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터졌다‘
그토록 기다렸던 첫 골이다. 4경기 만이다. 경기가 끝나자 동료 선수들 부모들이 찾아와 ‘축하한다‘, ‘멋진 골이었다‘며 인사를 해주었다. ‘내가 영상을 찍었다‘며 자기 아이 일처럼 좋아해주는 선수 엄마도 있었다.
이번 연수기는 유소년 농구 시즌 체험담이자 미국의 스포츠 인프라 견문록, 그리고 부끄러운 어른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너무도 부러운 생활 체육 인프라
농구엔 문외한이던 만 9세 아이가 타운에서 운영하는 유소년 농구팀에 들어간 건 11월이었다. 한 달여간 주 2회씩 훈련 기간을 거쳐, 12월말부터 이듬해 2월까지 겨울 시즌 10경기를 치렀다. 9-10세 리그에 29개 팀이 있고 한 팀에 선수가 각각 10명이 넘으니, 어림잡아 이곳 캐리 타운 또래 아이들 300여명 이 겨울 농구를 즐기는 셈이다. 농구 시즌이 끝나면 곧바로 야구, 축구 시즌이 이어진다. 연중, 매년 리그에 참여하는 아이들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이곳 아이들에겐 일상이 스포츠고 스포츠가 일상이다.
우리 팀은 주로 4곳의 경기장을 돌며 연습과 경기를 치렀다. 공립 중학교나 공공 체육시설 내 실내 코트인데, 영화에서 보던 학생 체육관 그 모습 그대로이다. 이곳의 중고교들은 넓은 땅에 실내 체육관과 육상 트랙, 천연 잔디 구장을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교직원들은 늦은 시간까지 남아 기꺼이 학교를 개방해준다. 경기 때면 2명의 전문 심판이 배치된다.
지자체는 저렴한 비용(70달러)으로 계절마다 다른 종목의 스포츠 시즌을 운영한다. 가입 경쟁이 워낙 치열해 밤 12시 땡 하면 ‘수강신청 신공‘을 발휘해서 들어가거나,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대기해야 한다. 우리가 속한 캐리 마을(Town of Cary)은 이렇게 유소년 스포츠 철학을 소개하고 있다.
▲ 재미 : 즐거운 스포츠 경험. 게임에 대한 사랑.
▲ 참여 : 공평한 기회 제공. 건강 증진.
▲ 스포츠맨십 : 팀워크, 존중, 페어플레이를 통한 사회적 능력의 확대.
코치는 소싯적 운동 좀 해본(이라고는 해도 실력이 탈아마추어급) 학부모가 맡는다. 유소년 스포츠 철학에 맞게 모든 선수는 실력에 상관 없이 동일한 출전 기회를 얻는다. 우리가 만난 상대 팀에는 ‘어릴 적 르브론 제임스가 저랬겠구나‘ 싶을 정도의 탄력을 보여주는 선수도 있었고, 분명 9-10세인데 키가 170cm는 됨직한 ‘괴물 센터‘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 동등한 출전 시간을 갖기 때문에 이 될성부른 떡잎들도 어김 없이 교체돼 나갔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승부 자체보다는 과정에서 얻는 ‘성장‘으로 보인다. 동료들과 협력해서 얻는 승리의 쾌감과 성취감, 아슬아슬한 승부에서 오는 긴장감, 패배로부터 얻는 분함. 이런 감정들은 단체 종목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 아이들과 공을 차던 운동장은 아파트 재건축 이후 이젠 사라져버렸는데. 곱씹을수록 부러운 스포츠 인프라이다.
아이들로부터 배운다
우리 팀에는 A라는 아이가 있었다. 농구공은 처음 튀겨보는 듯한데, 운동신경도 ‘꽝‘이다. 게다가 유치원생 수준으로 집중력이 부족하고 천진난만하다. 연습 도중 코트에 드러누워버리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몇 분 동안 가만히 있기도 한다. 때론 뭐가 신났는지 갑자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놀기도 한다. 경기 중에는 그저 이쪽 저쪽을 왔다 갔다 하며 상대편이나 우리 선수의 플레이를 멍하니 보고 있는다.
