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둘째 월요일이던 지난 11일은 콜럼버스 데이(Columbus Day)로 미국의 국경일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으로 미 대륙에 도착한 날을 기념해 휴일로 지정해 쉬고 있습니다. 콜럼버스는 유럽인에게 새로운 세상(new world)를 알려줬다고 해서 기념일을 갖고 있고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의 DC(district of columbia)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미국의 국경일 가운데 특별한 사람을 기리는 것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 콜럼버스 등 세 명 뿐입니다.
◆콜럼버스와 미국
이날 콜로라도주 덴버에서는 시가행진이 열렸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콜럼비아 특별자치구’인 워싱턴 DC에서는 유니온 스테이션에 있는 콜럼버스 동상에 헌화하는 행사가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일부 이탈리아계나 스페인계 미국인이 참여하는 조촐한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이탈리아 출신인 콜럼버스는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도움으로 대서양을 건너는 탐험단을 이끌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기념식에는 미국 주재 이탈리아 대사와 스페인 영사가 참석하더군요.)
아마도 미국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앵글로 색슨계의 뿌리는 영국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콜럼버스가 한 일은 탐험(explore) 혹은 발견(discovery)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하는 미국인들도 있습니다.(헌화행사에 참석한 바하마의 워싱턴 주재 영사는 ‘미 대륙에 첫 여행(tour)을 온 유럽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미국에 살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대량 학살을 당한 것에 빗대어 항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사실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이 원주민이냐는 논란이 있지만(그들도 빙하기에 아시아에서 베링해를 건너 미 대륙으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여간 아메리카 인디언에게 재앙일 수 있는 ‘발견’이 유럽에는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것임에 분명합니다. 영국 출신이 주축이기는 하지만 유럽 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은 미국인의 80% 이상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노예로 끌려왔다가 시민으로서 권리를 찾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12% 안팎,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태평양을 건넌 아시아계 3% 남짓 등이 섞여서 미국 사회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어디였건 모두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며 미국이라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콜럼버스의 탐험은 오늘날 슈퍼 파워인 미국을 형성하는 단초가 되었다고 평가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린카드 로또
콜럼버스 데이보다 일주일쯤 앞선 10월 2일 조지타운대에서 방문학자들에게 보낸 메일이 눈길을 끕니다. 미국 국무성이 올해의 ‘다양성 프로그램(Diversity Visa Lottery Program)’ 신청을 받기로 했으니 관심있으면 응모해 보라는 안내입니다. 다양성 프로그램은 다인종 사회인 미국의 다양성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미국민 가운데 비중이 적은 민족(혹은 지역) 출신자에게 영주권을 주는 프로그램입니다. 1년에 5만명을 추첨으로 뽑는데 일명 그린카드 로또(Green Card Lottery)라 불립니다.(그린카드는 앤디 맥도웰이 출연한 영화로 잘 알려져 있듯이 영주권을 지칭합니다.) 물론 엄격한 자격 요건이 요구되는데 미국 노동부에서 응모가 가능한 직업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기자(reporter)’도 응모가 가능한 직업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미국에 들어와있는 유학생이나 방문학자들에게만 주는 기회인지는 모르겠지만 국무성이나 노동부 홈페이지에 그런 제한 항목이 없는 것으로 봐서 세계 각국에 있는 누구나도 응모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미국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는지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지만 관심있는 분이라면 국무성의 다양성 프로그램 홈페이지(http://www.dvlottery.state.gov/)나 노동부의 응모가능 직업군 소개자료(http://online.onetcenter.org/find/family)등을 참조해보시기 바랍니다.
문득 10년전 외교통상부를 출입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당시 덕수궁 옆 미국 대사관저에서 외교통상부 기자단을 초청해 만찬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만찬에 앞선 칵테일 파티가 진행되는 도중에 미국측 관계자(한국계 미국인으로 기억됩니다)가 저를 따로 부르더군요. 미국 국무성이 초청하는 장학프로그램으로 미국에서 공부를 더 해볼 생각이 없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오래전 일이라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의 다양성 프로그램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당시에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그 프로그램의 자격조건에 발끈했는데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developing or underdeveloped country)’에서 선발해 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습니다.(기억에 의존하느라 확실치 않으니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에 LG상남언론재단에 선발되어 해외연수를 오는 과정이 무척 힘들었던 것임을 기억하면 ‘그때 미국측의 호의를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지금도 듭니다. 그렇지만 2001년 당시에는 한국을 미개발국으로 보는 미국의 시각에 반발하는 마음이 너무 앞섰던 것 같습니다.
하여간 다양성을 유지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서 초강대국을 지탱하는 저력을 느껴봅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소개한 새 땅에 여러 민족과 지역의 사람들이 옮겨와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 민주적 국가체계인 대통령제를 확립하고 슈퍼 파워로 군림하며 그 가치와 덕목을 세계에 전파하려는 미국이 솔직히 부럽기는 하네요. 콜럼버스는 진정 인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 탐험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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