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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학교엔 미국교과서가 없다.上 – 리딩(reading)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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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가 1년 동안 체험한 미국교육을 앞으로 5회에 걸쳐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자 합니다. 교육문제는 두말 할 필요도 없이 한국인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죠. 연수를 이미 마치신 분들은 물론 앞으로 연수를 떠나실 분들도 본인의 연수 계획 못지않게 자녀교육 문제에 큰 비중을 두고 계신 걸로 압니다. 제가 옆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경험이 자녀교육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이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1. 미국학교엔 미국교과서가 없다. 상-리딩(reading) 편
2. 미국학교엔 미국교과서가 없다. 하-라이팅(writing) 편
3. 모두를 만족시키는 수준별 수업
4. 앞서가는 온라인 수업
5. 교육의 질 높이는 카운슬러와 보조교사 제도

1. 미국학교엔 미국교과서가 없다. 상-리딩

홍콩 연수자가 왜 미국교육 타령이냐고 의아해 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 아들 지우가 중국말(만다린), 아니 정확히 말해 이곳 지역말인 광동말(캔토니즈)을 전혀 할 줄 몰라 홍콩 현지 공립학교에 보낼 수 없다보니 미국식 교육시스템으로 운영하는 홍콩인터내셔널스쿨(HKIS)에 아이를 보냈습니다. 살기는 홍콩에 살지만 미국 사립학교를 보낸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홍콩은 국제도시 답게 수많은 국제학교가 있습니다. HKIS같은 미국식 학교는 물론 영국식, 캐나다식, 호주식, 프랑스식, 일본식 등 그 나라 교육 시스템으로 가르치는 수많은 국제학교들이 있습니다. 영국식 시스템을 채택하면서도 중국어(만다린)를 좀 더 강조하는 중국국제학교(China International School)같은 학교나 한국어와 영어 두 가지 과정을 갖춘 한국국제학교(KIS)도 있습니다. 국제학교 수는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수요 또한 서울보다 훨씬 많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아이들을 원하는 학교에 보내기는 만만치 않습니다. ‘홍콩에서 학교 보내기’라는 주제도 제가 경험해보니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홍콩으로 연수 오는 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 부분은 생략하겠습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HKIS에 아이를 보내면서 제가 연일 놀라고 감탄했던 미국교육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이곳 홍콩에 머무는 동안에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잊을 만하면 한번씩 한국교육의 우수성을 언급하면서 한국을 배우자는 주장을 계속 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양반 참 한국 물정도 모르네’라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미국교육이 얼마나 형편 없길래 저러나’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전 반대로 읽고 쓰고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미국식 교육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영어 교과서가 없다는 겁니다. 교육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국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미국교과서로 영어배우기가 대세가 된 지 오래라는 것 정도는 아실 겁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미국교과서들을 종합해서 만들었다면서 아예 제목을 ‘미국교과서 읽는 영단어’‘미국교과서 읽는 리딩’이라고 붙인 시리즈 교재는 수십만 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라지요. 아마 신문에서 광고를 본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한국에서 영어유치원(공식용어는 영어학원인가요)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3학년 1학기까지 계속 같은 영어유치원의 방과 후 과정을 통해 영어를 배운 우리 아들도 한국에서는 ‘Literacy Place’라는 미국 영어 교과서로 계속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미국식 학교인 HKIS에 와보니 영어 과목은 아예 교과서가 없더군요. 그리고 1년을 지내보니 이 점이 미국교육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배울 만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여기서 잠깐. 텍사스와 미네소타, 뉴저지에 이르기까지 미국 3개 주에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본 저희 오빠 말로는 미국은 주마다, 아니 도시마다 학교 시스템이 많이 달라서 어느 특정 지역의 학교 한곳을 다녀보고 미국 학교에 대해 일반화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HKIS는 미국 밖에 있는 국제학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아마 다른 많은 미국학교와는 다르겠지요. 하지만 읽고 쓰기를 강조하는 미국식 교육방식은 어떤 방법을 통해 얼마나 효과를 거두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미국 어느 지역에서나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수업 첫날에 아들이 받아온 시간표입니다. 처음 시간표를 봤을 때 너무 단순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은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도덕 음악 미술 체육 영어 등등 저학년들도 과목이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요 과목이라도 한 주에 고작 3시간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곳은 단순합니다. 매일 영어를 읽고 쓰고, 수학을 하고, 중국어를 가르칩니다. 하루 걸러 체육수업을 하고 나머지 과목들은 그 나머지 시간에 번갈아가면서 합니다. 한마디로 어릴 때는 읽고 쓰고 수학적인 사고력을 키우는 걸 학습 부분에서는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는 거죠.

