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화되는 미국 레스토랑들
연수 전에 가지고 있던 미국 식당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런 것이었다. 팁 주기 번거롭고, 여전히 카드를 안 받는 곳도 많으며, 피자 정도를 빼면 배달은 거의 기대할 수 없는 곳. 현지에 와서 지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코로나가 불러온 변화의 물결 앞에서 미국의 식당들도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오미크론이 폭발적으로 확산하던 올해 초엔 식사시간에도 텅 빈 식당을 볼 때가 많았다. 마스크를 벗어야 하는 실내 식사를 꺼리는 사람이 늘면서 이곳에서도 이제 배달과 포장은 대세가 된 듯하다. 그 중간쯤 되는 커브사이드 픽업(curbside pick up)도 있다. 주문한 음식을 찾으러 가게에 들어갈 필요 없이 식당 앞에서 연락하면 점원이 포장한 음식을 가져다 준다. 차로 오는 손님을 위해 15분만 이용 가능한 커브사이드 픽업 전용 주차 구역을 마련해놓은 레스토랑도 있다.
이런 서비스는 대개 스마트폰 앱을 통해 이용한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Uber eats를 포함해 Postmates, Caviar, Seamless, Doordash, Grubhub 같은 음식 주문 앱이 자주 쓰인다. 동네 피자 가게들만 모아놓은 피자 전용 앱도 있는데, 주문할 때 피자 한 판을 반으로 나눠 양쪽에 각각 다른 토핑을 추가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예컨대 ‘치즈 피자 라지사이즈에 한쪽은 페퍼로니, 베이컨 추가하고 나머지 반쪽은 치즈만 더 올려주세요’ 같은 주문을 전화 영어로 하기 어렵다면 편리한 대안이 된다.
그리고 이런 서비스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구글이 있다. 현지인처럼 주변 식당 정보가 어느 정도 머릿속에 저장돼 있다면 한국에서 배달의민족을 이용하듯 필요한 주문 앱을 바로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연수생들처럼 그렇지 못한 경우, 특히 정보가 부족한 정착 초기엔 근처에 어떤 식당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구글맵을 자주 쓰게 된다. 지도상의 식당을 선택하면 주요 메뉴, 가격대, 위치, 영업시간, 식당 내외부 및 음식 사진, 이용객 리뷰 같은 정보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고 ‘온라인 주문’을 누르면 앞서 언급한 주문 앱들의 목록을 보여준다.
이런 변화 덕에 팁 주기도 편해졌다. 미국인들은 번거로운 팁 문화 그 자체를 바꾸기보다는 팁도 첨단 방식으로 주는 방법을 찾은 모양이다. 미국 식당에선 통상 이용금액의 15~20%를 팁으로 준다는 것을 알지만,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그 팁을 어떻게 줘야 하는지는 종종 헷갈린다. 미국에 와서 처음 식당에서 카드로 결제하고 영수증을 받았을 때 잠시 당황한 기억이 있다. 팁을 직접 적게 돼 있는데, 15%나 20%처럼 비율로 적는지 $5.00처럼 액수로 적어야 하는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런 경우 보통 액수로 적는다. 세금이 붙어 총액이 $10.03으로 나왔다면 팁을 $2.97처럼 적어 끝전을 없애기도 한다. 식당에서는 손님이 적어낸 팁 액수를 합쳐 최종 결제금액을 처리하는데, 팁을 서버에게 직접 현금으로 건네는 경우에도 이 칸에 ‘cash’라 적고 비워두지는 말라는 충고가 인터넷에 있다. 빈칸으로 뒀더니 식당에서 멋대로 높은 금액의 팁을 청구했다는 경험담도 볼 수 있다.)
음식 주문 앱은 팁까지 함께 결제할 수 있도록 돼있어 이런 고민이 필요없다. 식당에서 식사하지 않고 포장, 배달로 주문해도 봉사료격인 팁을 줘야 하는지 조금 억울(?)할 때도 있지만 현지인들은 적게라도 주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결제 과정에서 (전체 금액의) ‘15%’, ‘20%’ 같은 옵션을 줘서 손님이 팁 액수를 일일이 입력하는 수고를 덜어주기도 한다. 이것은 식당 계산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카드를 건네면 직원이 결제 기기 화면을 손님 쪽으로 돌려준다. 거기에 뜬 팁 옵션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간혹 이 옵션이 (10%나 15%가 아니라) 18%부터 시작할 땐 은근히 괘씸하기도 하다. 물론 ‘No Tip’도 있고 ‘Custom Tip’을 선택해서 직접 금액을 입력할 수도 있지만.
테이블에 앉으면 점원이 메뉴판 대신 QR코드가 인쇄된 카드를 가져다주는 곳도 있었다. 스마트폰으로 코드를 스캔해서 화면에 뜨는 메뉴를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인터넷 사정이 한국과 다르다 보니 메뉴는 뜨지 않고 화면에 동그라미만 뱅글뱅글 돌기도 한다. 이럴 땐 물론 재차 청하면 종이로 된 메뉴판을 가져다 준다. 스마트폰 만능의 시대에도 우리에겐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