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네 살배기 딸까지 3명의 가족이 미국 워싱턴DC 인근에서 1년간 살아갈 집을 구하는 일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년 동안 여행 다녀온다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라고 아내와 얘기를 나눈 직후에도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훗날 저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실 누군가를 위해 제가 집을 구하면서 겪었던 순간들을 남겨봅니다.
① 2024년 3월 중순~4월 초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특파원 선배나 연수를 다녀온 선배들은 “그래도 미국인데 타운하우스에 살아봐야지”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셨습니다. DC 시내는 비싼 렌트 탓에 엄두도 내지 못했고, 조언을 토대로 Reston, Herdon 등 Fairfax County 내에서 떠오르고 있는 주거지역들을 검색해봤습니다. 매달 예산은 $2,500 내외로 잡고 매일 밤 질로우(Zillow)를 들락거렸습니다.
예산에 맞는 집은 너무 낡았고, 마음에 드는 집은 예산을 초과해 버렸고, 또 매물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저희 가족이 입주해야 하는 시기에 매물이 많지 않아 깔끔하게 타운하우스를 포기하고 1 베드룸 아파트먼트로 목표를 수정했습니다.
② 2024년 4월 초~4월 중순
타이슨스(Tysons) 지역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1년 먼저 연수를 떠나셨던 회사 선배가 살았던 곳이었고, 제가 2023년 9월 출장에서 직접 가본적도 있었던 만큼 간접 임장을 해봤던 경험을 되새김질하면서 구글 로드뷰로 기억을 더듬어가며 집을 찾아봤습니다.
질로우와 아파트먼트닷컴에 나오는 모든 아파트의 이름을 외울 정도로 매일 밤 아내와 함께 눈 빠지게 검색하고 아파트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길 반복하면서 신축 아파트 위주로 1베드룸을 찜해뒀습니다.
틈틈이 비엔나(Vienna), 옥튼(Oakton)까지 확장해서 검색했습니다. 그러나 검색 시점에 7월 초 입주 매물이 나오지를 않아서 지금 검색해봤자 무의미하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피폐해지길래 5월이 될 때까지 집 검색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③ 2024년 5월 초
그간 너무 열심히 알아본 탓에 구글 지도를 보며 거리를 가늠할 정도의 지식과 주요 마트가 어디에 포진해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파트먼트 닷컴에서 원하는 정보를 보기 위해 어디를 클릭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 경지에 오르게 됩니다.
다시 간간이 검색해본 비엔나 지역은 타이슨스에 비해 한적하면서도 적당히 마트와 접근성이 좋은 장점이 있었지만, 아파트가 많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페어팩스(Farifax) 지역을 찾아봤는데 이곳엔 아파트가 정말 많았습니다. 게다가 한인 마트(그 유명한 H마트)와 코스트코 등 대부분의 마트가 차량으로 10분 이내 거리이길래 이곳이 바로 우리가 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돌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초초신축인 아파트를 겨냥해(사실상 이때부턴 우리집이라 생각함..) 그 주변의 2, 3개 아파트를 추가해서 이 중 하나로 우리를 받아만 준다면 들어가자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결정 단계다 싶은 마음으로 현지에 계신 선배께 임장을 부탁드렸습니다.
어쩐지 너무 쉽게 풀리는가 싶었는지 반전이 있었습니다. 현지에 머물고 있던 선배께서 직접 예약하고 방문해 영상 통화를 하고, 주변 분위기를 담은 사진과 동영상 등을 보내주셨습니다. 저희가 골랐던 초초신축 아파트는 내부시설과 환경은 정말 좋았지만 주변이 상업지구 같은 곳이라 아이와 함께 지내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라는 피드백을 받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집을 고를 때 선정했던 우선 순위는 신축 아파트일 것, 꼭대기 층일 것(층간소음을 피하려고), 남향집 등 3가지였는데 결국 아이와 함께 집 근처에서 보낼 시간이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파트 단지의 시설과 분위기, 그리고 주변 환경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겁니다.
1순위로 정했던 아파트를 접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2순위 아파트 단지도 선배께서 돌아봐 주셨는데 그곳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우리집이라고 여겼던 곳에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졌습니다. 다시 페어팩스 지역의 다른 아파트들을 알아보자니 이미 돌아선 마음이라 차라리 다른 지역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④ 2024년 5월 중순
저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타운하우스를 알아봐야 하느냐면서 챈틀리(Chantilly), 헤른던, 레스튼에 더해 버지니아주에서 한인들이 최근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센터빌(Centreville)까지 확장해서 기웃거리다가 눈이 빠지려 하기 직전 결단을 내렸습니다.
처음부터 너무 길을 돌아왔다. 그냥 선배가 살고 있고, 제가 직접 가 본 아파트로 결정하자! 선배가 얼마나 고심해서 거주지를 정하셨겠느냐, 그곳으로 가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단순하게 정리하고 선배가 거주하시는 단지의 1베드룸에 꼭대기층(아내가 잠귀가 밝고 예민해서 층간소음은 포기하지 못했습니다)으로 집을 정하고 선배께 투어를 요청드렸습니다.
성심성의껏 온라인 투어를 해주시고 매물로 나온 아파트의 장단점을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이틀 후 저희는 리징오피스와 연락해 집을 계약했습니다. 제한된 예산으로 고환율에 DC와 가까운 곳에 집을 구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 한 두가지만 챙기고 나머지는 포기해야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집을 찾아봤던 것 같습니다.
신축이 아닌 1997년도에 지어진 아파트, 목조 건물이라 벽간소음이 있을 수도 있고,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이라 매일 강제 운동을 해야 하고, 대형마트와는 다소 거리가 있고, 리노베이션이 안 된 집이라 가전 등이 오래되었고, 올 카페트 집이라 먼지가 많을 것이고 등등. 마음에 걸리는 불편 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애초에 설정했던 우선순위를 지켜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⑤ 2024년 7월 입주 이후
출국 전 두 달간 아내와 매일 밤 온라인 임장을 해왔던 시간들이 스쳐지나가면서 허무한 결론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론은 대만족입니다.
30년 가까이 된 집에 리노베이션도 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허물어져가는 집을 생각했던 탓인지 생각보다 깔끔한 집 상태에 놀랐습니다. 카페트는 말끔하게 청소가 돼있었고, 식기세척기와 가스레인지, 오븐, 냉장고(한 번 바꾸었다는 게 함정), 세탁기, 건조기 모두 한국과 비슷한 수준에서 사용 가능했습니다.
⑥ 맺으며
결국 정답은 없는 듯 합니다. 가족마다 우선 순위에 올려놓는 게 모두 다른 것처럼, 집 역시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조건을 충족한다면 그곳보다 나은 집은 없을 겁니다.
물론 막상 와서 임장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보니 ‘아, 저 동네로 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가끔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마다 복층 창문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과, 창밖에서 들리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다시금 ‘집 참 잘 골랐구나’라는 위안을 삼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8월 하순, 아침 저녁으로 맞아오는 찬 바람을 맞으며,
버지니아 타이슨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