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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지금5(현대판노비문서, 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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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묵고 있는 외교학원에는 구내식당이 4곳 있다. 이중 자주 이용하는 곳이 좌석 50석 규모 남짓한 아담한 규모의 `콰이찬팅(快餐廳. 패스트푸드 식당이라는 뜻의 중국식 표기)’이다.

인상이 좋은 이 식당 주방장은 이름이 가오리차이(高立才)로 올해 41세이다. 강소성(江蘇省) 양주(揚州) 출신이다. 양주는 강택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출생지로 봄철 물안개가 그렇게 아름답다고 한다. 해물이 가득 담긴 `양주 볶음밥’ 등 중국 4대 요리의 하나인 회양채(淮揚菜)의 본산이기도 하다.

그는 양주에서 고중(高中. 우리의 고등학교)을 졸업한 뒤 대학을 가지 못하고 인민해방군에 입대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그가 고중을 졸업한 1978년, 문화혁명으로 10년 동안 대학에 가지 못했던 학생들이 한꺼번에 대학 입시를 치르기 위해 몰려든 바람에 대학 진학할 엄두를 못냈다는 것이다.

그는 그나마 군에 입대한 뒤 운이 좋게도 고향에서 멀지 않은 남경(南京)에 배치를 받았다. 같은 고향 입대자 30명 가운데 26명이 사막 바람이 휘날리는 신강(新疆)에 간 반면, 그를 비롯한 고중 졸업자 4명은 남경에서 일했다. 5년 동안 군대 생활을 하면서 요리 기술을 익힌 그는 길림성(吉林省)에서 4년 동안 요리사로 일하다가 91년, 북경에 왔다. 3번이나 식당을 옮긴 끝에 그는 2000년3월, 꿈에 그리던 식당 주인이 되었다. 북경의 식당에서 알게 된 `콰이찬팅’ 주인의 소개로 외교학원 구내식당의 하나인 이슬람 식당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본인이 직접 요리를 맡고 여종업원 2,3명을 데리고 하던 이슬람 식당은 하루 평균 수입이 2,000 위안(우리 돈 32만원 정도)을 넘었다.

꿈과 같은 세월을 맞았던 그는 그러나 불과 6개월만에 식당 운영을 포기했다. 학교 당국이 그가 북경사람이 아닌 `외지인’ 이라는 이유로 구내식당 운영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한 것이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지금의 구내식당인 `콰이찬팅’의 임시공 주방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가 지금 받고 있는 월급은 1,500위안(우리 돈 24만원) 정도. 하루벌이가 졸지에 한달벌이가 된 셈이다. 그는 고향에 있는 아내와 중학교 2학년인 딸과 헤어져 교내 기숙사에서 다른 요리사들과 단체 생활을 하고 있다.

가오리차이 주방장과 같이 현재 북경에서 임시공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2백70만명. 북경 인구가 1천3백만명이라고 하면 그중 20% 이상이 외지에서 북경에 돈 벌려고 온 것이다. 이는 당국에 정식 등록한 것만을 가리키는 것이며 실제로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식당이나 공사판에서 힘든 막노동을 헐값에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1958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호구(戶口)’라는 이름의 호적 제도는 농민들의 도시 유입을 철저하게 막는데 목적을 두었다. 그러나 개혁개방정책으로 농촌에서 사는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몰려들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들 농촌 출신의 젊은 노동자(남자들은 打工仔(다꿍쯔), 여자는 打工妹(다꿍메이)라고 한다)들은 도시 호구가 없어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자녀를 학교에 보낼 수 없는 등 각종 불이익에 시달리고 있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지 못하는가 하면 `농민공’이나 `유동인구’로 불리는 등 사회적인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자 이들 농촌 출신 노동자들은 호구가 `현대판 노비문서’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가 2001년3월, 호적제도에 대한 제한을 고치도록 지시한 것을 계기로 대도시마다 나름대로 호구제도 개혁을 시작했다.

물론 개혁의 혜택을 손쉽게 받는 것은 아니다. 북경의 경우 연간 세금을 80만 위안(우리 돈 1억3천만원 정도) 이상 내야 하고, 전체 종업원의 90% 이상을 북경 사람으로 채용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자격 요건을 달고 있다. 웬만큼 큰 사업을 벌이지 않고서는 꿈도 못꿀 만큼 문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 호적제도의 피해자인 농촌 출신의 `임시공’들의 불만이 갈수록 높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중국 정부의 두뇌집단인 사회과학원 사회정책연구센터는 호적제도의 개혁은 대세라면서도 점진적이며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호구 제한을 풀면 농민들의 도시 유입이 폭발적으로 늘어 사회 안정이 흔들릴 것이고, 이를 무시하면 농촌 출신자들이 불만을 품고 사회불만세력으로 성장할 것이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도시 거주민들의 불만을 사지 않고, 농촌 출신의 `임시공’들의 거센 요구를 들어주면서, 현재 중국 지도부가 가장 신경쓰는 사회 안정마저 꾀해야 하는 이 어려운 문제를 중국 정부가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