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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개인적인, 미국 도착 후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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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전혀 아닌데, 두 번째 연수기를 쓰려고 노트북을 펴든 날이 2025년 11월 6일이다. 8월 7일에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탔으니 절묘하게도 딱 세 달 됐다. 세 달이면 연수기간의 25%가 지나갔다는 건데 시간 참….

조금만 더 지나면 도착 후 좌충우돌했던 한 달간의 일들을 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노트북을 열었다. 지금이야 일상이라 일컬어도 될 만큼 이곳 생활이 어느 정도 자리 잡혔지만, 첫 한 달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미국 생활의 필수품인 차량 관련 문제가 골치 아팠다.

운전면허

내년도 연수를 준비 중인 이들에게 “노스캐롤라이나(NC)에 온 걸 후회하지 않는다. 강력하게 추천한다”고 말하고 싶다. 진심이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걸 꼽자면 운전 면허다.

한국의 운전면허가 미국에서 그대로 통용되는지 여부는 각 주마다 다르다.  인정해주면 상대적으로 매우 편하다. 면허증 들고 가서 바꾸면 그만이니. 연수생들이 많이 가는 워싱턴이나 조지아가 그렇다. NC는 그렇지 않다. 한국 면허증으로 60일간 운전할 수 있다. (참고로 입국 시 국제 면허증을 굳이 따로 발급받을 필요는 없다. 면허증 뒤에 있는 영문 면허로 갈음된다.) 60일 기간 안에 필기 시험과 주행 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면허 시험 자체는 어렵지 않다. 영어로 필기 시험쳐야하냐고? 한글로도 볼 수 있다. 실기시험은 더 쉽다. 시험관이 얘기하는 최소한의 영어만 이해하면 될 정도다. 그럼에도 면허 따는 게 난관인 이유는 외국인은 물론,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 때문이다.

DMV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 새벽 4시부터 줄 서 있던 필자가 접수를 마친 뒤 나갈 때 찍은 사진이다. 캠핑 의자를 눈여겨 보시라.

우리로 따지면 교통관리공단과 교통경찰의 결합 비슷한 DMV는 어느 주를 막론하고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필자의 거주지 30㎞ 안에 DMV 사무실이 네 곳가량 있지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면허 시험을 보려면 오전 4시엔 DMV 사무실 앞에 가서 줄을 서야 한다. 인사 취재를 하느라 실력자들 집 앞에서 밤샘 뻗치기를 한 게 언제였더라…. 그 이후 새벽 뻗치기는 참 오랜만이었다.

뻗치기는 필기 때 한 번, 실기 때 한 번 최소 두 번이다. DMV 업무 시작 시간인 7시에 가면 안 되냐고? 안 된다. 새벽 4시부터 5시 사이에 길게 늘어서있는 민원인들을 업무시간 내 다 소화하리란 보장도 없다. 실제로 족히 70대는 돼 보이는 백인 할머니가 “아니, 그 새벽에 와야 한다고? 몸이 안 좋아서 힘들어”라고 항의했지만 “미안, 그런데 어쩔 수 없어”라고 답한 뒤 돌려보내는 장면을 봤다.

그래서 팁 아닌 팁을 주자면, 미국에 입국한 극 초반, 시차 적응이 안 됐을 때 필기와 실기 시험을 해치우는 걸 추천한다. 그리고 뻗치기 하러 갈 때는 휴대전화 배터리를 충분히 충전하고, 이어폰도 챙기자. 캠핑 의자를 갖고 가면 두 다리에 덜 미안할 거다.

NC의 UNC로 연수를 계획 중인 이들에겐 힐스보로(Hillsborough)의 DMV를 추천한다. 여기는 시험을 볼 수 있을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무한정 기다려야하는 여타의 DMV와 다르다. 오전 6시50분이면 어김없이 직원이 등장해 대기 중인 이들이 이날 필기나 실기 시험을 볼 수 있는지, 있다면 몇 시에 오면 되는지 등을 고지해준다.

이 종이 쪼가리를 얻기 위해 새벽 4시부터 3시간 가까이 뻗치기를 했다. 받는 순간은 정말 많이 기뻤다.

뻗치기 끝에 면허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난관은 또 있다. 미국 면허 시스템은 한국과 판이한데, 일단 필기 시험에만 합격해도 연수 면허증 성격인 ‘Learner’s permit’을 출력해준다. 말 그대로 A4 용지에 출력해주는데, 이걸 갖고 다니면 국제 면허증과 별개로 출력일부터 60일간 운전할 수 있다. 이후 실기에 합격하면 그 직후부터 다시 60일간 사용할 수 있는 임시 면허증을 A4지에 출력해준다.

참, 실기 시험은 DMV에 비치돼있는 시험용 차로 보냐고? 아니, 렌터카든 구입한 차든 응시자가 직접 차를 몰고 가야 한다. 이때는 심지어 운전자 보험도 든 상태여야 한다. 이 글만 봐도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할 법하다. A부터 Z까지 설명하려면 1만자는 써야할 것 같으니, 보험 관련 얘기는 다른 정보를 참고하길 바란다.  

실기에 합격하면 DMV에서 미 이민국에 내 정보를 보낸다. 이후 여러 내부 조사를 거쳐 플라스틱으로 된 정식 면허증을 우편으로 발송해준다. 여기서도 문제가 생긴다. 정식 면허증을 받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제각각이란 거다. 필자의 경우 60일이 지나도록 면허증을 못 받았다. 미 이민국 조사 절차가 통상보다 길어졌다는 건데, 속시원하게 설명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실기 합격 64일 만에 정식 면허증을 받아들었다. 이날 동네 방문 학자들과 함께 집에서 축하파티를 했다.

차량 구입

연수기간 중 집 렌트비 다음으로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게 자동차 구입이다. 만만찮을뿐더러 중요한 과제다. 개인 간 거래를 통하거나 카맥스(Carmax)로 대표되는 중고차 업체를 통해 구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다.

필자가 구입한 중고차(왼쪽)와 입국 후 2주 가량 타고 다니던 렌터카.

개인 간 거래가 무탈하게 진행되는 게 가장 좋을 테다. 연수생들의 특성상 원격 거래가 대부분인데, 대체로 무탈하지만 가끔 자동차 거래로 속을 썩이는 경우를 본다. 그렇지 않으려면 일일이 하나하나 다 챙겨야 하는데, 한국에서 업무와 병행하기 쉽지 않다.

이런 게 싫어 애초 미국 내 가장 큰 중고차 매장인 ‘카맥스’에서 차를 사자고 정하고 왔다. 웬걸, 카맥스에서 차를 사려면 플라스틱 운전면허증(정식 면허증)이 있어야 한다. 앞에 길게 썼듯이 면허를 따고 정식 면허증을 발급받기까지 한 달 이상 걸리기 일쑤다. 그 기간 내내 차를 렌트해서 타는 건 경제적이지 않다.

다행히 미국에선 현대나 혼다, 도요타 등 각 자동차 브랜드들이 ’인증 중고차‘를 판매한다. 차를 매입해 정비를 싹 마친 뒤 되파는 거다. 가격은 통상의 거래보다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결과적으로 인증 중고차를 구입해 타고다니는 중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별 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