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드디어 발견한 오븐 장갑! 가면 늘 있는 오븐 장갑이 아니다. 여기는 중고 거래 장터니까, 날마다 있는 오븐 장갑이 아니다, 그 말씀이다. 몇 번을 찾았지만 그때마다 헛수고였다. 미국에 온 지 한 달.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하필 오븐 장갑을 쓰지 않았다. 분명 오븐은 있는데 말이다. 매번 행주를 겹쳐 달아오른 오븐판을 잡느라 고생이었다. 더군다나 오븐 장갑 하나에 1달러라니. 달러는 못 벌고, 쓰기만 하는 처지에서 1달러 중고 제품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칭찬해, 참 잘했어요 마음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민망한 셀프 칭찬
셀프 칭찬이 부끄러워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며칠 뒤 가게 된 ‘달러트리’ 매장. 미국의 다이소 같은 곳이다. 각종 생활용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그런데 중고 장터에서 어렵사리 건졌다고 좋아한 오븐 장갑을 달러트리에서 발견하고 말았다. 애꿎게도 너무나 똑같이 생겨버린 장갑. 달러트리에서는 이 제품이 1.25달러였다.
게다가 훨씬 더 다양하고 예쁜 제품들이 많았다.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할로윈 느낌의 오븐 장갑까지. 중고 장터를 들락거리면서 아낀 돈이 최소한 5~6달러는 되는 줄 알았건만, 실제로는 0.25달러에 그쳤던 것이다. 난 와이프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달러트리 오븐 장갑은 왜 1달러가 아니고, 1.25달러였을까? 달러트리는 주로 1달러 제품을 파는 곳 아니었던가? 매장을 둘러보니 1달러 제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진열된 할로윈 카드만 1개당 1달러. 다른 대부분 제품에는 1.25라고 붙어 있었다.
알고 보니, 달러트리가 제품의 기본 가격을 1.25달러로 인상한 것은 2021년이었다. 1986년 ‘모든 것은 1달러’ 모델로 시작했지만, 세월과 함께 오르는 물가에 맞서 가격을 방어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러다 35년 만에 브랜드의 상징과도 같은 ‘1달러’를 버린 것이다.
달러트리의 ‘모험’
우리나라 다이소가 “지금부터 1,250원에 팝니다”라고 선언하면 어떻게 될까? 달러트리가 단행한 기본 가격 인상이 그랬다. 반면, 또 하나의 미국판 다이소 ‘달러 제너럴’은 기본 가격 1달러를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물론 달러 제너럴도 달러트리처럼 1달러 이상 제품이 수두룩하지만 브랜드의 상징 ‘1달러’는 아직 흔들리지 않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달러 제너럴 매장에 가보면 3달러, 5달러, 6달러 제품들 사이에 1달러 제품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5달러 이하 제품만 판매하는 “Five Below”라는 브랜드도 좀 더 비싼 제품을 모은 “Five Beyond” 코너를 2019년부터 별도로 운영해오고 있지만, 자사의 상징 5달러는 건드리지 않는다. 달러트리의 ‘1달러’는 어디로 갔는가?
흔들리는 달러트리
1달러 상징을 포기한지 3년. 달러트리는 어떻게 되고 있을까. 제품 가격은 점점 잡탕이 되는 것 같다. 달러트리 제품의 최고 가격은 지난해 5달러였지만, 올해 7달러가 되었다. 마치 다이소가 1천 원짜리 물건 가격표를 1,250원으로 전부 교체하고, 7천 원짜리를 새로 들여오는 모습이다.
달러트리가 과거 인수한 경쟁 브랜드, 지금은 달러트리 자회사가 된 ‘패밀리 달러’는 올해 매장 1,000개를 폐쇄할 계획이라고 하더니, 급기야 달러트리가 ‘패밀리 달러’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도 나왔다. 달러트리 주가(DLTR)는 올해 꾸준히 하락하고 하락해 연초 대비 반토막이 났다. 물론 달러 제너럴 주가도 맥없이 떨어지고 있으니 달러트리의 1달러 포기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겠다.
‘미국판 다이소’ 살아날 수 있을까?
목장갑을 사려고 다시 찾아간 달러트리 매장. 집에 아직 없는 것이 많아서, 달러트리는 나름 괜찮은 선택이다. 1년 미만으로 쓰고 버릴 만한 물건을 미국에서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 하지만 달러트리의 과거를 알고 나니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직원 사무실 앞에는 늘 정리되지 않은 물건 박스가 카트에 가득 담겨 방치되어 있다. 그날만 그랬을까?
아니, 청소솔을 사러 간 날도 그랬다. 재고를 정리하는 직원은 없고, 박스를 치우는 사람도 없으며, 통로에는 잔뜩 떨어진 물건이 정리를 기다리고 있고, 주방 코너에 누군가 놓고 간 과자는 그대로이며, 계산대는 4개지만 늘 1개만 이용 가능하다. 계산대에는 며칠 전에 본 영혼없는 청년이 그대로다. 비용 줄인다고 허리띠를 하도 졸라매서 허리가 끊어지기 직전인 현장이다. 달러트리는 다시 예전의 활기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