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수생활을 하는 동안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연수초기 정착하는 과정에서 좌충우돌하면서 여러 경험들을 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 여름밤에 전기도 없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이틀을 지샌 경험은, 아무나 해보지 못한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됐습니다.
다른 지역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있는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아파트의 경우 미국에 도착하기전에 한국에서 미리 미국 전기회사에 전기신청을 해놓고 와야 합니다. 채플힐 지역 전기회사는 ‘듀크에너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직접 국제전화를 해서 계약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미국 사람들에게는 사람마다 있는 SSN(Social Security Number)라는게 필요한데, 문제는 연수생들에게는 SSN이 없다는 것입니다.(SSN은 미국에 도착한 이후에 별도 절차를 거쳐 나중에 받게됩니다.)
일부 연수생들은 미국 전기회사 직원에게 SSN이 없다고 말하고, 대신 여권과 비자를 팩스로 보내주고 전기신청이 가능했다고 합니다만, 이는 아주 운이 좋은 경우이고 대부분은 거절당합니다. 이 경우 자기가 미국에서 들어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사정 이야기를 하면, 사무소측이 자신들의 명의로 전기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연수생들은 미국에 들어간 뒤 본인 명의로 계약을 바꾸면 됩니다. 저 역시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사정 이야기를 했고, 미국 직원은 ‘노 프라블럼’이라며 아무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7월 21일 막상 미국에 도착한 뒤 아파트에 가보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게 아닙니까! 황당해서 관리사무소측에 따졌더니, 듀크에너지 탓을 하며 내일이면 전기가 들어올거라고 하더군요. 그럼 그동안 “나는 어떡하냐”고 물었더니, 자신들도 모르겠다며 “I’m sorry”라는 말만 하더군요. 아, 그때 난감함이란.. 한국 같았으면 뭔가 뒤집어 엎었을텐데 참고 또 참았습니다.
에어컨도 나오지않던 무더운 그날 밤, 9시쯤 날이 완전히 어두어지기 직전 급하게 샤워를 한 뒤, 곧바로 침대에 들어갔습니다. (**다행히 수돗물은 나왔습니다.) 애써 뒤척이며 잠을 청했고, 장거리 비행으로 피곤했던지 30여분만에 곯아떨어졌던것 같습니다.
문제는 다음입니다. 새벽 1시쯤 눈이 번쩍 떠지더군요. 시차적응이 안되다보니, 잠에서 깬 것입니다. 아! 이후를 상상해보십시오. 불도 안켜지지, 인터넷도 못하지, 책도 못읽지, 에어컨도 안들어오지, 밤새 침대에서 발버둥을 쳤지만 잠은 오지않지… 그렇게 밤을 꼴딱 샜습니다.
다음날 기진맥진한 상태로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오늘은 전기 들어오지?”하고 물었더니, 백인 직원이 천연덕스럽게 전기회사에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하더군요. 그러더니 웬걸,
“오늘까지는 자기네 사정으로 전기가 안들어온다”는 것 아닙니까!
아, 그순간 수많은 생각과 욕설들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여기서 한바탕할까 말까… 하지만 결국 참았습니다. 앞으로 1년을 보고 살아야할텐데 처음부터 싸우면 1년내낸 피곤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룻밤만 더 보내면 되는데 뭘..” 하는 생각으로 이틀째 밤도 똑같은 방식으로 잠자리에 들었지만, 역시 똑같은 새벽 시간에 깨어나, 밤새 발버둥을 쳐야했습니다.
다음날 오전 11시쯤, 이젠 도저히 못견디겠다는 심정으로 관리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오늘은?”
“기다려봐. 전기회사에 전화해볼게.
으잉. 오늘도 모르겠다는데!”
“뎀!”
당장 눈앞에 백인 직원을 때려 눕히고 싶었지만, 전략상 일단 철수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왜 바보같이 참았냐?”고 묻는 분이 있다면 미국인들을 잘 몰라서 하시는 질문입니다. 미군 부대에서 군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 가운데 하나는 미국인들과 감정적으로 흥분한 상태에서 논쟁을 하면 대부분 손해라는 점입니다. (냉정하게 앞뒤를 따져보고, 요구할 부분을 분명하게 정해놓은 뒤에 냉정하게 담판을 짓는게 현명한 방법입니다.)
오후 4시까지 기다려본 뒤에, 그래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파트를 옮겨달라고 하든지, 아니면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동안 날들의 집세를 되돌려달라고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분을 삭이고 있는데, 오후 2시쯤되니 전기가 들어오더군요. 아, 그때 기분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제 살았다”는게 딱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다행히 집사람과 딸아이는 저보다 며칠 뒤에 미국에 온 덕분에 험한 고생을 겪지 않았답니다. 집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자기는 모르는 일이라는 듯, 아무렇지않게 웃어 넘기더군요. 딸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고..
이후 제가 전기없이 이틀밤을 견뎌낸 소식은 곧바로 아파트 주민들한테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한국 연수생들은 저와 처음 인사할 때 “아, 전기없이 사신 분”하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문명의 이기와 동떨어져 한여름밤 암흑 속에서 발버둥치며 보냈던 날들이 벌써 아득한 추억처럼 느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