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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폭설에 대처하는 미국 워킹패런츠 관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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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폭설에 대처하는 미국 워킹패런츠 관찰기

‘드디어 개학이다!’

2주 겨울방학이 끝나고 아이를 보는 얼굴에 점점 웃음기가 사라지던 2022년 1월 3일 일요일.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이곳 미국 워싱턴 DC지역에 일어났다. 폭설이다. 약 8 인치(20cm) 가량 내려 바이든 대통령의 전용기 운항도 지연됐다. 다행히 일요일 오전부터 내리던 눈은 오후 2시쯤 그쳤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눈을 빨리 안치우면 난리 나는 서울에서 온 기자는 ‘낮에 그쳤으니 제설차량을 빨리 돌리면 정리되겠네. 내일 아이 학교는 무난히 열겠다. 야호’라고 생각했으나 이 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결국 오후 3,4시쯤 교육청에서 휴교한다는 e메일이 왔다.


눈 내리는 동네 풍경. 이 때까진 아름다웠다.

@휴교 행진의 서막

그래. 서울에서 눈이 올때마다 아이와 놀아주지 못해 마음이 아팠지. 이 한 몸 부서져라 놀아주자,’

휴교 1일차, 월요일. 동네 아이들과 공원에서 발이 얼때까지 놀아줬다. ‘moms VS kids’로 눈싸움도 했다. 동네 개의 snowball 받아먹기 묘기도 봤다. 겨울 스포츠를 극단적으로 싫어하지만 꾹 참고 서울에서 미안했던 것을 갚는다 생각하고 두시간 넘게 놀았다. 햇볕이 워낙 좋아 눈은 빠르게 기화되고 있었다. 엄마들은 “내일은 학교 열 것 같다”며 ‘pretty sure’이라고 희망을 나눴다. 그런데 오후 5시 반쯤 온 e메일. 내일 또 휴교 한다네? 아직 스쿨버스가 지나갈 골목길이 위험해 보인다는 이유였다.

휴교 2일차, 화요일. 동네 어린이가 눈싸움 하자고 하더니 아이스 덩어리를 던졌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눈사람 만들고 눈썰매 끄는 부모들 얼굴이 지쳐 보였다. 2주 방학이 3주차로 연장된 셈이니… 아마존에 다니는 옆집 엄마는 오전에 일하다 오후에 아이와 놀아준 뒤 남편이 저녁을 할 동안 다시 업무를 마무리할 생각이라고 했다. 어차피 직장상사가 코로나에 걸려 사무실에 못 간다고. 우리는 서로 내일은 학교 문이 열릴 거라며 또 “암 그렇고 말고” ‘pretty sure’ 했다.

하지만 학교는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에도 열지 않았다. 일주일을 통으로 쉬었다. 수요일부터 이미 골목길 눈은 없었다. 그런데 휴교 통보는 늘 전날 오후 5~7시. 맞벌이 부부에게는 최악의 크레이지 스노우 위크인 것이다. 휴교의 이유도 당황스러웠다. 눈은 다 치웠지만 일할 선생님이 부족해 문을 못 연다는 것이었다. 상당수가 코로나로 자가격리 중이라 가뜩이나 사람이 모자란데, 인근 카운티 학교가 모두 문을 닫으니 그 카운티에 사는 우리 지역 학교 선생님들이 ‘아이를 봐야 해서 못 나온다’고 한 것이다. 연쇄적으로 북버지니아 학교들이 거의 문을 닫게 됐다.

DC지역 맘카페(?)격인 온라인 포럼, 지역 SNS에는 육아 고충을 호소하는 포스트가 쏟아졌다. 의료계에 근무한다는 한 워킹맘은 “교사들은 아이 봐줄 사람 없으면 학교 빠져도 되나? 우리도 이센셜 워커인데 그런 편의를 봐주지 않는다”고 했고, 다른 워킹대디는 “회사에 또 못 간다고 전날 저녁에 말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 괴롭다. 와이프와 가까스로 스케줄을 맞춰 놓으면 저녁에 이렇게 무너진다”며 울분을 토했다.

@육아 위기의 회복탄력성


지역기반 SNS ‘넥스트도어’ 캡처. 야채 코너가 텅텅 비었다.

대여섯시간 눈 좀 왔다고 문제가 생긴 곳은 학교만이 아니었다. 몇몇 마트에 트럭이 오지 못해 야채 과일이 동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텅텅 빈 마트 풍경이 지역 SNS끊임없이 올라왔다. 시카고에서 살다 왔다는 한 미국 누리꾼(?)은 “눈이 많이 오는 시카고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며 이정도 눈에 학교 문닫고 마트에 물건이 없는 사태에 놀랐다고 했다.

미국은 트럭 드라이버 만성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배달할 인력은 부족한데, 또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쇼핑이 늘어 물류가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 동부 연안 일대에 눈이 내려 교통이 마비되니 물건이 오질 못해 마트가 텅텅 비는 사태로 이어졌다.

