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달달 외워가며 공부했던 게 대학 졸업 이후 얼마 만이던가. 기출문제를 꼼꼼히 정리해가며 반나절을 공부해 필기시험을 통과했다. 실기시험 역시 해당 구간을 찾아가 한두 차례 연습해 본 덕에 낙방 없이 자격증을 딸 수 있었다. 미국에 오자마자 긴장한 채 치렀던 캘리포니아 주 운전면허 시험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운전했을 텐데 운전면허시험 하나 보면서 무슨 공부에 긴장씩이나 하느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연수생 가운데 실기 재수생, 삼수생은 물론, 필기 재수생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면 느낌이 오려나. 필기에 붙고도 실기를 세 번 떨어져, 필기시험을 다시 치는 사람도 있으니 그깟 면허시험이라고 하며 비웃을 일은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가 운전면허 상호 협정을 체결하면서 이제는 국제면허증만 발급받아 출국하면 외국에서도 별도의 추가 면허 없이 운전할 수 있는 시대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27개 주만 우리나라와 한국 국제운전면허를 인정하는 협정을 맺었다. 캘리포니아 주는 협정을 맺은 주가 아니기 때문에 국제운전면허증이 있더라도 면허시험을 다시 봐야 한다. 물론 여행자의 경우엔 다르다. 여행 비자로 들어온다면 통상 최장 3개월 정도의 여행 기간 동안 국제 면허증으로 운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거주 목적으로 들어와 거주지를 확정했다면, 규정상으로는 거주지가 정해진 날부터 열흘 안에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교통 법규도 다르지만,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 강조하는 부분도 다르다. 안전을 최우선시하는 목적이야 같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서행 운전을 통해 안전을 유도한다면, 캘리포니아 주에선 도로를 달리는 차량의 흐름을 따르는 것을 제한 속도만큼이나 안전 필수 요소로 여긴다. 제한 속도가 65mile/h라도 주변 차량이 모두 70mile/h 로 달리고 있다면 그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사고를 막는 방법이라 판단하는 듯하다.
운전면허 시험에 나오는 것들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알아두면 쏠쏠한 정보들이다. 필기시험 내용이 실제 도로 운전에서도 유용하게 쓰인다. 예를 들면 여행할 때 어디에 주차를 해도 되는지 등이다. 연석에 따라 주차 가능 차량이 다른데 빨간색 연석 앞에는 절대 주차해선 안 되고, 파란색 연석 앞에는 장애인만 주차할 수 있다. 노란색 연석은 화물차가 짐을 싣고 내릴 때만 주차가 가능하고, 초록색 연석은 음식을 픽업하거나 짧은 볼 일을 볼 때 연석에 쓰인 시간만큼, 10분이나 20분 정도만 정차가 가능하다. 별도 면허시험 없이 국제면허증으로 다녔다면 몰랐을 부분이지만, 현실에서 잘못 주차할 경우 벌금은 물론 견인까지 되니, 몰라선 안 되는 정보들이다. 고속도로에는 호브 차선이라고 다인승 전용차로가 있는데, +2라고 써있다면 2명 이상만 타도 다인승 차량으로 분류돼 이용이 가능하다. 이 역시 모른다면 꽉 막힌 도로를 1.5배는 더 걸려 가는 경우가 생긴다. 2명 이상이면 거의 모든 차일 텐데 다인승 전용차로가 의미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미국에선 거의 모든 사람이 차를 가지고 다니기에 고속도로에서 혼자 차를 타고 가는 사람이 대다수여서, 호브 차선은 확실히 빠르다.
실기시험은 다소 과감한 운전을 요구한다. 한국에서처럼 주위를 살핀다며 서행하다가는 탈락하기 십상이다. 제한속도가 45mile/h인 도로에 진입했다면 진입하는 순간 서둘러 가속 페달을 밟아 제한속도까지 속도를 올려야 한다. 차로를 변경할 때도 주위를 살핀답시고 속도를 줄이면 바로 감점이다. 해당 구간의 제한속도 정도를 유지하면서 차로를 변경해야 한다. 미국에서 가장 헷갈리는 비보호 우회전 역시, 우회전 초록불이 켜져 있다면 속도를 줄이지 말고 바로 가야 한다. 다른 쪽에서 오는 차를 살핀다고 속도를 줄이고 멈춰 섰다가 탈락한 운전자도 있다. 물론 우회전 초록불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잘 살펴야 한다. 후방을 볼 때 백미러뿐만 아니라 고개를 어깨까지 돌려 직접 좌우를 살피는 것도 감독관이 살피는 것 중 하나인데, 후방 카메라가 비춰주는 화면만 보고, 직접 고개를 돌리지 않는 한국의 운전습관은 종종 탈락을 불러온다.

과감한 운전을 강조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게 스톱 사인이니 미국 시스템이 아이러니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교차로에는 대부분 스톱 사인이 있는데, 스톱 사인에선 차가 오든 안 오든 반드시 차를 세웠다 가야 한다. 적당히 속도만 줄이다 출발하는 것 역시 지나가는 경찰에게 잡히면 벌금 부과 대상이다. 이밖에도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 초록불과 빨간불이 번갈아 들어오는데, 우측 표지판에 1 per green이면 초록 불에 한 대씩, 2 per green이면 초록 불에 두 대씩 간다든지, 교차로에서는 먼저 온 차가 먼저 가되, 각 방향에서 한 대씩 번갈아 간다든지 하는 부분 등 미국에서 운전하면서 알아야 할 부분은 적지 않다. 경찰의 수신호 없이도 서로 양보하며 잘 다니는 미국이라지만, 갑작스런 차선 변경이나, 너무 느린 주행이나, 암묵적인 선입선출 원칙을 지키지 않는 운행을 했다가는 차창을 내리고 욕설을 퍼붓는 운전자를 종종 만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땅 넓은 미국에선 운전이 필수다 보니 운전면허 취득 연령도 어리다. 주마다 다르긴 하지만 16세 정도면 learner permit를 받아 운전을 시작할 수 있다. 고속도로를 초고속으로 달리는 차들을 볼 때도 그렇고, 여행을 다니며 구불구불한 절벽 도로조차 브레이크 한번 밟지 않고 가는 차들을 보면 ‘미국 사람들은 다 이렇게 운전을 잘하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일찍 면허를 따거나 부모의 동행 하에서만 운전하는 청소년도 적지 않으니, 미국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다면, 오른쪽 가장자리 차선으로, 딱 제한속도 정도를 유지하며 달리는 게 사고 예방법이다. 게다가 곳곳에서 잘 보이지도 않던 경찰차가 갑자기 등장해 속도위반을 적발하는데 한번 걸리면 수백 달러 벌금이 기본이니, 과감한 미국 스타일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건 또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