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라도 해외 연수를 고민하는
‘엄마’ 기자가 있다면 도움이 되고 싶어서 씁니다.
1. 아이를 혼자서 케어해야 하더라도 망설이지 말 것.
해외 장기 연수를 가는 기자의 성별을 따져본 적은 없지만 느낌상 여성 기자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주위에서 연수를 가고 싶지만 배우자가 휴직할 수 없어서 고민하는 경우를 꽤 봤다. 미국 연수를 만 8개월을 지나고 있는 시점에서 ‘엄마’인 내가 혼자서 아이를 데리고 미국 온 사람으로서 조언해주길 무조건 지원하고 보라는 것이다. 물론 온가족이 함께 1년간 같이 올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모든 사람의 여건이 같을 수는 없다. 아이들을 오롯이 혼자 케어하는 일은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아이가 학교를 가 있는 시간 또는 잠들어있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한국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누릴 수 없는 시간이다.
2. 가사에 투여하는 시간 줄이기
CAHSE 은행에 신용카드 때문에 방문했을 때 일이다.
체이스 은행 부지점장 사무실에 들어갔다. 체이스 직원이 체이스 신용카드사로 전화를 해야 했는데 연결되는 데 상당히 오래 걸려 이 부지점장과 졸지에 오래 이야기할 시간이 생겼다. 부지점장은 여성이었다. 이분의 개인 사무실 선반은 아이들 사진과 가족 사진, 아이들이 mother day에 보낸 카드로 가득했다. “나는 세 아이의 엄마입니다”라는 분위기가 팍팍 묻어났다.
이곳 시애틀에서 1학년 아이를 혼자서 케어한다고 하자 그 사람은 무척이나 놀라워했다. “admire”라고 표현했다. 혼자서 어떻게 아이를 라이딩하고 집안일까지 다 하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 청소는 잘 안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 부지점장의 대답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 있는 1년 동안 우선순위를 두고 네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해”
한국에는 가사와 육아를 도와주시는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이 계시다. 남편도 가사와 육아 절반은 한다. 그러나 외국 생활을 혼자서 하면서 아이 케어와 가사일을 모두 완벽히 잘할 수 없다. 일정 부분은 내려놔야 한다.
청소는 일주일에 한번만 간단히 했다. 주중에 지저분한 부분이 보이더라도 눈을 감았다. 내 집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를 하자면 끝도 없을 것 같다. 어차피 1년 살고 나갈 집이다. 청소에 시간을 쓰느니 내 시간을 다 갖는 게 옳다! 장보러 가는 시간도 가능한한 줄이려고 노력했다. 다만 미국 마트 구경이 재미있기는 하다. 처음에 이곳저곳 구경하는 재미를 느끼고 난 다음에는 마트 갈 일을 최소화했다. 일주일에 한두번으로 좁혔다. 요리 시간도 줄여보려고 애썼다. 처음에는 냉동야채와 냉동식품을 적극 이용했다. 그러다가 아이에게 약간의 죄책감이 들어서 냉동식품을 조금씩 줄였다. 대신 한 가지 요리재료를 사면, ‘원소스 멀티유즈’ 방법을 썼다. 예를 들어 코스트코에서 파는 다진 소고기를 사다가 미역국을 끓이고, 카레를 만들고, 일부는 야채 섞어서 햄버거 패티를 만들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볶음밥용으로 꺼내 썼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요리하기!
3. no school day 프로그램 적극 활용하기
얼마전 학교의 teacher’s work day라고 해서 학교를 하루 쉬는 날이 있었다. 보통 학교를 가지 않는 때에는 여행을 많이 가지만 한달 뒤에 긴 로드트립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평일이었던 그날은 따로 여행을 준비하기 부담스러웠다. 그날은 특히 자원봉사 가는 날이었다. 고민 끝에 ‘엄마의 자유’를 선택했다. 아이를 최대한 미국 프로그램에 넣어두는 것이다. 영어에 더 노출 시키자는 뜻도 없지 않았다.
미국에도 워킹맘, 워킹대디가 있다. 이들을 위해 지역의 커뮤니티 센터라든지 비영리 단체, 또는 사설 업체 등에서는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을 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가격도 싼 편이다.
집근처 비영리 단체인 Boys & Girls 클럽의 원데이 캠프를 보냈다. 딱히 공부를 가르치는 것은 없다. 게임하고, 운동하고, 놀이터에서 놀고, 잔디밭에서 그룹 활동하고, 그림 그리는 등 소소하지만 하루 종일 아이가 즐거워할 활동을 한다. 오후 6시까지 문을 여는 곳이었는데 오후 5시에 데리러 갔더니 아이는 “왜 일찍 왔느냐”고 반문했다.
비영리 단체나 커뮤니티 센터가 아니어도 사설 스포츠 클럽에도 원데이 프로그램이 있다. 축구나 야구 등을 반나절 또는 하루 종일 택할 수 있다. 찾아보면 방법은 많다.
4. 아이가 어리다면?
대부분 해외 연수는 적어도 미국의 경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될 때 가라는 게 정설이다. 이 정설은 100% 맞다. 한국 나이로 만 5세는 되어야 미국의 킨더 과정에 입학할 수 있으니 ‘엄마’ 기자 혼자 연수를 간다면 그 나이까지는 기다리는 게 좋다.
미국의 프리 스쿨 가격은 상당히 비싸다. 시애틀 다운타운 프리스쿨은 한달에 2000달러를 훌쩍 뛰어 넘는다. 점심 식사는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하루 3시간 한달 동안 보내는 프리스쿨도 1000달러는 족히 내야 한다. 비용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아이와 함께 연수를 가겠다고 결심했다면, 킨더에 입학할 수 있는 만 5세는 되어야 편하다. 물론 킨더 입학 시기를 가르는 태어난 월 기준도 주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5. 외국에서도 주변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기
한번은 연수 주제와 관련해서 세미나를 들어야 했다. 토요일 하루 종일 하는 행사였다. 낮에 줌으로 열리는 세미나는 아이에게 넷플릭스를 안겨 주며 버텼지만, 밤에 열리는 네트워킹 행사에 아이를 데려갈 수는 없었다. 미국 온지 두달쯤 밖에 되지 않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코로나 시국이었다. 시터를 고용하기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그때 교회 분이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주말 저녁에 남의 가족에게 민폐 같았지만 시터를 부르는 것보다 훨씬 안심이 됐기에 눈을 질끈 감았다. 이처럼 ‘엄마’ 기자 혼자서 해외 생활을 하려면 긴급 상황에서 SOS를 칠 수 있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
한번은 마트 주차장에서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다. 사고도 사고지만 이미 아이의 하교 시간이 30분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사고를 낸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흘렀다. 학교와는 10분 떨어진 곳이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시간이 매일 학교 앞에서 만나는 미국인 엄마가 떠올랐지만 당장 전화번호가 없었다. 집에 책자로만 있지 당장 내 휴대폰에 저장된 번호는 없었다. 정말 다행히 사고를 낸 당사자와 이야기가 빨리 잘 돼서 가까스로 학교에 딱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바로 매일 학교 앞에서 만나는 미국인 엄마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누구든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긴급 연락처 하나쯤은 필수로 휴대폰에 저장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