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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달러짜리 중고책, 배송료가 더 비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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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출국에 앞서 짐 너덧 상자를 미리 미국으로 부쳤다. 겨울옷, 이불 등 나중에 필요할 물건들 약간을 빼면 대부분 책이었다.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읽을거리들이 거의 다였다. 아내는 누군가에게 들었다며 아이에게 한글로 된 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낯선 곳에 익숙해지는 과정에 가끔씩 한글 책을 보는 게 심리적 위안이 상당히 된다는 것이었다.


한글 책이 아들 녀석의 정서에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는 예상보다 꽤 빨리 적응했다. 다른 나이대에 견줘 만 8~9살 때 언어 습득 능력을 포함해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하지만, 쉽사리 적응이 이뤄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주변에서 듣기론 아이들이 미국 도착 뒤 6개월이 되기까지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는 경우도 많고 잘 지내는 듯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는데 6개월가량만 넘기면 이런 증상들이 삽시간에 사라진다고 한다.


속내는 어떤지 몰라도 다행히 아이는 내내 즐거워 보였다. 도리어 부모의 쓸데없는 걱정이 더 컸던 건 아닐까 싶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지 두세 달 만에 가정통신문으로 아이가 영어책 읽기를 시작한다는 연락이 왔다. 학교에 책이 몇 권 비치돼 있지만 학생 수만큼 있진 않으니 가능하면 구입해서 준비해두라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걱정이 많았다. 아이가 간단한 영어 대화는 할 줄 안다지만 동화책이라 해도 수업시간에 따라가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싶다는 것이었다. 플로리다에서 주로 활동한 아동문학가 케이트 디카밀로(Kate DiCamillo)가 그 책이었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작품이 뛰어날뿐더러 미국이 정말 사랑하는 동화작가다. 우리나라에는 <내 친구 윈딕시>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아내는 한글 책을 구해다 미리 읽히는 게 좋지 않겠냐고 했지만, 한글 책을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한 인터넷마켓플레이스에서 한글 책을 발견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쌌고 한국에서 배송시키려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터였다.


결국 내가 아이와 영어 책을 함께 읽어나가기로 했다. 매일 5~6쪽씩 저녁 때 읽고 이야기해봤더니 별로 도와줄 필요가 없는 것 같았다. 가르쳐주지 않아도 충분히 책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한국어로 번역해 이해하는 게 아니라 영어 그 자체로 뜻을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한국사람이 한국어를 별다른 중간 과정 없이 곧바로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또래 아이들이 언어 습득 능력이 좋은 것이 이런 식으로 언어를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지 여부와 무관하게 나와 아이에겐 좋은 경험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는 를 계기로 영어 책에도 재미를 붙이게 됐고, 나 역시 아이와 어떤 특별한 교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스타워즈나 레고와 관련된 영어 책에만 관심을 갖던 아이는 다른 이야기 책들로도 관심의 범위를 넓혔다. 미국 아이들을 위해 나와 있는 책들은 대다수가 시리즈물이다. 어른의 시각이 늘 옳은 것은 아니지만 고전까지는 아니어도 <다이어리 오브 윔피키드> 시리즈류만 읽는 것은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반스앤노블 같은 대형 서점에서 좋은 책들을 사주기엔 가격이 또 만만치 않았다. 곳곳에 훌륭한 도서관을 활용해도 된다. 하지만 여러 야외활동 때문에 도서관 갈 시간이 부족한 아이를 위해 아마존닷컴을 뒤지기 시작했다.


아이의 흥미를 끌면서 책읽기의 맛도 체득하게 해주고 영어 공부까지 되는 책은 뭐가 있을까. 아이가 한국에서도 도서관에서 빌려다 즐겁게 읽었던 <해리 포터> 시리즈가 눈에 띄었다. 미국에선 같은 책이라도 하드커버, 페이퍼백, 전자책 버전으로 출간된다. 당연히 하드커버가 가장 비싸고 페이퍼백이 조금 저렴하며 전자책이 가장 싸다. 7편 시리즈로 출간된 해리 포터는 신간이 아니기에 가격이 적당히 할인돼 팔리고 있었다. 하드 커버는 7권 전체가 113달러였다. 페이퍼백 세트는 50달러대였고 전자책인 킨들 버전 48달러 정도로 조금 더 저렴했지만 아이에게 태블릿 피시로 책을 읽힐 생각은 없어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해리 포터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잘 몰랐지만 한국에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전체 23권으로 번역돼 있었다. 각 권 당 평균 3권 이상으로 쪼개서 펴낸 셈이다. 가격은 20만원에 가까우니 미국 책 가격에 견줘 4배가량 된다. 장삿속이 해도 너무한다 싶다. 영어 공부 열풍이 새삼스럽지 않은 한국에서도 영어 원서로 해리 포터 시리즈가 팔리고 있다. 영어 원서 세트 가격은 대략 페이퍼백이 싸게는 55000원에서 시작하고 보통 9만원 이상에서 가격이 형성돼 있다. 하드커버는 15만원 안팎이다.


