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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산 여행기-태산의 일출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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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도 다른 유학생처럼 북경에 온 이래, 매주 주말을 이용해 이곳 저곳을 헤집고 있습니다. 대략 북경에서 열차로 10-12시간 안에 있는 곳들은 대략 커버를 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 쌓인 중국 여행 노하우는 다음 편에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먼저 빠른 기차(특쾌)로 베이징에서 대략 7시간 거리인 태산을 소개할까 합니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의 그 태산입니다.

적어도 2000년 이상 중국인들은 태산에 오르는 것을 신성시해 왔습니다. 지금도 평생 한번이라도 태산을 오르고 싶어하죠. 1번 오르면 10년을 더 산다는 이야기까지 있습니다.

태산이 매력적인 것은 인문적 환경이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진시황을 시작으로, 숱한 황제와 문인이 태산에 올랐습니다. 공자 역시 태산에 올라 ‘세상이 작아 보인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유적의 보고라 할 정도여서 이 분야에 관한 약간의 지식만 있어도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래 글은 제가 중국어로 쓴 태산여행기입니다. 우연한 기회에 중국인들에게 보여주려고 쓴 글이라 우리 정서에는 조금 맞지 않을 수도 있을 듯 합니다.

我看了泰山的日出

2007年11月11日 俗称为‘光棍儿节’的这天早晨,我家四口人看到了‘泰山的日出’. 它既实在壮观又实在美丽,我不能想起来别的描述,只能说‘在世界上没有能与之相比的日出’. 这句话当然有点儿夸张. 不过在东方人的心中, 泰山的位置是那么显要. 何况泰山的日出呢?

태산의 일출을 보다
2007년 11월 11일 속칭 ‘빼빼로 데이’ 새벽, 우리 집 네 식구는 태산의 일출을 보았다. 일출은 참으로 아름답고 장엄했다. ‘세계 상 어느 곳의 일출에 비할 바 아니다’라는 말 밖에는, 달리 그 감동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물론 과장을 약간 섞긴 해지만, 동양인들의 마음 속에 태산은 그만큼 각별하다. 하물며 태산의 일출은 어떻겠는가?

当初打北京前往泰山的时候. 我们的计划内不包括看日出的. 我们到北京以后, 每周末都去旅行.但是我们有一个小的旅行原则. 为了保障周末特有的休息机会. 绝对不花整个周末. 每次去旅行时. 我们通常礼拜五晚上坐火车出发. 在火车内睡觉, 第二天早上到目的地游览后. 当天晚上再坐火车回来. 当然回来的时候, 我们也在火车里睡觉.

당초 베이징을 출발할 때는, 태산의 일출을 볼 생각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베이징에서 생활한 이래, 매주 여행을 떠났다. 다만 여행에는 작은 원칙이 있다. 주말만의 휴식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주말 모두를 여행에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매번 여행을 떠날 때, 금요일 밤 기차를 타 자면서 목적지에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고, 다시 밤차를 타고 자면서 일요일 새벽에 돌아왔다.

这次我们仍然照这样安排旅行日程. 打算游览完泰山就回北京. 但是我们不得不改变原计划. 事情的经过是这样的:
在泰山站买返程票时, 发生了意外. 这就是‘买不到当日晚上的票’. 我们没意识到那儿是旅游的圣地, 只考虑不是旅行旺季. 那边儿的火车票老紧张. 我们只能两者择一. 一是坐长途汽车回来. 但是肯定太难受. 二是在那边住一天. 然后第二天晚上回来.我无可奈何地选择后者.

이 여행도 원래는 마찬가지 계획이었다.
그런데 불가피하게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은 이러했다.
태산역에서 당일 저녁 돌아가는 표를 구하려는데, 모두 팔렸다는 것이다. 여행 성수기가 아니어서 쉽게 표를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한 게 실수였다. 태산은 여행의 ‘성지’여서 언제나 표를 구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결국 우리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하나는 몸이 힘들더라도 밤새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음날 돌아갈 기차표를 사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선택했다.

说实话. 我到北京以后一直有去泰山的愿望. 我的故国里. 很有名的一首诗就是对于泰山的. 那首诗常常挂在所有韩国人的嘴上. 那首诗是这样的:“虽然泰山那么高,至多天空下一山,爬着爬着准爬到,人没爬只说山高”我不知我的翻译能否正确传达原意. 无论如何, 对韩国人来说. 我认为没有不知道泰山的韩国人.

사실 베이징에 도착한 이래 나는 줄곧 태산을 가고 싶었다. 한국에는 태산에 관한 아주 유명한 시가 있다. 시는 다음과 같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은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번역이 제대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태산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는 듯 하다.

因为我们突然有了很多多余的时间. 就决定顺便看泰山的日出. 还有去‘曲阜’.我们先去‘曲阜’. 曲阜是‘孔子的城市’. 依我看, 虽然孔子已经死了2400多年,但他还影响着所有的亚洲国家. 比如说, 孔子创立儒教不知不觉地影响到你我的想法,或者社会观念.

시간이 남게 된 우리는 태산의 일출도 보고, 또 취푸(곡부)도 가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공자의 도시’ 취푸로 향했다. 공자가 죽은 지 2400여 년이 지났지만 동방국가들에 공자의 영향력은 아직도 대단하다. 공자의 유교는 지금도 나의 사고와 사회관념에 알게 모르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我们跑遍了所谓三孔(孔府,孔庙,孔林). 尤其孔府‘大成殿’给我的印象最深刻. 它的龙柱很美丽. 明朝时, 石工像弄豆腐一样雕刻花岗岩完成那么雄壮的名作. 我看完了中国三大殿:这就是‘紫禁城的太和殿, 岱庙的天贶殿, 孔府的大成殿. 我感觉到‘名不虚传’.

