학생들이었다.
수업 끝나기 10분전부터 엉덩이가 덜썩 거리는 중학생들하고 수업을 듣고 있자니 ‘연수 와서,
그것도 주말에 뭐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연수 왔으니까 가장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으로 수업을 들었다. 당시는 중국어 공부가 가장 재미있었고 하고 싶은 일이었다.
푸단대에서 어학연수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인 12월 경험 삼아 5급 시험에 응시했는데
‘덜컥’ 합격했다. 신HSK는 각각 100점 만점인 듣기, 독해, 작문 세 영역에서 얻은 합산 점수
가 180점 이상이면 합격이다. 중국 주요 대학 석박사 과정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HSK 5급
성적표가 있어야 하며, 칭와대 같은 명문대는 비학위 과정인 진수생 과정에도 HSK 5급
성적표를 요구한다.
이왕 연수를 왔으니 HSK 6급 성적표도 따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6급 공부를 시작했다.
6급은 ‘넘사벽’이었다. 듣기 시험의 말하는 속도가 속사포처럼 빨랐고, 독해 지문도 5급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길고 어휘 수준도 높았다. 상하이에 연수 온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4급과 5급의 차이는 태산(1545m)과 황산(1873m)의 차이지만, 5급과 6급의 차이는 황산과
주산(珠山․에베레스트산의 중국식 명칭)의 차이’라는 말이 있는데 공부를 해 보니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HSK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니 학교 수업은 한결 쉬워졌다. 지난해 가을 학기에 D반까지 수료를
했으니 올해 봄 학기에는 E반 수업을 듣는 게 정상이지만, 봄 학기 시작 직전 반편성 시험을
봐서 두 단계 높은 G반으로 월반을 했다. 레벨이 올라가니 같은 반 친구들의 수준도 높고
중국어를 공부하는 태도도 진중해서 필자의 중국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됐다.
중국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던 필자의 와이프는 A반과 B반에서 강의를 들었는데 수업분위기가
중학교 같다며 불평을 했다. 대학 어학연수 코스에서 중국어 수업을 들을 생각이라면 가능한
레벨이 높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 게 한결 나을 것 같다.
연수가 끝나기 전인 6월 합격을 목표로, 4월에 경험 삼아 HSK 6급 시험에 응시했다.
시험 삼아 응시하긴 했지만 생각 보다 시험을 잘 본 것 같아 내심 기대를 했는데 결과는
4점 차이로 불합격이었다. 듣기와 독해에서 각각 76점과 61점을 받고도 작문에서 39점을 얻는데
그쳐 고배를 들었다. 정답이 있는 독해, 듣기와 달리 작문은 어떤 채점자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점수가 달라질 수 있어서 내심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쉬운 마음을 접고 6월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시험 준비를 하다 보니 중국어 실력도
자연스럽게 늘었다. 너무 빨라서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던 CCTV의 뉴스도 대략
내용은 파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중국 예능 프로그램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연수 막바지 필자는 연수의 큰 전리품을 하나 획득했다. 마음 졸이며 기다리던 HSK 6급 합격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연수 오면서 세운 목표를 연수 끝나기 전에 이뤄서 성취감이 느껴지고,
한번 낙방한 뒤에 얻은 합격이어서 기쁨이 2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