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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어디까지 해봤니… 미국의 환불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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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어디까지 해봤니… 미국의 환불 문화

한국의 배달서비스가 전 세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면 미국에선 환불정책이 소위 말하는 ‘차원이 다른 수준’(Another level)이라 부를 만했다. 우리 가족의 미국 정착은 환불에서 시작해 환불로 귀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미국에 도착한 이튿날 아파트 임대사무소에 들러 거주할 집의 열쇠를 전달받았다. 새집에 들어갔을 때의 들뜬 기분은 텅 빈 공간이 주는 공허함으로 인해 이내 희석됐다. 집이 좋긴 한데 퀭하게 비어 있으니 기분이 몹시 허전했다. 이 공간을 채울 침대, 소파, 책상, 식탁 등 가구와 생존에 필요한 생필품이 무엇보다 필요한 상황이었고, 입주 첫날부터 우리는 마트로 출퇴근하면서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진1] 월마트 전경

첫 시작은 창고형 유통매장인 코스트코였다. 잽싸게 회원카드를 만들고 생활용품 코너를 돌며 식기류, 생수, 화장지, 식재료 등 마구잡이로 넣다 보니 마트를 절반도 안 돌았는데 벌써 카트가 꽉 찼다. 코스트코에선 이 정도로 하고 바로 옆 월마트로 이동했다. 코스트코가 묶음상품만 파는 것과 달리 월마트는 낱개로 구매할 수 있어 사야 할 품목이 달랐다. 이번엔 소모성 주방용품과 휴지통, 로션 등 낱개로 파는 생활용품을 잔뜩 담았다.


[사진2] 월마트 내부

집에 와서 보니 어떤 품목은 코스트코가 낫고 어떤 건 월마트가 나았다. 우리는 일부 품목도 환불할 겸 다음 날 마트를 재방문했다. 전날 코스트코에서 구매한 일부 품목을 들고 환불 창구로 향했다. 첫 반납 품목은 와인잔이었다. 유리인 줄 알고 샀는데 플라스틱 재질이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코스트코 직원은 환불 이유만 묻고 바로 돈을 돌려줬다. 우리는 돈을 챙겨 들고 옆 월마트로 가서 다시 쇼핑 삼매경에 빠졌다.

이튿날에는 필요한 가구를 사기 위해 이케아로 향했다. 이케아에 가니 이전에 월마트에서 샀던 것보다 훨씬 나은 질에 더 저렴한 품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카트 2개가 가득 찰 정도로 물품을 실어 집으로 돌아왔다. 이케아가 더 질이 좋았던 품목은 샤워실 물품 걸이, 화장실 발판, 주방용품 등이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가 월마트에서 구매해 이미 사용한 물품과 중복됐다. 아내는 이미 사용한 물건에 대한 환불에도 거침없었다. 포장용 상자까지 버려 담을 데도 마땅치 않았는데 검정 비닐 봉투에 넣고 월마트로 향했다. 욕실용품 일부에는 심지어 머리카락 등 이물질도 묻어 있었다. 월마트 직원이 “이미 사용한 것이냐”고 물으며 쳐다봤다. 아내는 “시험 삼아 잠깐 쓰고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꾸고 싶다”고 답했는데 직원은 영수증만 확인하더니 바로 돈을 돌려줬다.


[사진3] 월마트 고객센터

이번에는 이케아에서 산 품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 책상을 사서 조립했는데 조립과정에서 합판 일부가 부러지는 등 손상이 발생했다. 다행히 사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아내는 “중고물품 매매 장터에 더 괜찮은 책상이 있다. 이케아에 환불하자”고 제안했다. 조립과정에서 사용자 부주의로 손상됐는데 환불이 가능할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는데 아내는 거침없었다. 차에 책상을 실어만 달라고 해서 차에 실었고 아내가 혼자 가서 기어코 돈을 받아왔다. 아내는 이케아 직원에게 “애초부터 부실해서 조립과정에서 부러진 것”이라고 설명했고 그 직원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환불에 응했다. 그렇게 우리는 마트에서 ‘사고 환불하기’를 일상처럼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우리의 환불은 점차 고급상품까지 확대됐다. 점 찍어 둔 중고차를 구매했고 차를 몰고 떠나기 전 차량 운행을 위한 자동차보험이 필요했다. 자동차 판매장의 딜러는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A 업체 자동차보험을 온라인으로 가입하도록 도와줬고, 이후 차를 몰고 귀가했다. 딜러는 “일단 이 보험으로 임시 운행하고 다른 보험으로 갈아타면 됩니다. 다들 그렇게 많이 합니다”라고 귀띔했다. 집으로 돌아와 B 보험사 웹사이트에 들어가 견적을 내봤다. 500달러 수준으로 A 업체의 절반에 불과했다. 게다가 집렌트 보험이랑 묶음으로 하면 집렌트 보험도 이전에 가입했던 C 보험보다 더 저렴했다. A 업체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보험 취소하겠다고 했더니 정책번호(Policy number), 본인확인, 해지이유 딱 3가지 확인하고 바로 취소 처리해줬다. “고객님 우리 정책이 뭐가 더 좋고 어떤 점을 추가하면 혜택이 커집니다”와 같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실랑이가 전혀 없었다. 당연히 취소에 따른 위약금도 없었다. 그저 사용한 날짜에 대한 금액만 날짜로 계산해 제외하고 환불하는 조치만 있었다.

집 임차 보험 역시 C업체에 전화해 취소하겠다고 하니 앞서와 같이 3가지만 물어봤다. 해지 이유는 ‘더 싼 상품을 찾았다’고 일괄적으로 대답했는데 이후에는 더 묻지 않았다. 이 업체 역시 위약금이 전혀 없었다. 환급금은 3~4일 이내에 카드사로 다시 입금된 것이 확인됐다.

앞으로 미국 거주기간 동안 얼마나 더 많은 환불을 할지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이곳 미국의 환불 정책은 확실히 고객 친화적이며 우리 기업이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환불과 관련해 여전히 소비자 분쟁이 많다는 점은 우리가 개선해야 할 사안이 많다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기업 입장에선 이익만 쏙 빼먹는 ‘체리피커’나 악질 고객인 ‘블랙 컨슈머’에 대한 대응책도 필요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