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린이’ 날다… 캠핑 초보의 도전기
미국 서부지역은 그야말로 ‘캠핑’의 천국이다. 요세미티, 그랜드캐년, 옐로우스톤, 글래이셔 등 유명한 국립공원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보니 캠핑이 최고의 여가 일상 중 하나가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우리 가족은 한국에서 모든 것이 갖춰진 ‘글램핑’ 경험만 몇 차례 했을 뿐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해결하는 캠핑은 해본 적이 없었다. ‘캠린이(캠핑+어린이)’ 수준의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캠핑 라이프 도전에 나섰다.
우리의 첫 캠핑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이었다. 현재 거주 중인 포틀랜드에서는 자동차로 약 13시간 걸리는 거리이다. 우리는 총 6박 7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이동시간이 길다는 점을 고려해 가는 날과 오는 날에는 경유지에서 각각 1박을 하기로 했다. 포틀랜드에서 출발한 지 꼬박 8시간 만에 첫날 경유지이자 숙박을 할 아이다호주의 작은 마을 ‘마운틴홈(Mountain Home)’에 도착했다. 우리는 마을 외곽의 ‘트리니티 뷰 리조트’라는 캠핑장을 예약했다. 첫 캠핑이어서 모든 것이 어설펐다. 목 좋은 잔디밭에 텐트 그라운드시트를 깔고 폴대를 세우는 것까진 깔끔했다. 문제는 이너텐트 위에 씌우는 플라이시트였다. 당최 방향을 가늠하지 못해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우르릉 쾅쾅 치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아 조급해하다 보니 플라이시트의 방향을 잘못 씌우는 실수를 범하게 됐다. 방향을 조정해 다시 씌우려는 순간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플라이시트를 대충 걸쳐 놓고 아내와 아이는 텐트 안으로 피하고 나는 차량으로 대피했다. 금방 지나가는 비겠지 했는데 웬걸 장대비가 30분 이상 쏟아졌다. 아내와 딸이 춥다고 외치길래 차량 트렁크에서 침낭을 빼 텐트 속으로 던져줬다. 그들은 침낭에서, 난 차량 안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비가 멈추고 텐트로 다시 가보니 플라이시트와 이너텐트가 제대로 결합이 안 돼 빗물이 텐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텐트를 기울여 빗물을 빼내는 과정에서 텐트 속 침낭으로 물이 들어가는 소동도 벌어졌다. 결국 대형 타월을 동원해 물을 흡수시켜 텐트 속에서 모두 제거하는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
일련의 소동 끝에 텐트 세팅을 마치고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었는데 아이는 평생 먹어본 라면 중에 가장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별들이 가득 차 빛나고 있었다. 정말 기억에 남을 멋진 밤하늘이었다.
다음날 6시간을 더 이동해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으로 들어왔다. 옐로우스톤의 첫날은 롯지(오두막 숙소)에서 묵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숙소이기에 전날과 같은 좌충우돌 경험담은 없었다. 둘째 날부터 이틀 동안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한가운데 자리한 캐년그라운드에서 캠핑을 했다. 이번에는 문제가 텐트 사이트였다. 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텐트 전용 사이트가 아닌 RV차량과 텐트를 겸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역이었는데 텐트를 칠 수 있는 구역 표시를 명확히 해 놓았다. 텐트 사이트는 잔디가 아닌 부드러운 자갈과 단단한 흙으로 다져진 땅인데 아무리 박아도 텐트를 고정할 팩이 들어가질 않았다. 바람만 강하지 않다면 팩이 얕게 박혀도 관계없긴 하지만 이곳의 기상 상황을 모르니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야 했다. 온갖 힘을 들여 팩을 넣을 수 있는 만큼 밀어 넣었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박히진 않았다. 팩을 깊이 박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이후의 작업은 순조로웠다. 첫날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이번에는 아내와 나 모두 숙련공의 자태를 뽐냈다. 플라이시트까지 순식간에 씌우고 저녁 식사를 준비에 나섰다. 첫날 정신없이 텐트를 쳤을 때와 달리 이곳에선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바비큐용 그릴까지 동원해 캠핑의 먹는 재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해먹도 멋지게 장착했다. 큰 나무 사이에 걸어 놓았는데 아이는 아주 만족해했다.
옐로우스톤에서의 텐트 취침은 추위와의 싸움이라는 악명이 따라다닌다. 8월에도 새벽에 기온이 영하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경험자들의 말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남자라면 큰 문제가 없다. 누구나 2년여 군 복무기간 동안 수차례 야전취침 경험을 겪게 돼 추위에 맞서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복을 포함해 위아래 옷 모두 3겹을 겹쳐 입었고 두터운 패딩까지 입고 잤다. 덕분인지 사실 난 추위를 그다지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깟 추위쯤이야”라고 크게 개의치 않았던 아내는 다음 날 새벽 몸이 꽁꽁 얼었다며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옐로우스톤의 캠핑사이트는 상당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이렇게 몸이 꽁꽁 언 사람을 위해 캠핑관리 건물 동에는 대규모 샤워시설이 준비돼 있었다. 캠핑사이트 체크인할 때 샤워 쿠폰을 주는데 1인당 1박에 하루 무료 샤워가 가능했다. 샤워를 1일 1회보다 더하려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샤워실 옆에는 코인 세탁실도 완비돼 있는데 장기 야영객들에게는 필수설비로 생각된다. 비용도 소규모 세탁기 기준 2.5달러 수준으로 합리적이었다. 다만 세탁세제는 별도 구매해야 한다. 우리는 캠핑 이틀째 수건과 속옷 위주로 세탁을 한번 하려고 했는데 마침 세탁세제가 동났다. 직원이 우리에게 “미안하다”며 “내일 아침에 다시 오거나 어떤 사람들은 샴푸를 쓰기도 하는데 그걸로 해도 된다”고 조언했다. 아내와 나는 세탁이 급한 건 아니라고 판단해 세탁은 포기했다. 우리의 텐트 사이트로 돌아왔는데 단단히 고정하지 않고 거의 묻어놓은 수준의 텐트 팩은 그래도 잘 버텨줬다. 이틀간 우리는 바람과의 사투를 벌일 일은 생기지 않았다.
옐로우스톤의 마지막 숙박은 호텔이었다. 옐로우스톤에 머무르는 내내 캠핑하게 된다면 상당한 피로감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숙박을 텐트와 호텔(롯지)의 ‘퐁당퐁당’ 식으로 연결했다. 호텔은 모든 것이 갖춰져 있는 좋은 장소이지만 이틀간 캠핑에 길들었는지 방이 지나치게 덥게 느껴졌다. 호텔 컨시어지에 불편함을 호소하니 냉난방이 중앙조절방식이니 창문을 열고 자라는 정도의 해법을 줬다. 결국, 호텔 건물 밖으로 나와 한참이나 몸을 차갑게 식히고 나서야 잠자리에 누울 수 있었다. 다음 날 호텔 체크아웃을 하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텐트에서 4박했어도 괜찮았겠는데… 돈도 아끼고 별로 불편함도 없어”
우리는 이렇게 캠린이에서 한걸음 진보했다. 캠중등생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을까 자평해 본다.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캠핑 장비를 최대한 많이 활용해서 기술을 고수 수준까지 키워보겠다는 것이 우리 가족의 소박한(?) 목표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RV차량을 끌고 다니며 캠핑을 해보고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