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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운전면허 합격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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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운전면허 합격 수기

캘리포니아에는 두 부류의 외국인이 존재한다. 신분증으로 캘리포니아 주 공인 운전면허증을 소지한 사람과 투박한 여권을 들고 다니는 사람.
이 글은 미국 입국 100일 만에 캘리 면허증을 획득한 합격 수기다. 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캘리 면허증을 받은 뒤 미국 역시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했으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만은 아닌 것을 뒤늦게 느끼고 씁쓸하기도 했다.

미국 대부분의 주가 한국 면허증을 미국 면허증으로 교환해주는 것과 달리 캘리포니아주는 아직까지 한국과 면허 교환 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상태다. 국제면허증을 발급해 갔지만 단기 관광객 외에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자칫하다가는 무면허로 걸릴 위험이 있는 셈이다. 결국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8살 미국 애들과 함께 줄을 서서 면허를 따야만 한다.

운전 경력 25년에 우습게 보였던 캘리 면허증은 첫 DMV(Department of Motor Vecicles) 방문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우리로 치면 운전면허 관리공단 격인 DMV 직원은 ‘KING OF KINGS(KOK)’이었다. 삐딱하게 앉아 옆 사람과 농담을 하면서 민원인과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하는 신묘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필기시험을 보기 전 시력 검사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KOK가 손가락으로 가리켜는 알파벳이 검은 똥처럼 보였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 전날 밤을 샌 탓인지, 아니면 출국 전날 운전용 안경을 맞추고 안경점에 안경을 놔두고 온 탓인지 아무튼 안보였다.
KOK는 무심하게 안경을 맞추고 다시 오라고 했다. 이대로 돌아가면 다시 며칠을 허비해야 한다. 아내의 안경을 끼고 눈을 부릅떴다. ‘z’를 ‘제트’로 발음하는 내 옆구리를 찌르며 “삼촌 짓, 짓”이라고 해준 조카 덕에 어렵게 통과할 수 있다.

2차 관문인 필기시험은 무난했다. Langage problem이 있는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컴퓨터로 서서 보는 시험에는 한글 버전이 준비돼 있었다. 면허증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 실기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또 다시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캘리포니아 거주민의 필수품인 캘리 면허증을 원하는 수요는 많은 반면 DMV 직원의 일처리 속도는 세종시 한솔동사무소 3번 창구 직원의 3% 수준이기 때문에 한 달 대기는 기본이었다.

필기 통과 후 한 달을 기다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왔다. 시험 전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실기시험 영상을 유튜브로 수십 번 반복 학습했다. 차선을 바꿀 때 어깨까지 목을 돌려 체크를 하는 오버액션(얘들은 쇼울더체크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전방주시를 태만히 하고 머리를 통째로 돌리는 게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을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드디어 실기시험 당일. 차에서 한 시간 넘게 대기하며 긴장감이 짜증으로 바뀔 무렵 엑셀을 밟고 출발. 하지만 5분 만에 쇼울더 체크한번 제대로 시현하지 못한 채 실격처리를 당했다. 시속 40마일 속도제한 도로에 접어들어 가속을 하려 할 때 일본 국적으로 보이는 동양계 남자 시험관은 “좀 더 속력을 내야한다”고 했다. “Okay”라 말하고 속도를 올리려는 찰라 30마일 밑으로 달렸단 이유로 출발점으로 바로 유턴해야 했다. 허탈하게 차에 앉아있는데 자기차를 몰고 룰루랄라 퇴근하는 시험관을 목격했다. KOK는 한국 프로야구 심판들이 자주 욕먹는 ‘퇴근본능’마저 탑재하고 있었다.

‘헬 아메리카’를 되뇌며 집에 돌아왔다.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움켜쥐고 다음 시험 일자를 알아보니 집 근처 시험장은 두 달 넘게 기다려야했다. 집에서 100km나 떨어진 테메큘라라는 곳에 있는 DMV가 그나마 한 달 정도만 기다리면 됐다. 주변에서 1년 연수로 이곳에 와서 3번 면허 실기시험에 떨어졌더니 9개월이 지났다는 얘기가 남 일같지 않았다. 아예 캘리포니아에서 면허 따기를 포기한 한국 택시기사 출신 분도 계셨다는 슬픈 전설도 있다.

배수의 진을 쳐야 했다. 세종시에 있는 회사 후배에게 한솔동 배달안경점에서 놓고 온 안경을 찾아 항공 우편으로 배달해달라고 부탁했다.
9.11 사태보다 더 참혹한 9.10 사태를 만들 순 없다고 다짐하며 9월10일 아침 아이 둘을 차례로 등교시키고 홀로 한 시간을 달려 약속의 땅에 도착했다. 나이가 지긋한 털보 백인 시험관이 출발에 앞서 한국 면허증이 있냐고 물어봤다. 25년 운전경력이라고 하자 근데 왜 떨어졌냐며 의아한 표정을 졌다. 경색된 한일관계 때문이었다고 답하려다 이번엔 출발도 못하고 떨어질까 그냥 나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랬다. 나는 운전을 잘하는 게 맞았다. 15분간의 오버액션과 완벽한 코너링으로 합격 커트라인인 15개의 절반인 7개만 지적받고 합격했다. 시험관으로부터 “good job”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창구에 채점지를 가져가니 임시면허증을 줬다. 한 달 내 면허증을 보내준다는데 주소가 예전 누나집으로 돼 있었다. 바꿔달라 하니 KOK가 웃으며 말했다. “너가 온라인으로 바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늦은 아침으로 인앤아웃 버거를 먹으며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궁금해 하는 아내에게 말했다. “캘리포니아에는 두 부류의 외국인이 있는 거 알아?”

사진 1캘리포니아 운전면허 실기시험 채점지. 평생 간직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다시 역경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한 달이 지나도 기다리는 면허증은 오지 않았다. ‘미국은 인내심 없이 살수 없지.’ 하며 참았다. 그러나 또 보름이 지났지만 매일 아침저녁으로 확인하는 메일함에는 마트 광고전단만 가득했다. DMV에 메일을 보냈다. 내 억울함을 구구절절 설명했지만 답변은 간단했다.
‘It’s not my business.’ 니 개별적 사정을 우린 확인해 줄 수 없으니 가까운 DMV에 가보라고 했다. 다시 두세시간 줄을 서 거만한 KOK를 만날 생각을 하나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때 한 팁을 얻었다. DMV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계정에 댓글을 달면 바로 해결해준다는 것이었다. 내 페이스북 친구 1000명이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체면보다는 운전면허증이 절실했다. 과연 페이스북의 위력은 대단했다. ‘It’s not my business.’ 라던 계정에서 이메일 답변이 왔다. 너의 비자 확인에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실무부서와 협의해 해결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100일 만에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을 받았다. 그리고 며칠 뒤 우연히 한 지인과 얘기를 하다가 캘리포니아에서 암약중인 한국인 면허 브로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일부 한국 공무원들이 알음알음 이용하는 이 브로커에게 200불만 쥐어주면 이틀 만에 실기시험을 보고, 합격을 보장해 준다는 이야기였다. 최근 이 브로커를 통해 운전면허를 받은 공무원도 실제 있었다고 한다.

아! 기자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사진 2캘리포니아 운전면허를 소지한 본인이 두 딸들에게 운전 연습을 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