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가 다니는 미국 초등학교를 지켜보면 미국이 초등교육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게 된다. 한국보다 교육과정이 느리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미국 초등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습 측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초등학생들이 이 사회에서 얼마나 환영받는 존재인지 가르치고, 학생들이 어려서부터 지역사회에 서서히 스며들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끊이지 않는 등교 지원
초등학교 등교 첫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선생님들이 모두 학교 정문에 나와 자차로 등교하는 아이들을 한명 한명 맞이해주는 것이었다.
등교 첫날이니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장면은 미국 생활 6개월째인 오늘 아침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이면 모두 우산을 쓰고 나와 아이들을 한명 한명 학교 입구까지 데려다준다. 이로 인해 등교 시간이 지체되는 면도 있지만, 아직 불평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등교 한 달쯤 지나니 선생님(교직원 포함)들과 함께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등교 지원을 나와 동생들과 동급생들의 등교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등교 지원을 나온 학생들과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학부모들이 아침마다 반갑게 안부를 주고받는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한겨울에도 두터운 점퍼와 털모자로 몸을 감싸면서도 등교 지원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뿐 아니라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인근 고등학교와 중학교의 운동부와 치어리더 학생들이 아이들의 등교 지원에 나온다. 중·고교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시간이 되는 동시에 지역사회와 학교가 자연스럽게 ‘긍정적 접점’을 쌓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미국도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지만, 이처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학생들이 지역사회와 접점을 맺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에겐 즐거운, 부모에겐 버거운 끝없는 기념일들
미국의 초등학교가 한국 학교와 확연히 다른 한 가지는 부모가 챙겨야 할 각종 기념일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에는 ‘등교 50일’ ‘등교 100일’ 기념 이벤트까지 있는데, 등교 50일 기념일에는 1950년대 복장을 입고 오고, 등교 100일에는 100세 노인처럼 입고 오거나 100가지 무늬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오는 식이다.
그뿐 아니라 핼러윈 주간에는 ‘잭오랜턴’(핼러윈 호박 장식)을 직접 사서 꾸며서 학교에 가져가야 한다. 핼러윈 코스튬을 입고 등교하는 날도 있는데, 그 전에 이 코스튬과 관련한 책을 구해 발표회도 한다. 크리스마스 기간도 만만치 않다. 이때는 아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요일별로 입고 오는 품목이 정해져 있다. 월요일은 핼러데이 잠옷, 수요일은 핼러데이 영화 캐릭터, 금요일 핼러데이 스웨터를 입고 오라는 안내가 온다.
한국에서라면 한 번도 없었을 것 같은 다채로운 이벤트가 한 학기에도 몇 번씩 열리다 보니 아이들이 지루할 틈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 또 ‘빙고 나이트’나 ‘무비 나이트’ 등 학교 운동장과 야외 마당 등을 이용해 지역사회와 함께 진행하는 행사도 때마다 열린다.
다만, 연수생의 신분으로는 이 모든 이벤트를 다 챙기는 것이 만만치 않다. 당장 1950년대 복장이라고 하면 뭘 사서 입혀야 하는지, 핼러데이 스웨터는 또 뭔지 결국 고민 끝에 동네 백화점에 나가 다른 학부모에게 물어보고서야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어떤 이벤트도 참여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이 다 입고 올 것이 뻔한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 입혀서 보내지 않을 수 없다보니 소요되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자녀에게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세요”
미국 초등학교 행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All Pro Dad’라는 행사였다. 아버지가 자녀와 함께 30분 먼저 등교해 함께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프로그램으로 플로리다주에 기반을 둔 비영리 단체 Family First의 아버지 프로그램이다.
행사 참여 전에는 단순히 아이와 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하면서 친밀감을 높이는 행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외로 행사의 내용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행사가 시작되면 진행자가 테이블에 올라 “자신의 자녀의 자랑스러운 점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식당 이곳저곳에서 손을 들고 자신의 자녀가 자랑스럽다고 얘기하는데, 대부분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어서 자랑스럽다’ ‘이른 시간에 등교함에도 불평 없이 학교에 와주어 자랑스럽다’는 정도의 평범한 얘기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자랑스럽다고 얘기해주는 아버지를 직접 보는 자녀에게는 굉장히 긍정적인 경험이 될 것 같다.
이후 각자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다른 부모에게 자기 자녀의 어떤 점이 자랑스러운지를 이야기하고 또 그 이야기를 직접 아이들에게도 들려준다. 이어 매달 정해진 주제와 관련된 영상물을 시청한 뒤 자녀와 함께 식사를 하며 토론하게 한다.
부모도 자녀도 모두 지나치게 바쁜 한국 학교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도 이런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