리딩 시간은 말 그대로 책 읽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리딩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아이들보고 그냥 무작정 읽으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읽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 학교는 독서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작 독서하는 방법을 가르치거나 독서의 즐거움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 아이가 1년 동안 리딩을 배우는 과정을 보니 독서야말로 정말 제대로 배워야하는 과목이구나, 그래야 누구라도 책을 좋아하고 가까이 하게 되는구나, 라고 느끼게 됐습니다.

우선 여기 아이들은 한국에서처럼 국어 교과서에 나온 발췌된 지문 일부만 읽는 게 아니라 무슨 책이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걸 골라서 읽습니다. 미국에서 그처럼 다양한 어린이 청소년 책들이 끊이지 않고 쏟아지는 데다 숱하게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건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골라있는 토양이 단단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의 관심사가 컴퓨터 게임이나 연예인 등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서로 무슨 책을 읽는 지는 전혀 화제에 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아예 학교 수업 시간에 매일 읽기가 있고 반 친구들이 서로 무슨 책을 읽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책에 대해 아이들의 관심이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아이가 여기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는 애들이 책을 읽어도 주로 만화책을 읽는데 여기는 좀 달라” 그러더군요. 한국 초등학생들은 책을 읽더라도 대개 논술 과외 교재로 읽을 뿐 정말 좋아해서 재미로 읽는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가령 인기있는 시리즈 책이 출간되자마자 누군가 제일 먼저 손에 넣으면 반 아이들은 그 책을 빌려달라고 줄을 섭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들이 책을 고르는 제일 첫 번째 기준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입니다. 물론 학기 초반에 담임 선생님이 아이의 읽기 수준을 고려해서 수준에 맞는 책을 읽을 것을 권합니다. 같은 반 학생이라도 읽기 수준에 따라 누구는 오렌지색 스티커가 붙은 ‘매직 트리 하우스’같은 챕터북 수준의 책을 읽고, 또 다른 누구는 ‘해리 포터’ 시리즈 정도의 수준인 라이트 블루 스티커가 붙은 책을 읽습니다. 이처럼 학교 도서관 외에도 각 교실 안에도 오렌지, 블루, 라이트블루 등 수준별로 구분된 학급 도서관이 있어 아이들은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서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국 엄마들이라면 자연스레 드는 궁금증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성적을 매길까하는 겁니다. 한국이라면 당연히 수준별로 성적이 달라지겠죠. 그러나 여기서는 어떤 수준의 책을 읽느냐, 다시 말해 읽기 수준이 더 높다고 리딩 성적을 잘 받는 게 아닙니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한 학기 동안의 발전 정도입니다. 그렇다보니 무리해서 어려운 책을 읽기보다는 그저 자기 수준에 맞는 좋아하는 책을 계속 읽습니다. 계속 읽다보면 자연스레 읽기 수준도 높아집니다. HKIS는 숙제 없기로 유명한 학교지만 매일 알림장에 빠지지 않는 숙제가 리딩 20분입니다. 그리고 꼼꼼하게 독서록(reading log)을 적게 합니다. 이렇게 독서를 몸에 배게 만드는 거지요.

아이 생일이 9월이라 학기초에 반 아이들 수 만큼 컵케익을 구워서 학교에 가져갔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리딩 시간이 끝날 즈음 와달라고 했는데 마침 좀 일찍 도착해 리딩 수업이 진행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정말 조용하게 책을 보더군요. 한국에서 수업 시간에 책을 읽으라고 하면 아마 서로 떠드느라 교실이 아주 산만했을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말 아무도 떠들지 않고 조용히 자기 책만 열심히 보더군요. 선생님은 아이들 사이를 옮겨다니며 읽는 책에 대해 아주 조용히 대화를 나누구요. 나중에 보니 리딩 시간에는 그냥 읽기만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독서 연계 활동도 합니다. 선생님은 예를 들어 E B 화이트의 ‘샬롯의 거미줄’같은 책 전체를 몇 시간에 걸쳐 직접 소리 내어 읽어줍니다. 그 다음엔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여주기도 하구요. 또 아이들끼리 그룹을 지어 북클럽을 하기도 합니다. 학교 전체 차원에서 책 관련 행사도 정말 다양하게 합니다. 모두 아이들이 책과 가까워지게 해주려는 배려죠. 이렇게 한두 달이 지나니 아이는 서점에 가서 책 읽는 걸 큰 엔터테인먼트의 하나로 여기더군요. 책 사달라는 말도 많이 하구요. 학교 도서관이 너무 잘 돼있어서 “학교서 빌려 읽어라”하면 “무슨 엄마가 책도 안사주냐”는 불평을 하기도 하구요. 서울에서는 그렇게 읽어라 읽어라 해도 “난 책이 싫어”했던 아이가 말입니다. 정말 미국 교육의 힘 아닙니까.

다음엔 작문 수업에 대해 얘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