책 가격이 한국에 견줘 미국이 싸지 않지만 얼마든지 저렴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페이퍼백 시리즈 새 책을 구입하려다 헌 책을 구입하기로 했다. 소장할 책이 아니라면 결론적으로 헌 책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흥미롭게도 미국에선 헌 책은 가장 저렴한 경우 0.01달러에서 시작한다. 우리 돈으로 11원가량밖에 안 하는데, 무료로 줄 수 없으니 형식적으로 가격을 매겨둔 게 아닌가 싶다. 더 재미난 건, 0.01달러짜리 헌 책의 배송료가 3.99달러로 돼 있다는 것. 합치면 4달러다. 땅 덩어리가 넓으니 배송료도 배송 거리에 따라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거리가 멀수록 배송료가 물건 가격보다 비싼 경우도 허다하다.


아마존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때 대학에 소속돼 있음을 증명하면 이른바 ‘Prime’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음악이나 영화 서비스는 무료로 받아볼 수 없지만 무료 배송 혜택이 많이 주어진다. 대학 소속 증명은 대학 도메인에 등록된 이메일 주소를 기입하면 된다. 프라임 혜택이 적용된 상품의 경우 최소 이틀이면 물건을 받아볼 수 있으니 무척 편리하다. 하지만 헌 책의 경우 프라임 혜택이 주어진 경우가 없다. 배송 예상일도 거의 보름의 범위로 주어질 정도여서 빨리 받아보기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심한 경우 3주가량 걸리는 경우도 있으므로 빨리 읽어야 할 책을 느리게 배송될 헌 책으로 선택하는 건 피하는 게 좋다.


나는 한국에서 책을 거의 가져오지 않았다. 주로 전자책을 활용할 계획이었다. 작은 태블릿피시를 하나 챙겨왔지만, 저렴한 아이패드를 마련할 생각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아이패드 새 제품을 지난해 연말에나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싸게 살 생각에 아마존과 이베이닷컴에서 제품을 구매했던 게 상당한 골칫거리를 만들었다. 아이패드 에어 2 신제품이 발표되기 직전 상당히 가격이 떨어진 아이패드 에어를 아마존에서 주문했었다. 주문하기론 64gb 상품이었는데 배송된 걸 보니 하드디스크 용량이 16gb였다. 사기였던 것. 무척 당황했지만 아마존은 정말 대단했다. 익히 들어왔던 아마존의 소비자 정책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마존 쪽에선 먼저 케이스를 오픈하고 판매자가 응대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요청했고 결국 2주 만에 전액 환불받을 수 있었다. 더 조심한다고 했지만 이베이에서 ‘Brand New’라고 명시된 제품을 구매한 것도 실패였다. 배달된 제품은 비닐 포장이 뜯겨 있었다. 이베이에선 환불을 보장해준다고 했지만 판매자는 비닐 포장을 뜯은 건 OS를 업그레이드했기 때문이라며 환불해줄 수 없다고 맞섰다.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이베이 또한 아마존에 버금가는 소비자 정책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결제수단인 페이팔이 이베이 소유여서 환불 정책이 비교적 강력했던 것 같다.


이베이 판매자와 옥신각신 하던 중에 아이패드 신제품이 발표돼 버렸다. 이전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던 계획을 접고 새로운 버전으로 할인 받아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곳에서 마련하기로 했다. 블랙프라이데이를 기다린 결과 믿을 만한 제품을 전자제품 양판점인 베스트바이에서 100달러나 할인 받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연수생활을 하는 동안 아이패드는 매우 중요한 도구로 쓰고 있다. 한국에서도 전자책을 즐겨 이용했지만 이곳은 전자책이 훨씬 더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무료 전자책이 무척 많다. 애플의 iBook은 물론, bookshout.com, goodreads.com 등 무료 전자책을 제공하고 알려주는 서비스가 매우 많다. 특히 고전 작품들 상당수가 무료 전자책으로 공개돼 있다.


무료가 아니어도 전자책이 폭넓게 구비돼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마흔살에 쓴 <남태평양 이야기>라는 첫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은 제임스 A. 미치너의 모든 작품이 전자책으로 만들어져 있다. 한국에서는 번역본 <소설>이라는 한 작품만 나와 있어 무척 아쉬웠던 터다.


헌 책도 몇 권 구입해 읽었다. 제임스 미치너의 을 비롯해 저널리스트들이 읽어야 할 책을 여럿 남긴 트루먼 카포티, 최근 피습당한 주한 미 대사 마크 리퍼트가 읽고 있다는 돈 오버도퍼 전 워싱턴 포스트 기자가 쓴 .


해외연수 기간 절반을 훌쩍 넘어 서너달이 남았을 뿐이다. 마음은 조급증과 여유로움 사이를 수시로 오간다. 그나마 다양한 읽을거리들이 마음의 한가로움을 좀 더 길게 맛볼 수 있도록 돕는다. 쓰기에 따라 달라지는 시간의 마법을 톡톡히 체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