우리는 이른바 삼공(공부, 공묘, 공림)을 모두 둘러봤다. 특히 공부의 ‘대성전’이 기억에 남는다. 용을 조각해 놓은 돌기둥은 참 아름다웠다. 명나라 때 석공들이 화강암을 마치 두부를 다루듯 조각해 이처럼 웅장한 명작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로써 중국의 3대 대전(자금성의 태화전, 대묘의 천황전, 공부의 대성전)을 모두 봤다. 역시 명성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 법이다.

爬泰山很容易. 因为坐缆车可以一直到顶峰. 当然爬山比坐缆车感触更深. 但是我没有时间, 还有带着两个孩子. 只好选择方便的办法. 我们在顶峰附近的三星级宾馆住一天. 从宾馆走五分钟到泰山的顶峰. 我们吃晚饭以后. 到顶峰散步. 那时候. 太阳已经落了. 山上没有人. 四周都是一片黑黝黝的. 我用两个手电筒照着山径. 我感觉有点儿害怕, 有点儿神秘感, 有点儿敬畏感等等.我们肯定一辈子难忘那天的夜间山行.

케이블카가 정상까지 바로 연결돼, 태산 등산은 어렵지 않았다. 물론 걸어서 올라가야 제 맛이지만, 시간이 없고 아이들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우리는 정상 부근의 3성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저녁을 먹은 뒤 손전등을 들고 정상에 올랐다. 날이 저물어 사방이 온통 깜깜했다. 인기척 하나 없는 태산의 정상에 서자, 모랄까 약간의 두려움과 신비감, 경외감 등이 밀려왔다. 이날 밤의 느낌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第二天早晨饭店打电话叫醒我们. 起床以后, 我们立刻去一个小山峰好看日出. 已经有很多人站着等日出. 我们等了比较长的时间. 但是太阳没出来. 东边的天空已经亮了. 看不到日出的怀疑越来越占了上风. 天空上云不多. 为什么太阳不出来呢?很奇怪. 我的心里焦急得很. 满心的期待渐渐低落下来.
突然东边天空正中央. 太阳喷涌似地升起来. 大家都很惊喜. 日出的场面, 我不能描述. 那个不是人间之事. 是天的事’东边乾坤一片朱黄’. 太阳和群山构成了一幅山水画.

다음날 아침 모닝콜에 잠이 깨, 서둘러 정상근처의 작은 산봉우리로 향했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꽤 기다렸던 것 같다. 동쪽 하늘이 이미 훤히 밝았는데도 태양은 뜨지 않았다. ‘구름도 별로 없는데…’. 이상했다. 일출을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돌연 동쪽 하늘 한 가운데로, 태양이 솟구치듯 떠올랐다. 모두들 꽤 놀랐고 또 기뻤다. 일출 장면은 설명하지 못하겠다. 단지 인간의 일이 아닌, 하늘의 일이라는 생각밖에는. 동쪽은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들었고, 태양과 뭇 산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됐다.

吃早饭以后. 我们转了转顶峰一带. 泰山的顶峰叫‘玉皇顶’. 自秦始皇以来历代皇帝们都在‘玉皇顶’举办‘封禅仪式.‘封禅’这个词是合成语’祈祷天神’叫‘封’.‘祈祷山灵(地神)’叫‘禅’.
我听说自古以来有72名皇帝来到泰山举行‘封禅仪式’. 再加上数不清的中国人爬过泰山. 其中有名的人很多. 他们在泰山的石壁上留下自己的感觉. 因此闻名天下的崖刻也很多. 比如说‘秦始皇的无字碑, 五岳独宗什么的’. 我不能举所有的例子. 在那些雕刻中, 给我印象最深刻的是‘果然’两个字的雕刻. 这两个字可谓‘数不清的雕刻’的代表.

아침을 먹은 뒤 정상 일대를 돌아봤다. 태산의 정상은 ‘옥황정’이다. 진시황이래 수많은 황제들이 옥황정에서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봉선’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봉’과 땅에 제사를 올리는 ‘선’을 합친 말이다. 듣기로 모두 72명의 역대 황제가 이곳에서 봉선의식을 했다고 한다. 나아가 숱한 중국인들이 태산에 올라, 태산의 바위 벽에 글(석각)을 남겼다. 진시황의 ‘무자비’, ‘오악독존’ (중국 화폐 5원권에 그림이 있습니다)등등 유명한 글들이 참 많다. 숱한 석각 중에 가장 마음을 사로잡은 글은 ‘과연’이라는 두 글자였다.

因为在泰山站买不到返程票. 于是我们先去了‘泉的城市’也就是 ‘山东省的省会’济南 然后回北京. 回来时, 我们第一次坐了‘动车组’.那是一种超高速未来型列车. 我顿时感觉到‘传统和尖端’或者‘社会主义和资本主义’等等. 难得的奇妙的共存. 我心里不禁浮想起很多…….

태산역에서는 출발하는 기차가 없기 때문에, ‘샘의 도시’ 제남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했다. 제남은 산둥성의 성도(우리의 도청 개념)이다.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처음으로 중국형 초고속열차 ‘동차주’를 탔다.
문득 전통과 첨단,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등등 쉽게 양립하기 어려운 것들의 공존에 대한 상념이 꼬리를 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