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의 1년 해외 연수가 결정되었을 때, 설렘 뒤에는 곧바로 ‘생존’에 대한 걱정이 뒤따랐습니다. 여덟 살, 두 살인 두 아들이 이웃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 그러면서도 학교 평점과 수영장 같은 커뮤니티 시설까지 갖춘 집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냉혹한 예산 앞에서 스트레스는 커져만 갔죠. 결국 ‘타운하우스냐 아파트(콘도)냐’가 최대 고민이었습니다. 워싱턴 D.C. 인근 북버지니아 지역으로 오실 다음 연수자분들을 위해 제 경험을 공유합니다.

대중교통, 학교 평점의 환상을 버려라
한국에서 집을 구할 때처럼 ‘역세권’을 우선순위에 두는 것은 큰 패착입니다. 미국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 주거지는 극히 드뭅니다. 차라리 주요 지하철역까지 차로 몇 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편이 현명합니다. 다행히 워싱턴 D.C. 외곽 지하철역에는 대규모 환승 주차장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버스 노선은 이용할 일이 거의 없으니 고려 대상에서 제외해도 무방합니다.
첫째 아이의 학교 평점도 고민거리였습니다. ‘GreatSchools’ 사이트를 드나들며 평점 6점 이상의 학군을 뒤졌습니다. 연수자들이 선호하는 평점 9점짜리 인기 지역도 있지만, 저는 조금 더 서쪽 외곽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경험해 보니 초등학교 저학년(초2 이하)이라면 학교 평점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초등 교육은 학습보다 활동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교사마다 역량 차이는 있을지언정 커리큘럼 자체는 대동소이하기 때문입니다.

‘사진발’에 속지 말 것
지역을 정한 뒤 본격적인 매물 찾기에 나섰습니다.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운 타운하우스를 우선순위에 두었지만, 관리가 어렵고 단기 렌트 매물이 귀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예산과 학군을 동시에 만족하는 타운하우스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결국 저희는 ‘아파트 3층 복층’이라는 의외의 선택을 했습니다. 사진 속 아늑한 분위기와 수영장 시설, 그리고 자금 압박에 굴복한 결과였습니다. “층간소음은 우리가 조심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현실과 타협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고생의 시작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SSN 없는 외국인의 집 계약 기술
미국은 철저한 신용 사회입니다. 사회보장번호(SSN)가 없는 외국인이 집을 계약하고 전기, 인터넷 등을 신청하는 과정은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리얼터 활용. 집주인이 있는 매물은 반드시 리얼터를 통하시길 바랍니다. 직장 연수 서류, 체류 증빙, 재정 증명 등을 꼼꼼히 준비해야 합니다.
잔고 증명 ‘품앗이’. 신용점수가 없는 연수자에게는 통장 잔액 증명이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일시적으로라도 한국 통장에 목돈을 넣어 잔고 증명서를 떼는 것을 추천합니다.
실시간 화상 답사. 시차를 계산해 가며 리얼터와 카카오톡 영상통화로 매물을 실시간 확인하는 과정은 필수입니다.

어린 자녀가 있다면 타운하우스 추천
미국에 도착해 마주한 집은 기대만큼 예뻤습니다. 넓은 수영장은 아이들의 천국이었고, 집 근처 마트는 생활의 질을 높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복병은 27개월 막내의 엄청난 에너지였습니다. 영상통화 화면에는 담기지 않던 아이의 활동량은 목조 건물의 바닥을 통해 확성기처럼 아랫집에 전달되었습니다.
미국은 대개 아이들에게 관대하여 층간소음 컴플레인이 법적으로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이웃의 성향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저희 아랫집 이웃은 매우 예민한 편이었고, 마룻바닥에 매트를 겹겹이 깔아보아도 목조 건물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내의 일기장에는 지금도 “다시 돌아간다면 무조건 타운하우스”라는 회한 섞인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타운하우스라고 소음에서 100% 자유로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수직 소음’의 고통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은 운에 맡겨야겠지만, 활동적인 아이가 있다면 조금 외곽으로 나가더라도 타운하우스를 선택하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