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여가시간 활용하기
미국생활에서 여가시간을 활용하는데 으뜸은 골프이다. 한국에서 골프를 즐기던 경우나, 골프채를 잡지 않았던 경우나 가릴 것 없이 일단 미국생활을 시작하면 십중팔구는 골프에 매달린다. 물론 한국에서 골프를 즐겨치던 내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학교수업이나 영어공부를 하고 남는 여가시간을 활용하는데 골프 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며, 두 번째 이유는 미국에서는 골프의 접근성과 가격이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다는 것이다.
내가 연수를 받는 콜롬비아시에는 2개의 시립골프장, 대학 직영 골프장, 3개의 프라이비트 골프장이 있다.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곳은 시립골프장과 대학골프장이다. 2곳의 시립골프장은 710달러만 내면 부부가 가입하는 순간부터 1년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매번 갈 때마다 내는 그린피나 캐디피 등이 없어서 한번 회원권을 끊으면 추가 비용이 없다. 골프장까지 가는데도 차로 각각 5분, 10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주말에 골프장에 갔다오는데 몇시간을 길에서 허비하고 또 회원권이 없어 한번에 30만원 가까이를 지출했던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상황이 달라진 셈이다. 대학골프장도 한번 갈 때 20달러만 지불하면 된다. 다만 시내의 프라이빗 골프장은 회원이 반드시 동반해야 된다. 굳이 프라이빗을 이용하고 싶으면 1시간 거리 이내에 30달러~40달러를 지불하면 언제든지 가능한 곳들이 많이 산재해 있다.
골프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는 이유로 이를 좋지않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오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고 불필요한 대기시간 등이 없기 때문에 한국보다 절반 이하에 마칠 수 있고 심지어는 시간이 부족하면 운동 삼아 9홀만 도는 경우도 흔하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어떤 사람이 1년간의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면서 그동안의 골프 라운딩 회수를 체크했더니 365번을 3번 넘겼더라는 전설적인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기후 때문에 골프장이 개장 안한 날을 감안하면 하루에 오전, 오후 2번씩 라운딩한 회수도 적지않다는 말인데 믿어야할 지, 말아야할지…
미국 기준으로 골프장은 체육시설이다. 주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체육시설을 이용해야 한다는 가치기준으로 골프장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의 골프장 경우처럼 수익을 남겨야한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다. 클럽하우스에 고급 식당과 호화 사우나를 갖춰놓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다. 물론 그런 시설들을 갖춰놓으면 수익이 올라갈 것은 당연히 알지만 체육시설을 이용해 돈벌이에 몰두할 수는 없다는 논리다.
이곳 시 당국이 골프장과 함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곳이 체육센타와 공공도서관이다. 체육센타는 교통이 편리한 중심지에 2층 건물로 지어져있는데 쾌적함과 시설이 한국의 체육시설과는 비교할 수 없다. 1층에는 수영장, 정규 규격의 농구코트 2면, 탁구장, 여러 개의 강의실 등이 갖춰져 있고 2층은 각종 헬스기구로 가득찬 짐(zym)과 조깅을 할 수 있는 타탄트랙이 구비되어 있다.
