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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연금술 – 하늘공원, 발전소 서점, 노래하는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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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재활용? 리모델링?


그것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뉴욕의 명물이 된 ‘하이 라인’(High Line) 파크.
수변도시 볼티모어의 ‘이너 하버’(Inner Harbor)에 위치한 발전소가 탈바꿈한 반스앤노블 서점.
박물관과 공연장 등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가득한 보스턴과 뉴욕의 항구 및 그 부속 건물들을.
이게 재활용인지, 재건축인지 아니면 용도 변경인지, 리모델링인지…


우리말로 ‘딱 들어맞는’ 표현을 찾기가 쉽지는 않은 이 개념을 ‘Adaptable Reuse’(어댑터블 리유즈)
로 부른다고 합니다. 학문적으로 정립된 번역어가 아직 없다는 것 같습니다. 굳이 풀어쓰자면 ‘적응할
수 있는/적응력 있는/적응 가능한 재사용(재활용)’ 정도로 말할까요. ‘하나의 사물이나 상황에 맞는
단어는 하나 뿐’이라는 플로베르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 1개의 물건에는 그에 대한 권리인‘물
권’이 하나만 성립한다는 민법의 ‘일물일권주의’(一物一權主義) 등의 개념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잘 알려진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는 도심에 흉물처럼 남은 고가 철도를 ‘하늘공원’으로 변모시킨 것입
니다. 예전의 고가 화물 노선에 꽃과 나무를 심고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곳곳에 의자를 설치했지요. 대
표적인 친환경 도시 재생사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뉴욕시는 하이라인 파크 홈페이지에서 이 ‘아름다운
변신’의 특징을 보존(Preservation)과 재활용(Reuse)이라고 설명합니다.


볼티모어의 ‘이너 하버’에서는 반스앤노블 서점이 예전 화력 발전소의 1,2층 공간을 사용하고 있습니
다. 내부에는 발전소의 굵직한 철근과 기둥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이색적인 느낌을
줍니다. 미국 해군사관학교가 위치한 항만도시 아나폴리스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전통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옛 감리교회 건물이 있습니다. 버지니아 주의 주도인 리치먼드에 있는 버지니아 과학박물관은
이전에 철도 역사로 쓰인 건축물입니다.


또 뉴욕 맨해튼의 ‘사우스 스트리트 시포트(Seaport)’에 가면 항구 부두의 창고 건물들을 상업 쇼핑
시설, 박물관, 공연장, 시민의 휴게 및 야외활동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도 유
명한 랜드마크가 됐습니다. 보스턴의 퀸시 마켓과 North/South 마켓은 예전의 항구 상업용 시설이었거
나 창고 건물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장, 각종 식음 시설이 자리 잡았고 외부 공간은 휴식을 위한 공
공 공간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주’로 불리는 필라델피아의 ‘스프루스 하버 파크’는 수
변 공간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곳에 식음료 판매 시설이 있습니다. 강 수면 위에는
인공 구조물을 이용해 녹지 공간과 휴게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서울 청계천이 본뜬 모델로 불리는 텍사스 주 샌 안토니오의 ‘리버 워크’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작은도시의 한가운데를 샌 안토니오강이 굽이굽이 휘돌며 관통합니다. 이 도시는 오래 전부터 수해로
골머리를 앓았습니다. 급기야 1920년대 초에는 폭우로 강이 범람해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시에서는 치수 사업에 나섰습니다. 상류에는 댐을 만들고 우회 물줄기를 만들었습니다. 도심의
강은 운하로 탈바꿈했지요. 이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건 강의 본래 모습을 거의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인공 수로가 아닌 자연 수로이지요. 시민들은 강 주변을 자연스레 걷습니다. 저도 청둥오리가
헤엄치고 새들이 모여드는 이 운하의 흙길을 걸을 때 어느 멋진 곳의 강변을 걷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밖에 유사한 개념으로 도시(도심) 재활성화를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도 있겠네
요. 도심 가까이에 위치한 황폐한 공간을 재개발하는 사업입니다. 도심 부근의 낙후 지역을 개발해 상업
지구와 주거 지역이 새로 형성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하이라인 파크의 경우 연간 방문객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직간접적인 주변 상권의 수입도 엄
청날 테지요. 다른 지역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개조와 개발에 든 비용에 비해 얻게 되는 수익과 효용가
치가 훨씬 더 높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정도라면 새로운 시대에 떠오른 새로운 형태의 ‘연금술’이
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요.


이와 같은 어댑터블 리유즈 사례를 볼 때에는 이른바 ‘지속 가능성’을 같이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
다.‘지속 가능’하다는 의미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 ‘저 영향'(low impact), ‘고 접촉'(high contact).
즉 자연 등 주변 환경에 대한 영향은 최소화하는 반면 지역 주민 등에 대한 접촉은 최대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장을 작성할 때 정동섭 호서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정 교수님도 제가
속한 델라웨어대에서 Visiting Scholar로서 연구 중입니다.)



Chapter 2 환경 보호론 vs ‘불안 마케팅’


‘Adaptable reuse’(어댑터블 리유즈)는 친환경적으로 자연의 가치를 높이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
다. 여기에 조금 다른 얘기가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대표되는 기후 변화. 그리고 환경 보호. 조화로
운 양립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두 문제는 21세기의 ‘격한’ 화두입니다. 미국에서는 환경 보호론자와
반대파 사이에 논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 논쟁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 ‘환경운동가’ 앨
고어입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미국의 부통령을 역임했고 한 때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그러나 낙선 이후
그는 변신했습니다. 지난 2006년에는 기후 변화에 따른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을 내놓았습니다. 덕분에 2007년 유엔 정부간기후변화위원회(IPCC)와 함께 노벨평화상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엔을 중심으로 환경오염을 줄이고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는 움직임이 전 지구
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 보호 움직임에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불신하고 ‘경고음’이 과장됐다고 주장합니다. 상징적인 인물 중 하나가 공화당
의 제임스 M. 인호페 상원의원(오클라호마 주)입니다. 그는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 위기가 과장됐다
고 주장합니다. ‘거대한 속임수’(The Greatest Hoax)라는 책도 펴냈습니다. 그는 앨 고어에 대해서도
“‘기우(杞憂) 캠페인(alarmism campaign)’을 벌이고 있다”고 맹공을 퍼붓습니다. 앨 고어가 미국
최초의 ‘기후 억만장자(climate billionaire)’가 될 것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잊지 않습니다. 최근 뉴
욕타임스는 과학 섹션에서 앨 고어와 인호페의 논쟁에 관해 새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지나쳐 이른바 ‘불안 마케
팅’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기후 변화는 현재진행형인 동시에 미래의 일에 관한 것입니
다.(그리 멀지않아 보이는 미래이기는 합니다만.) 그 ‘정도’가 적정한 지는 현재로선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환경오염, 기후 변화에 작용하는 요인은 무수히 많습니다. ‘어댑터블 리유즈’가 모든 측면
을 충족하는 대안은 아닙니다. 다만 ‘친환경적’이면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충족하는 하나의 부분
적 대안이 될 수 있지는 않을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