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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언론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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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수 1, 길다고는 하지만 방심하면 아쉽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연구 외에도 여행, 육아, 자녀교육, 독서, 영어, 골프 등 다양한 관심 분야 가운데 몇 가지 목표를 정해놓고 시간을 보내라는 충고를 주변에서 듣게 된다. 나의 경우 현지 방송국에서 3달 정도 객원기자로 있었던 경험을 후임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앞으로 미국으로 연수를 오게 될 LG 펠로들도 현지에 도착해서, 또는 한국에서 연수를 준비하면서 객원기자나 인턴기자 기회를 엿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5년 안팎으로 언론 현업에서 종사해 온 마당에 대학생들이나 참여하는 인턴십에서 무슨 배울게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을 줄로 안다. 하지만 같은 교실에서 뭔가를 배운다고 할 때 유치원생이 얻는 것과 대학생이 얻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미국의 언론기관은 대개 인턴십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인턴을 담당하는 실무자가 별도로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이는 우리와 기자 충원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개채용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경력과 실무 위주로 채용한다. 따라서 인턴도 실무능력 검증을 통한 또 하나의 채용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응모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관심있는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된다. 이곳에는 채용란(career)이 마련돼 있는데 대개 인턴십 코너도 별도로 나와 있다. 어느 시기에 어떤 분야에서 인턴을 모집하는지, 절차와 조건 등 다양한 정보가 올라와 있다. 그러면 이 가운데 맞는 분야를 선택해서 이력서와 함께 레터를 보내면 된다.




나의 경우 라디오 방송사에 종사하다보니 연수오기 전 미국 라디오 방송국에 응모를 했다. 미국 라디오 방송사의 뉴스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는 크게 세 가지였다. 일하는 프로세스가 우리와 세부적으로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일하는 문화와 조직의 운영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지 등이었다. 그래서 미국 최대 라디오 뉴스 채널인 NPR 등 몇 개 방송사의 인턴담당자 앞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지만 이해를 못할 바도 아니었다. 그래서 착안한 것이 현지의 한인 언론학자를 앞세워 컨택 해 보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재미 언론학자가 있었냐고? 물론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그가 지구상의 어디에 있건 몇 다리 걸치면 다 나오기 마련 아니겠는가? 그래서 연락이 닿은 사람이 Texas State University 저널리즘스쿨의 모 교수였다. 이 교수의 도움을 받아 미국 오스틴 라디오 방송사 2곳에서 최종적으로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 곳에서는 그의 도움 없이 먼저 연락이 왔고, 나머지 한 곳의 경우는 그가 전화를 해줘서 연락이 닿았다. 결국 이 가운데 한곳인 오스틴의 공영라디오 방송사이자 NPR의 회원사(member station)KUT에서 객원기자(visiting reporter)라는 타이틀을 받고 일하게 됐다.




내가 이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외국인 기자가 그것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기자가 자기 방송사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객원기자로 받아줬을까? 그런데 이 방송사에 가 보니 나 외에도 외국에서 온 기자들이 심심찮게 있었다. 독일 라디오 방송 기자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3개월 정도 교환기자(exchange reporter)로 일했고, 아프가니스탄 라디오 방송 기자도 2주 정도 체류했다. 또 튀니지아의 방송전공 대학원생 2명도 1주일 정도 머물렀다. 나중에 이 방송사의 CEO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의문이 다소 풀렸다.




우선 이 회사가 공영이라는 점에서 인턴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이 기회를 제공하자는 게 이 회사의 원칙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유는 미국 사회가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불리듯이 다양한 문화적 백그라운드와 다른 지식을 가진 사람과 함께 호흡하면 내부 기자들의 퍼스펙티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직감으로는 외국인 기자가 있어야 해당 국가 출신 오디언스를 잠재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는 이곳에서 스페인어를 잘하는 기자를 선호하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오스틴의 경우 인구 5명 가운데 3명이 히스페닉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방송사는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기자를 선호한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오스틴 인구의 1%가 한국인인 만큼 한국출신 기자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믿었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 회사에 처음 갔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첫날 로비에서 나를 맞이한 안내 데스크가 직접 나를 보도국으로 데려갔는데, 다름 아닌 회의실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 때가 아침 회의 시간이었는데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됐다. 누군가(나중에 알고 보니 보도국장이었다) 회의를 잠시 중단하더니 그 곳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게 했다. 소개 시간이 끝난 뒤 회의는 그대로 진행됐다. 내가 그대로 앉아있는 채로였다. 우리의 경우 외부인은 회의에서 배제하는 것이 상례지만 그 곳에서는 안그랬다. 나중에 물어보니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보도국에서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도국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특히 어느 기자가 무슨 취재를 하는지 공유하고 있어야 서로 간에 취재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회의는, 한 사람씩 발제를 하면 그 아이템에 대해 각자가 의견을 개진하고 언제 어떻게 아이템을 소화할 것인지를 결정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리와 비슷했지만 차이가 있었던 것은 회의 자료가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백지에서 논의했다.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였지만 회의 시간에 박장대소가 끊이지 않는 등 회의 자체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또 하나의 차이는 회의를 반드시 선임자가 주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상식으로는 아침 회의 같으면 보도국장이 주재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날의 경우 정치 담당 시니어 리포터가 회의를 진행했다. 이것을 그들은 communal 방식의 미팅이라 했다. 나중에 이유를 들으니 그렇게 해야 미팅이 매우 개방적으로 진행될 수 있고, 따라서 참여도가 높다고 했다.




3개월간의 객원기자 생활은 지금 생각해보면 모험이었다. 미국의 기자들 역시 특종에 대한 욕심과 마감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에서의 갈등 등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의 기자들과 비슷한 처지였다. 때로는 긴장감이 감도는 보도국에서 동양에서 온 외계인이 그들과 무리 없이 부드럽게 또 유쾌하게 섞이기는 무리였다는 생각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선택을 한 것에 만족하고 다른 한국기자들에게도 한 번정도는 객원기자로 참여해 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한갓 이방인으로 밖에는 남을 수 없었을 연수 기간에 외국인, 외국사회, 외국회사, 외국문화에 흠뻑 젖은 채 현지인처럼 생활하며 현지에 대한 이해 폭을 넓힐 수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