우리 가족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등록한 곳이 체육센타이고 지금도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이다. 비용은 한달에 45달러만 내면 온 가족이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와이프는 일주일에 7번을 반드시 체육센타를 가는 개근족이다. 서울에서 사설 헬스센타를 몇차례 다닌 경험이 있는 집사람은 이곳 체육시설이 훨씬 쾌적하고 비용도 싸고 헬스기구도 다양하다며 100% 만족감을 표시한다. 딸들은 처음에 수영장을 자주 이용했는데 얼마후 시큰둥해져서 지금은 수영장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다만 작은 딸아이는 미국에서 식사량이 늘어나 뱃살이 부는 것 같다며 엄마를 따라 자주 체육센타를 이용한다. 인구 10만명의 도시에 이렇게 훌륭한 체육센타가 구비되어 있는 것을 보고 인구 1000만명의 서울에 어떤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는지 마냥 비교가 된다. 서울에서는 땅값 때문에 이런 정도의 체육시설을 갖추기도 어렵지만, 만약 이런 시설을 갖춘 곳이 있다면 수천만원짜리 회원권을 먼저 구입하고 또 별도로 년간 수백만원의 이용료를 지불해야만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공도서관 자랑을 또 한번 해야겠다. 공공도서관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 시의 가장 중심부다. 그래서 그 맞은 편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공동묘지라니까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미국 대다수 도시 중심부에는 공동묘지가 자리잡고 있다. 미국 도시의 형성과정을 보면 중심부에 교회가 먼저 자리잡고 그 주변에 집들이 하나둘씩 생겨난다. 그러다 한둘씩 사망자가 생기다보면 교회 주변에 묘지를 잡고 십자가를 늘려간다. 그리고 주택은 주변으로 계속 확산된다. 이렇게 도시가 형성되다보니 중심부에는 항상 공동묘지가 있게 된다. 미국인에게 묘지는 생활의 일부일뿐이며 음산하고 불길한 장소가 아니다. 그 공동묘지 옆에는 이곳 도시에서 가장 유서깊은 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만약 한국의 경우라면 그런 학교에 자녀를 다니게 할 학부모가 있을까?
이야기를 다시 공공도서관으로 돌려보자. 이 도서관은 외관부터 도서관이라는 분위기를 주지 않을 정도로 예술적인 외관을 자랑한다. 노랑과 빨강의 원색으로 치장된 외관은 마치 디자인센터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1,2층의 널찍한 도서관은 모두 개방식 서가로 되어있다. 죽 늘어선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뽑아다가 바로 옆의 테이블에서 읽을 수 있다. 읽은 책은 옆의 이동식 카트에 놓아두면 사서가 분류 목록표에 따라 바로바로 제자리에 꽂아둔다. 음향도서관, 비디오도서관도 같은 식으로 운영된다. 도서관 한켠에는 스터디룸이라고 하여 작은 방들이 많이 구비되어있다. 그곳에서는 스터디그룹도 할 수 있고, 토론식 학습도 할 수 있다.
연수생들은 제한된 시간에 빡빡한 학습을 마쳐야하는 학위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도착한 지 한달쯤 지난 9월에는 시에서 주최하는 가을축제가 많이 열렸다. 규모가 크고 거창한 축제가 아니라 테마를 정해 하루는 미술전시회, 하루는 음악축제, 또 하루는 거리축제 등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 내가 거주하는 콜롬비아시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도시가 축제를 개최한다. 그 지역의 특성과 역사에 맞게…이를테면 와인용 포도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에서는 와인축제, 독일계 이주민이 많은 지역에서는 맥주축제, 또 소시지 생산공장이 있는 곳에서는 소시지축제를 개최하는 것이다. 물론 화려한 퍼레이드와 불꽃놀이, 발디딜틈 없는 인파 등이 있어야만 축제라고 생각하는 경우에는 그런 것들이 시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소지역 축제에는 그만의 매력이 있다. 특히 지역축제에는 오래전부터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깔려있다. 그런 내용들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면 잔잔한 재미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대학을 적극 활용하면 가벼운 주머니로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만끽할 수 있다. 이곳 콜롬비아는 기본적으로 미주리주립대학 때문에 형성된 도시이고 대학과 직간접으로 연관을 맺고있는 주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상당히 큰 편이다. 대학은 주민들에게 첫 번째 문화적 공급자 역할을 한다. 스포츠, 연주회, 오페라, 연극, 미술전 등 각종 문화, 체육 행사들이 연중 대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필하모니 같은 유명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맛볼 수는 없지만 저렴한 비용으로 가족들과 함께 손쉽게 연주를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권장할만하다. 내 경우는 서울에서 문화행사에 갈 때보다 돈이 적게 들어서 좋았고 또 복장도 그냥 청바지 차림으로 가도 아무 눈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모든 관중들이 간편하게 와서 편안히 즐기고 돌아가는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미국에서 1년간 연수를 받으면서 한 가족이 생활하는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보면 수만 달러는 족히 된다. 직접세는 자동차세 외에는 별로 내지 않지만 각종 물품을 사면서 내는 간접세를 따지면 적지 않은 세금을 미국사회에 지불하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도 미국사회가 주는 혜택을 최대한 활용할 권리는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