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으로 연수 국가를 정한 이유는 자녀 교육 문제도 한 몫 했다. 교육시스템이 발달한 나라인
영국에서 – 그것도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 단기간이나마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다는 점은 굉장한
장점이었다. 영국에서는 만 4세부터 초등학교 정규과정에 입학할 수 있고, 물론 교육비는 무료다.
이전에는 우리나라 어린이집 개념인 nursery에 보낸다. 하지만 nursery는 오전 3~4시간 동안 봐주고
일정 금액의 비용도 내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었다.
다행히 2012년 1월생인 우리 딸 아이는 만 4세 이후였으므로 초등학교 정규과정인 Reception에 입학
할 수 있었다. 영국 초등학교 시스템은 예비과정인 Reception부터 Year1, Year2, Year3… 순으로 돼
있다. Reception과정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15분까지 수업이 풀타임으로 진행된다. 중간에 lunch
time이 있고 물론 무상급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아이들 급식을 놓고 무상이니 유상이니 하며
정치권 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갈등이 있는 것을 생각하니 씁쓸했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의무교육으로 모든 것이 무상으로 진행된다. 아이들의 등하굣길에는 반드시 부모
가 직접 등교시키고, 학교로 찾아와서 아이를 하교시켜야 한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부모가 3시 15분
이면 초등학교 교실 앞에서 아이가 끝나기를 줄서서 기다린다. 엄마 뿐 아니라 아빠가 매일 오는 경우
도 있었고, 특히 금요일에는 아이를 하교시키기 위해 학교로 찾아온 아빠들이 굉장히 많았다. 등하굣
길에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은 부모의 자녀 등하교 참가로 인해 거의 원천봉쇄된다고 보면 된다. 우리
나라에서 맞벌이 부부들이 한참 일할 시간인 오후 3시 15분까지 아이들 하교를 위해 초등학교에 찾아
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아이들 등하교에 부모가 참가하는 것이
일터에서 대부분 허용된다고 하니, 정말 부러운 교육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수업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Reception의 경우에는 수업을 실제로 진행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Phonics라고 해서 영어 발음이 어떻게 소리가 나는지 배우는 시간이 있고, 숫자 세기, 날짜 계산
또는 더하기, 빼기 등 기본적인 산수 등을 배운다. 나머지는 playground에서 급우들과 뛰어놀거나 교실
에서 각자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하는 등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한다. 학기초에는 부모들을 초청
해서 앞으로의 수업을 실제로 어떻게 진행하는지 교사들이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한다. 또한 정기적으로
학부모도 참여 가능한 수업 공개도 있어서 실제로 우리 아이의 학교 수업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
지켜 볼 수 있었다. 숫자 세기 등을 놀이를 통해 익히는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바로 학교 평가시스템이었다. 영국의 모든 교육기관은 Ofsted(교육기준청)
에서 inspection을 통해 등급을 매긴 뒤 매년 보고서를 작성한다. 보고서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며
누구나 다운로드해 살펴볼 수 있다. Outstanding, good이면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뜻이다. 평가 방식이
그저 수치 나열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꼼꼼히 살펴보니 아이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고
말했는지, 친구들 또는 선생님과 교류는 어떻게 했는지 등이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저
형식적인 보고서가 아니라 학교 생활 전반에 대한 세밀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정성적인 평가가 이뤄지
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적 장학사가 한번 온다고 하면 그 때에만 반짝 쓸고
닦고 하며 영접 준비를 하던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영국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싶은 이들을 위해 입학과정을 소개해보겠다. 영국 오기 한달
전에 부랴부랴 아이가 다닐 학교를 알아봤었다. 앞서 말했듯이 영국은 만 4세부터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데 우리 아이가 딱 만 4세였다. 영국 초등학교는 각 지역의 council에서 학교 배정 등을 일괄적으
로 관리하고 있다. Canada water가 속한 Southwark Council에 문의를 하니 “자리가 없다”는 답장이
왔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출국이 얼마 남지 않은 다급한 상황이라 인근 학교
리스트를 뽑아서 60개 정도의 학교에 직접 메일을 보냈다. 대부분의 학교가 Council을 통해 신청하라는
답장을 주었지만, 몇몇 학교는 “자리가 없지만 대기 리스트에 올려주겠다”는 답을 주었다.
영국의 초등학교에 입학하려면 본인 집주소가 필수였다. 우리는 임시로 거주할 집주소를 통해 원하는
학교 5개를 골라 Council에 신청서를 내고 기다렸다. Ofsted report를 꼼꼼히 확인하고 우수한 학교를
골라내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운이 좋았다. 보통 2개월에서 6개월까지 대기를 한다는 얘기
를 들었는데 우리는 한달 만에 원하는 학교 중 2순위 학교를 배정받았다. 그리고 입학 일주일 전에 또
다시 1순위로 적어냈던 학교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운이 좋았고 매일같이 독촉(?) 메일
을 보낸 보람이 있었다. 영국 와서 6개월 동안 대기하다 들어간 경우, 그리고 아이 학교가 버스로 20분
통학거리인 경우가 허다한데 우리 아이 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딸 아이는 처음 초등학교에 간다며 미리 준비한 교복을 입어보고, 가방도 메보고 신이 났다. 하지만
처음 1~2달 동안 영어가 안 들려 혼자 그림만 그린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괜히
욕심을 부려 아이를 영국에 데려 왔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적응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다. 몇 달 새 영어가 부쩍 늘어 “영어로 말하는게 더 편해.”라고 할 정도로 눈에 띄게 변화가 생겼
다. 얼마전 학부모 상담을 했는데 담임이 노트를 보여주면서 이게 딸 아이가 “책 읽고 소감을 쓴 것”이
라고 했다. 단어 철자가 많이 틀리지만 무슨 말을 쓰려고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문장이었다. 딸아이
가 영어로 말하기가 많이 늘었다는 건 알았지만 문장을 쓸 수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딸
아이의 반엔 아직 자기 이름 정도만 쓸 수 있는 아이도 있다. 급우들 30명 중에서도 눈에 띄게 똑똑하고
하이레벨이라고 하는 얘기를 듣고 나름 안심이 됐다. 딸 아이에게 단짝 친구가 생긴 것이 영어 실력이
늘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영어 실력이 녹슬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가장
어려운 숙제가 남았다. 하지만 이 정도 경험 만으로도 딸 아이에게는 대단한 경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