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한 학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깁니다만, 초등학교 5학년 교실에서 하루는 미국 담임 선생님이 수업이 일찍 끝났는데, 시간이 남았다며 쉬는 시간까지 “Have fun!”하고 말했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우리나라처럼 장난치고 떠들고 하는데, 한 여학생이 책상 위에 올라가서 노래부르며 춤을 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땠을까요? 그런데 그 담임 선생님은 춤을 춘 문제의 여학생을 향해 “너는 참 댄스감각이 타고났구나. 정말 춤을 잘춘다”라며 칭찬해줬다고 하네요.
지난 8월에 미주 동부여행을 하다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fun’과 관련해 겪은 일입니다. 미국이나 캐나다 도시를 여행하다보면 수륙관광용 버스를 볼 수 있습니다. 관광객들을 싣고 도로를 달리다가 강이나 바다로 곧바로 들어가 물위를 달리며 시내를 관광하는 버스입니다. 토론토에서 이 버스를 탔는데, 버스가 바다로 들어가자 당연히 관광객들이 신나게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때 여행가이드가 관광객들에게 사진도 자유롭게 찍으라며, “Have fun!”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관광객들이 잠시 가이드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가이드가 재차 “Have fun”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랬더니 다음부터는 관광객들이 사진 찍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바람에 버스안이 어지럽고 소란스웠습니다만, 모두가 즐거워할 뿐이었습니다.
위에서 몇가지 예를 들었습니다만, 제 나름대로 ‘fun’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fun’이란 단순히 재미있고,즐겁고,웃기는 개념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개념들 – ‘자율’과 ‘신뢰’, ‘형평성’,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관용’, ‘도전’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생각됩니다.
복싱클럽을 예로 설명해볼까요. 학생들이 운동하러 나오든 안나오든, 운동을 열심히 하든 안하든 자율적으로 합니다. 강압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운동할 때 쉬거나 다른 운동을 해도, 나머지 학생들은 그 학생이 요령을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만한 사정이 있거나 힘이 들어서 그러나보다하고 이해해줍니다. 다시말해 거짓말하거나 요령 피우지않고 ‘정직하다’는 신뢰가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또 남녀,연령,학년에 상관없이 똑같이 운동합니다. 누가 달리기를 더 잘 한다고해서, 팔굽혀 펴기를 더 많이 한다고해서, 복싱 자세가 더 좋다고 해서 우쭐해하거나 치켜세워주는 일도 없습니다. 뚱뚱한 학생도 열심히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모두가 인정해줍니다. 우리나라처럼 네가 잘하냐, 내가 잘하냐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학생들마다 다른 다양성을 존중해주고, 잘 따라오지 못하거나, 자주 빠지고 심지어 요령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도 똑같이 대해줍니다.
특히 다른 학생들에 비해 잘하지 못하고 뒤떨어지는 학생이 기가 죽는 일이 없다보니, 다음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들을 늘 갖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운동을 잘하거나 못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골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남들보다 잘 쳐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조금만 볼이 안맞더라도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곳 사람들은 “have fun!”입니다. 골프를 한번만 칠게 아니고, 다음에 잘 치면 되는데 왜 그렇게 본인에게 짜증을 내느냐는 의미일 것입니다.
위에서 예로 들었던 초등학교 교사 역시, 한국이라면 당연히 학생의 행동이 도를 넘었다며, 선생님이 꾸지람을 하거나 억압적으로 제지했을 가능성이 컸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선생님은 춤을 춘 학생의 다양성과 개성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재능을 칭찬해주는 방식으로 학생의 기를 살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른바 ‘fun’, ‘펀경영’에 대해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fun’을 단순히 웃기고 재미있는 개념이 아니라 자율과 신뢰, 형평성, 다양성에 대한 존중, 관용, 도전의 정신이 바탕에 깔리지 않고는 쉽게 체득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본다면, ‘펀경영’이라는 것도 근본적인 조직문화 밑바닥부터 바꾸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는 국내외 쟁쟁한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고, 조직 내부적으로는 동료와 승진 경쟁을 해야하는 살벌한 상황에서 ‘fun’이란 개념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일회성 이벤트나 수박 겉핥기식 따라하기에 그칠 가능성이 클 것입니다.
또 여기서 ‘fun’과 반대되는 개념들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타율’과 ‘강요’ ‘요령’ ‘불신’ ‘획일화’ ‘차별’ ‘편협함’ 등이 반대되는 개념들이 아닐까요? ‘펀경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거꾸로 이런 반대되는 요소들을 조직에서 없애나가려는 노력도 반드시 뒤따라야할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겪은 일을 통해 ‘fun’과 ‘펀경영’의 개념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한 바를 정리해 봤습니다만, 몇가지 사례만을 가지고 ‘fun’의 개념을 정리하기에 다소 무리가 따랐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또 앞으로 미국생활을 더 하다보면 또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번 연수기간 동안 ‘fun’의 개념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후배들을 대하던 방식에 대해서도 되돌아보고 반성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내년에 다시 살벌한 보도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이번에 체득한 ‘fun’에 대한 개념이 선후배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되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