우리 팀의 최종 시즌 전적은 6승 3패 1무. A가 시합에 불참하거나 중간에 돌아간 날은 모두 이겼고. A가 참석한(다른 선수들과 동등한 시간을 뛴) 날은 대부분 졌다.
시즌 초반 1승 뒤 2연패를 기록하고 있을 때, 아이가 징크스를 얘기하기에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너희들 징크스는 A라는 구멍이다. 다음 경기 땐 A가 어디 주말 여행이나 가서 안 왔으면 좋겠다‘ 그도 그럴 것이 A가 오면 사실상 5대 4로 뛰는 셈이기 때문이다(종종 상대를 돕는 실책까지 하기 때문에 6대 4로 봐도 무방함). 안 좋은 마음은 내 안에서 자꾸만 커졌고, 연습 시간에 휴대폰만 쳐다보며 딴 짓 하는 A의 엄마에게 ‘대체 민폐라는 걸 모르나‘하는 야속한 마음까지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맞이한 4번째 경기. 이날은 손쉬운 상대를 만나 10점 이상 넉넉한 격차로 4쿼터에 들어갔다(심지어 A가 있었는데도). 우리 아이를 비롯해 이날까지 득점이 없는 다른 아이들도 대부분 골 맛을 봤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A에게 집중적으로 볼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공을 아예 못 잡거나(늘 다른 곳을 보고 있으니…) 잡았다 뺐기거나, 공을 잡아도 골대 근처에도 못 가는 슛을 쏘거나 했지만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A에게 패스를 이어갔다. 하나 같이 모두 밝은 표정이었다. ‘너도 한 번 골을 넣어봐!’하고 기대하고 응원하는 표정이었다.
충격적이고 부끄러웠다. A가 빠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저 초등학생들보다도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이 어른스러운 아이들은 능력에 대한 어떤 차별도 없이 동료를 대했고, 유소년 스포츠 철학 그대로 ‘즐거운 스포츠 경험‘을 맘껏 누리며, ‘팀워크와 존중을 통한 사회적 능력 확대‘를 실현하고 있었다.
팀은 사람을 바꾸고, 스포츠가 삶을 바꾼다
길거리 농구를 마치고 어깨동무하며 웃는 여고생들. 아버지 사진의 헬멧에 넣고 타석에 들어서는 소년 야구 선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소프트볼 팀, 승리의 주역의 등장에 환호하는 학생들. 이어 화면에 이런 글자가 흐른다.
팀이 사람을 바꾼다.
시즌이 미래를 바꾼다.
코치가 캐릭터를 바꾼다.
필드가 마을을 바꾼다.
스포츠가 삶을 바꾼다.
한 스포츠 용품점의 TV광고 장면이다. 아이의 농구 시즌을 겪고 난 뒤 이 문구들이 크게 와 닿았다. 나도 어린 시절 팀에 소속돼 시즌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능력이 떨어지는 누군가를 배제하려는 나쁜 마음을 갖는 어른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육조차도 학원에 가서 배우는 한국 아이들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다음달부터는 유소년 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아이가 어떤 코치와 동료들을 만나서 성장할지 기대된다. 그런 아이들로부터 내 자신도 또 다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게 될 것이다.
프롤로그
A는 결국 이번 시즌 득점을 기록하지 못했다. 여유 있게 이기던 경기에서 한 번 더 공을 몰아줬지만 아쉽게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경기는 너무 타이트해서 (12점 차이로 지고 있다가 4쿼터 9초를 남기고 1점차로 대역전! 하지만 경기 종료 직전 상대 에이스에게 자유투를 허용했고 결국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A는 공을 만져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코치의 집에서 열린 피자 파티에서 우린 A에게 ‘좋은 시즌이었다‘고 격려해주었고, A와 아이들은 마당에서 신나게 술래잡기를 하며 남은 체력을 불태웠다. 다음 시즌에도 A가 어떤 종목이 됐든 즐기고 성취하고 성장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