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2/잃어버린 세대, 중국의 50대>
산시성 여행단의 일원으로 이번 국경절 여행에서 만난 궈스성(郭仕昇) 선생(55)은 장쑤성 난징에 살고 있는 국영기업 퇴직 노동자이다. 그는 `중국의 잃어버린 세대’라고 할 수 있는 50대. 문화혁명 등 모진 세월을 거쳤다. 초대형 국영기업인 중국전력 산하 장쑤전력에서 일하다 2년전 명예퇴직한 그는 같은 회사에 다니던 부인(50)마저 최근 명예퇴직을 당해 `위로 관광’을 온 것이다.
궈 선생은 10월 1일 아침 산시성 우타이산 룽화 빈관 1층 로비에서 『한국에서 왔느냐』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후 3박4일 동안 한 방에서 지내면서 본인이 걸어온 인생 역정을 이방인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했다.
난징 태생인 그는 고등중학(고중·우리나라의 고등학교에 해당함)을 졸업하던 해, 문화혁명(1966년~76년)이 일어났다. 이후 6년 동안 장쑤성의 한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지어야 했다. 문화혁명으로 10년 동안 대학을 비롯, 중국의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인생의 황금기에 대학 진학은 커녕 시골에서 세월을 죽인 것이다. 그는 출신 성분도 나빴다. 부친이 국민당 출신이었다. 따라서 출세를 보장해주는 공산당 입당은 엄두도 못냈다. 학교 졸업장을 가지고 어렵사리 장쑤전력에 들어간 것이 직장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나마 안정적인 일자리로 `철밥통’의 대명사인 국영기업마저 구조조정 바람으로 그는 예정에도 없이 옷을 벗어야 했다. 국영 기업의 정년은 남자 60세, 여자 55세이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영 기업 노동자 대부분은 정년이 되기 전에 명퇴금을 받고 나와야 하는 것이 대세라는 설명이다.
그가 요즘 살고 있는 곳은 난징예술학원 패밀리 아파트. 장인과 장모, 두 분이 이 학교 조각과 교수로 재직한 덕에 얻은 것으로 1만 위안(우리돈 1천6백만원)을 주고 아예 사버렸다고 한다. 학교 교수들이 주로 사는 이 곳도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현직 교수들은 개혁 개방 정책의 덕분으로 자동차 등 각종 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지만 은퇴한 교수들은 자전거를 타고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전만 해도 교수들은 학교서 나오는 100위안 정도 남짓한 월급으로 살았을 뿐 그들의 작품은 모두 국가 소유가 된 때문이다.
은퇴 생활을 하는 그의 자랑거리는 잘 나가는 외동딸. 올해 28세인 딸은 남부 지방의 명문인 난징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현재 베이징의 유명 제약회사 경리(중국의 경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경리 직원이 아니라 부문 책임자로 부장 정도로 보면 된다)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인들이 많이 몰려 사는 베이징의 대단위 중산층 아파트 단지인 왕징의 아파트(28평, 방 2칸 짜리)와 푸캉 자동차(프랑스 시트로앵의 중국 합작공장이 생산한 중형차)를 이미 장만했다고 한다. 다만 딸이 신세대 여성답게 직장 생활 재미에 푹 빠져 결혼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툴툴거렸지만 실제로는 이방인에게 딸 자랑하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는 본인의 인생 역정을 얘기하면서도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 덕분으로 정말 좋아졌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여행 기간 내내 상태가 신통찮은 도로를 쿠션이 별로인 중국산 `황하이(黃海)’ 45인승 관광버스로 달려 그다지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예전보다는 도로나 자동차 사정이 몰라보게 나아졌다며 모든 것이 개혁 개방 덕분이라고 했다. 그는 또 부인이 이번에 직장을 잃기는 했지만 이미 집을 장만한데다 본인과 부인이 연금으로 각각 월 1200위안(우리돈 19만2천원)씩 받고 있어 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했다. 10월4일 밤, 베이징에서 헤어지면서 『난징은 5월과 10월이 가장 좋다』며 내년 5월에 꼭 찾아오라고 주소와 전화 번호를 적어주는 호의도 베풀었다. 시간이 많아 관광 안내는 확실하게 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의 50년 인생을 보면 제대로 풀린 게 없고 속상하는 일만 계속 생긴 것 같다. 그럼에도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고 농담을 즐겨 던지곤 했다. 현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낙천적인 성격의 중국인 전형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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