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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트럼프 행정부와 미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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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미국 주류 언론들은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고 있다. 세계적 통신사인 AP는 백악관과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출입 금지 조치를 당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이름을 ‘아메리카만(Gulf of America)’로 바꾸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지만, 이를 따라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AP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백악관 출입 기자협회는 출입금지 조치가 부당하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이제 대통령을 근접 취재하는 ‘풀(Pool) 기자’를 백악관이 직접 선정하겠다고 했다. 풀 기자는 기자들이 만든 원칙에 따라 순번제로 정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상식이다. 취재원이 입맛에 맞는 기사를 위해 우호적인 매체를 고르려 한다면 사실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언론 자유의 대원칙을 뒤집으려고 하고 있다.

백악관의 취재 풀 직접 선정 방침에 대한 백악관 출입 기자협회의 성명.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하는 조치지만, 언론사의 반발이 미국 내에서 여론의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분위기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언론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지금까지는 상상할 수 없는 조치들을 연달아 밀어붙이고 있고,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40%대 중후반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1기 트럼프 행정부 때는 백악관과 싸우는 언론사에 후원금이 급증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반(反)트럼프 진영은 결집하지 못하고 있고, 야당인 민주당도 대응 방침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언론은 1기 때와 다른 방식으로 위기를 맞고 있고, 도전을 받고 있다. 아마존 창립자인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하고 있는 워싱턴포스트에서는 2024년 11월 대선 전 사주의 반대 때문에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지 사설을 내지 못했고, 최근에는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 원칙에 반대되는 의견을 게재하지 않겠다는 지침을 베이조스가 워싱턴포스트 구성원들에게 통보하기도 했다. 이는 오피니언 편집장의 사퇴 등 내부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부효율부를 이끌고 있는 일론 머스크를 해고하라는 의견 광고 게재를 철회하기도 했다. 베이조스는 여자친구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메인 좌석에 앉았고, 이후 워싱턴포스트에서는 논란이 되는 일들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워싱턴포스트보다 아마존의 사업 확장을 베이조스가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거슬리는 행동을 피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SNS에 올린 워싱턴포스트 오피니언면 편집 방향. 개인의 자유와 자유 시장을 두 개의 축으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방송사 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거액을 지불하고 합의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ABC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을 1600만 달러 배상으로 마무리하기로 지난해 12월 결정했다. CBS도 역시 트럼프 대통령 측이 소송에서 합의금을 내고 소송을 끝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ABC를 소유한 월트디즈니, CBS의 모기업인 파라마운트 모두 대통령과 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해석했다. 방송사들이 거대 미디업 기업의 ‘N분의 1’이 되면서 언론 자유보다는 사업 방해 리스크 제거가 더 중요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다양화한 전략으로 언론과의 싸움을 이끌어 가고 있다. 사주들을 움직이고 있고, 기사에 대한 소송도 다양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CBS에 건 소송은 명예훼손이 아닌 소비자 권익 침해 소송이다. 기사가 명예훼손을 했다고 주장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1조 관련 판례에 따라 언론사가 이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사기성 기사로 인한 소비자 권익 침해를 주장하는 소송을 거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측의 고도화된 전략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현란한 전략에 미국 언론들은 아직 제대로 된 반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다. 대응은 성명 발표가 거의 전부고 현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에 직접적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지식인들 사이의 언론으로만 남고 대중에게 외면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평가는 다양할 수 있겠지만, 언론인으로서 미국 언론에 감정이입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혼란의 시대, 미국 언론의 분투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