코로나로 인한 인력부족, 취약할 대로 취약해진 물류 인프라가 폭설 한 번에 흔들리는 게 눈에 보였다. 말그대로 ‘회복탄력성’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모든 마트가 폭설사태에 고충을 겪은 것은 아니란 것이다. 그 와중에도 아마존이 인수한 Whole Foods는 쌩쌩했고, 아마존 프라임 배달은 여전히 든든했다. 반면 Giant라는 대형 마트는 유독 텅텅 사진이 많이 찍혔다. 아마도 두 회사의 그간 물류 투자나 인력 운용 능력이 폭설이라는 위기를 견디는 회복탄력성 정도에 차이를 만들지 않았을까 싶다.

육아에 있어서도 회복탄력성이 있는 부모와 없는 부모 간 고충의 정도가 달랐다. 이미 코로나 때문에 아이가 갑자기 학교에 못 갈 이유가 차고 넘친다. 콧물 같은 증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코로나 검사를 받고 증상이 없어질 때까지 학교에 못 간다. 밀접 접촉자는 당연히 학교에 못 간다. 코로나 육아 때문에 휴가를 다 써버린 사람은 폭설 앞에 난감할 수밖에 없다.

앞서 얘기한 아마존 다니는 동네 엄마는 재택근무에다 업무 시간 자체가 유동적이라 ‘이모님’ 도움 없이도 어찌어찌 크레이지 스노우위크를 견뎠다. 이 엄마와 한번은 미국과 한국의 직장문화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내가 “한국은 boss에게 no라고 말하기 힘든 문화”라며 워킹맘으로서 느꼈던 어려움을 토로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었다.

“미국도 boss에게 no라고 못하지. 근데 데이터 쪽은 달라. 사람이 부족해서 아마존에서 일하기 싫으면 페이스북으로 가도 되니까 어쩌겠어? 나는 그냥 상사에게 ‘오늘은 내가 저녁 식사 당번’이라고 말할 수 있어.”

아이 학교의 또 다른 엄마는 외교관인데,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부처로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크레이지 스노우 위크를 어떻게 견뎠냐고 물으니 본인은 ‘입주 내니’가 있다고. 해외 공관 다닐 때부터 함께한 필리핀 내니인데 ‘시급+건강보험료+필리핀 왕복항공비용’까지 지불해야해 너무 부담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여름에 또 해외 공관에 나갈 때 같이 갈 거라고. 아이가 더 어릴 땐 친정 엄마가 거의 육아를 도맡았다고 한다. 결국 미국도 친정 엄마와 이모님…그녀의 육아 위기 회복탄력성은 가족의 지원+경제적능력에서 나오는 셈이다.

@재택근무가 프리빌리지다

플렉서블 업무가 가능한 직장도 없고, 육아 도움을 받을 가족도 없고, 내니를 고용할 경제적 능력도 없는 사람은 육아 고충이 클 수밖에 없다. ‘2021 Great Resignation(대규모 퇴사 행렬)’이 미국내에서 화제였는데, 이중 ‘child care’의 어려움이 퇴사 이유로 적지 않게 꼽혔다고 한다. 특히 미취학 아동을 봐주는 미국식 어린이집들이 인력부족으로 허구헌날 셧다운이 잦은 게 영향이 컸다고. 5세 미만은 아직 백신 승인이 나지 않아 밀접접촉자 자가 격리 기간도 길다. (물론 주에 따라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부모가 둘 다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

경제적으로 맞벌이가 필요한 가구인데, 일과 육아를 같이 끌고 갈 수 없어 일을 그만두면 결국 그 가구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반면 이 어려움을 이겨낼 자원이 충분한 가족은 부모의 사회적 지위, 자아성취욕구, 경제적 능력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 양극화가 심해지겠구나 싶었다. 이런 생각 중에 마침 흥미로운 기사를 읽었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사. ‘특권=부와 유연근무 직업’이라고 쓴 댓글이 눈에 뛴다.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지역 학교가 오미크론 때문에 휴교 위기에 놓였었다고 한다. 교직원들이 코로나 확진이나 자가격리 때문에 일을 나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학부모들 직접 아이들 급식도 나눠주고 교통도 정리해주고 청소도 해주는 등 자원봉에 나서 휴교를 면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 달린1번 댓글이 눈에 확 띄었다.

Privilege: Wealthy and working flex jobs.

팔로알토가 어디인가. 스탠포드 대학교가 있는 부자동네 아닌가. 기사에도 나와 있지만 팔로알토 학교 부모들은 거의 테크 기업에서 일해서 플렉서블 스케줄이 가능했다고 한다. 게다가 중위 가구 연소득이 15만8000달러(1억9000만 원)라니! 아마도 교육에 열정적일 테니 직접 학교 일에 뛰어들었겠지.

워싱턴 DC 근처인 우리 동네 학교도 고학력 부모들이 많아 매우 열성적으로 학교 봉사에 나선다. (미국은 진짜 학부모를 너무 부려먹는다) 다들 전업주부인가 했더니 재택 및 유연근무 덕에 오전에 두 세시간을 내서 학교에 왔다고들 했다. 이런 부모들은 교장선생님과도 친하다.

돈이야 당연하지만 이젠 정말 ‘플렉서블 워크’ 즉 재택근무, 유연근무가 이른바 특권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불확실한 일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자원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연봉 이 높은 테크 기업들이 유연근무를 가장 먼저 도입하기도 했으니. “저는 재택해요, 저는 유연근무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어 보이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