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재밌다고 느낀 것 중 하나는 독특한 마케팅이다. 대표적인 것이 ‘커피 구독제’와 ‘연간 회원제’다. 한국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지만 결이 미묘하게 다르다.
스타벅스 천국인 한국과 달리 영국에는 토종 커피 브랜드 매장이 훨씬 많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세 가지를 꼽자면 프레타망제(Pret a Manger), 코스타(Costa), 네로(Nero) 커피다.
이 중 프레타망제의 커피 구독 모델이 독특하다. 월 30파운드(약 5만1000원)를 내고 멤버십에 가입하면, 하루 5잔씩 총 150잔(30일 기준)의 무료 음료를 준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등 커피뿐 아니라 핫초코, 아이스쉐이크, 차 같은 제조 음료가 모두 무료다.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멤버십 QR코드를 스캔하면 된다. 한 번에 한 잔만 받을 수 있고, 한 번 쓰면 30분이 지나야 재사용할 수 있다. 샌드위치, 샐러드 같은 다른 상품도 20% 할인해준다. 커피 한 잔이 3파운드 남짓이니 한 달에 10잔 이상 마시면 본전 뽑는 셈이다. 한국에도 일부 편의점, 카페 브랜드가 ‘커피 구독제’를 하지만, 보통 커피를 할인 해주지 이렇게 ‘하루 몇 잔 무료’ 식은 아니다.
실제로 하루 5잔 먹긴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다. 런던에만 매장이 300곳 가까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 시내를 다니다 화장실이 급하거나, 잠시 앉아 쉬고 싶을 때 쓱 들를 수 있는 휴게소 역할로도 괜찮다. 관광객 중에도 런던에 오자마자 멤버십에 가입해 1~2주간 집중적으로 써서 본전 뽑고 나가는 경우도 있다. QR코드 화면 캡처도 가능해 가족이나 친구가 함께 쓰는 경우도 많았는데, 최근에 캡처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단점은 맛이다. 코스타, 네로에 비해 커피 맛이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음료가 무료이다 보니 매장이 늘 붐비는 편이고, 주문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미리 내려놓은 커피원액, 우유거품을 쓰는 것도 종종 목격했다. 지점별로 커피 맛의 편차가 있을만큼 품질 관리도 들쭉날쭉하다. 그럼에도 ‘하루 5잔 무료’의 매력 때문에, 좀처럼 멤버십 끊기가 쉽지 않다는게 현지인들의 공통적인 얘기다.
이 모델의 장점은 손님을 매일 매장으로 불러들인다는 점이다. 무료 커피만 받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지갑을 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점심 때 무료 커피 한 잔에 샌드위치나 샐러드, 과일을 사먹는 사람이 많다. 웬만한 점심 메뉴가 10파운드(약 1만7000원) 이상하는 런던에선 간단하게 끼니를 때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프레타망제가 꽤 괜찮은 선택지다. 프레타망제도 지난해 실적 발표에서, “멤버십 고객의 지출이 비멤버십 고객 대비 30% 가까이 높았다”고 했다. 또 월 구독료가 따박따박 들어오는 안정적인 구조를 만들면서 실적이 크게 좋아졌다.
멤버십에 가입한 이후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눈에 보일 때마다 습관적으로 매장에 들렀다. 샌드위치 같은걸 살 때도 굳이 다른 매장에 가지않고 당연한듯 이 곳에 들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월 5만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내고도 무료 커피란 혜택이 ‘충성 고객’ 만드는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하지만 멤버십에 발을 들인 이후로 맛있는 커피를 먹지 못하는 것 같아, 최근에 큰 맘 먹고 앱에서 ‘해지’ 버튼을 눌렀는데 마지막에 ‘월 회비 50% 감면’이란 예상치 못한 미끼를 던지는 바람에 결국 1개월을 더 연장하고서야 끊었다. 물론 해지되는 그 날까지 열심히 매장에 들렀다.
재밌게 느꼈던 또 하나의 모델은 ‘연간 회원제’다. 영국박물관(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테이트모던 등 런던의 미술관, 박물관은 대부분 무료지만 일부는 유료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런던 교통 박물관’의 경우엔 일회 입장권 없이 연간회원권만 판매한다. 성인 회원권은 24.5파운드(약 4만1800원), 지역 주민은 18.5파운드(약 3만1500원)다. 12개월간 무제한 입장이 가능하고 동반 자녀는 무료다. 한 번만 가려던 사람도, 연간회원권을 가지면 한 번이라도 더 가보고 싶어지는게 사람 심리다. 물론 이 곳은 전시도 훌륭하고, 수익 창출의 일등공신인 기념품샵 역시 잘 꾸며놨다.
런던동물원도 비슷한 심리를 자극한다. 자녀가 둘인 4인 가족이 주말에 한 번 방문하는 비용은 112파운드(약 19만원)로 꽤나 비싸다. 하지만 12개월간 무제한 입장 가능한 가족 연간회원권은 199파운드(약 34만원)로, 두 배가 채 되지 않는다. 두 번만 가도 본전을 뽑는 미묘한 가격 정책에 많은 이들이 ‘연간회원권’을 택한다. 그리고 자녀들을 데리고 수차례 동물원을 방문한다.
한국의 에버랜드나 롯데 아쿠아리움도 연간회원권 제도가 있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다. 연간 네 번 정도 가야 본전 뽑는 구조라고 한다. 아예 많이 갈 작정을 한 사람만 연간회원이 되는 것과, 한 번만 가려던 사람까지 연간회원으로 만드는 것은 좀 다른 얘기다.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설정해 100원만 쓰려던 사람도 190원을 쓰게 하고, 방문을 자주 하도록 유도해 부가 수익을 거두고, 동시에 충성 고객으로 사로잡는 전략이 꽤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