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대만 그리고 대륙
외국인 친구를 사귈 때는 양국의 가수나 드라마 얘기만큼 흥미로운 게 없다. 문화적 관심을 확인하는 게 공통의 화두가 되곤 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당황스러울 때도 있다.
변호사로 일하는 중국인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아주 오래된 드라마 ‘포청천’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북송 시절의 청렴한 관료의 얘기인데 90년대 초반 한국에선 죄인을 개작두로 단죄하는 판관으로 유명했다.
30~40대 중국인들도 어린 시절 들은 판관의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대화 도중 나는 그 시절 한국에는 홍콩이나 대만 드라마도 많이 수입돼서 ‘포청천’이 중국 드라마가 맞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콩 대만 중국’이라고 말하지 않고 ‘홍콩 대만 대륙’이라고 표현했다. 우연히 튀어나온 말이었다.
중국 생활에 필요한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다보면 현재 자신의 위치를 선택해야 한다. 이때 중국 본토를 따루(大陆 대륙)라고 표기한 걸 자주 볼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중국이라는 단어 대신 대륙이라는 단어를 갑자기 사용하게 됐다.
그런데 중국인 친구는 “너의 정치적 소양이 뛰어나다”며 극찬했다. 칭찬 받는 것이야 기분 좋은 일이지만, 정치적 소양을 운운하니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유는 양안 관계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관점이 ‘대륙’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된다는 것이다. 대만은 중국의 영토이고, 대만과 중국 본토(대륙)을 합친 게 중국이라는 뜻이다.
대만 섬은 중국 푸젠성(복건성)과 가장 가깝다.
한국에서 “제주도와 한국”, “강화도와 한국”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다만 중국 밖 세상에서 대만과 중국은 별개의 국가로 여겨진다. 중국이 대만을 강제로 합병할 경우 침공이라고 여겨질 것이다. 그런데 중국인들에게 대만은 이미 중국 영토인 것이고, 앞으로의 과제는 대만 침공이 아닌 양안 관계의 정상화인 것이다.
중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이 같은 생각은 연령이 낮아질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 같다. 1980년대 말 ‘천안문 사태’ 이후 태어난 세대의 경우 국가관에 대한 교육을 더욱 강하게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이 이끌어 갈 앞으로의 중국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