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영어 배우기
미국에 오는 연수생들의 최대 소망은 단기간에 빨리 영어실력을 향상하고픈 것이리라.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의 영어실력도 물론 그 희망사항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6개월의 미국생활을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영어실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미국에서의 생활이 한국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한 영어공부보다 훨씬 유리하고 용이하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주변의 모든 것이 영어 학습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TV를 틀어도 온통 영어이며, 자동차에서 라디오를 틀어도, 심지어 상점에 물건을 사러가도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영어학원에 다니거나, 영어 CD로 공부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해도 미국에서처럼 영어의 바다에 흠뻑 빠질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영어의 바다에 빠질 수 있는 이번 기회에 헤엄쳐서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을 익히고 돌아가야지 하는 조바심이 생겼다.
주변의 연수생들을 보면 자신들보다 자녀들의 영어학습에 더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연수가 끝난 시점에서 결과를 보면 자녀들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빠르게 영어를 습득해가는 반면 정작 본인은 그들의 자녀들만큼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 같다.
우리 가족은 2002년 여름휴가 때 태국의 유명 휴양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큰 딸이 초등학교 6학년, 작은 딸은 5학년이었다. 호텔에서나, 쇼핑할 때나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는데 두 딸아이가 도통 영어 말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두 딸들에게 부모 같은 영어벙어리를 만들지 않겠다며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줄곧 영어투자를 해온 뒤여서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때는 영어를 쓴 가족 구성원이 나 혼자였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있어 딸들의 영어에 큰 기대를 갖지 않고 미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크게 달라졌다. 중학교 시절의 영어공부가 효과가 있었던지, 아니면 어린시절에 받은 조기교육의 효과가 뒤늦게 나타난 것인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딸들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미국인과의 일상대화에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발음도 원어민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줬다. 이제는 내가 딸들에게 완전히 뒤쳐져 있구나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아마 한국에 돌아갈 즈음에는 딸아이들의 영어는 날고, 내 영어는 기어가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우리 세대가 학창시절 때는 문장구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영어 공부를 했다. 리스닝과 스피킹은 안중에도 없었고… 그러다보니 외국인과의 직접 대화가 점점 어렵게 느껴져서 기피하는 현상이 생긴 것 같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의 영어교육도 대화위주로 바뀌어서 학생들이 대화를 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해소된 것 같다.
미국에 도착한 직후에는 TV를 많이 봤다. 귀를 쫑긋 세우고 한마디라도 더 듣겠다고 온 종일 TV를 시청한 적도 있었다. 나중에는 너무 TV를 오래 시청해서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미국의 TV 채널들은 청각 장애인과 영어에 익숙지 않은 이주민들을 위해 대부분 영어자막을 동시에 내보낸다. 또한 캡션기능을 가진 TV를 판매하기 때문에 리스닝이 짧은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좋고 편리한 기능이다. 그런데 프로그램 중에서도 뉴스는 속도가 빨라 자막표시가 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드라마는 속어나 은어사용이 많아 영어를 배우기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표준영어를 익히기에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한번은 영어교사에게 TV를 보면서 영어에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어떤 프로그램이 좋겠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답변은 어린이용 만화영화(카툰, 애니메이션)를 보는 게 가장 좋다는 것이었다. 이유인즉 어린이 만화는 수준이 어린이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발음이 비교적 정확하고 문장도 표준영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영어실력이 일정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만화를 통해 영어와 친숙해지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학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영어실력을 늘리기에 노력했다. 주중 월~금요일까지는 매일 오전 학교에서 영어강의를 들었고 또 오후에는 외국인과의 회화프로그램, 개인 튜터 등을 들었다.
외국인과의 회화프로그램은 대학 내 교회에서 영어에 서툰 외국인들을 위해 무료로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매우 좋은 프로그램이다.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은 비단 대학뿐 아니라 지역사회 내의 각종 단체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각자 성의와 시간만 투자할 자신이 있다면 미국에 있는 동안 영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는 무한정 많다. 다만 우리가 시간을 낼 수 없을 뿐이지…. 또 우리 가족의 경우는 미주리 주립대에서 언어학을 전공하는 4학년생을 가족 튜터로 활용했다. 온 가족 4명이 일주일에 각각 2시간씩 시간을 정해 개인교습을 받았다. 나는 뉴스 읽기, 집사람은 실용 영어회화, 큰 딸은 영어작문, 작은 딸은 소설책 읽기 식으로 모두 각자의 프로그램을 진행시켰다. 한국에서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이야기지만 미국에서는 비용이 적게 들어 가능했다. 1시간 비용이 10달러이므로 온 가족 일주일 교습비가 80달러밖에 들지 않았다. 이 친구는 우리 가족과 친해져서 아무 스스럼없이 지냈고 한국식 식단도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별도의 특식을 준비하지 않더라도 저녁식사 할 때 함께 식탁에 앉는 경우도 많았다.
내가 영어를 하면서 가장 큰 애로를 느낀 것은 발음이다. 한국인들은 [P]와 [F] 그리고 [L]과 [R] 발음을 구분하지 않고 혼동해서 쓴다. 한국어로는 동일한 자음으로 기록되기 때문이다. [ɵ]와 [S] 발음차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사용 시엔 혼재해서 쓰는 사례가 많았다. 내 경우는 특히 [P]와 [F] 발음을 구분하는데 무척 애를 먹었고 튜터에게 늘상 지적을 받았다. 미국인과 대화할 때 [F]로 발음해야 하는 단어를 [P]로 발음하는 바람에 상대방이 못 알아듣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하나 우리가 애를 먹는 것 중의 하나가 영어단어의 음절(syllable)이다. milk를 밀크라고 발음하면 미국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되묻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유는 우리가 한글로 [밀크]라고 2 음절로 표기하고 실제로 2 음절로 발음을 하지만 미국인에게 실제 1 음절의 단어이다. strike라는 1 음절 단어를 스트라이크라고 5 음절로 발음하면 미국인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맥도날드, 록펠러라고 발음하면 미국인이 못 알아 듣는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이유가 음절 사용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
영어와 관련하여 한가지 덧붙인다면 우리가 일상회화에서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학창시절부터 단어 익히기를 많이 하고 문장읽기에 비중을 많이 두고 공부한 덕분에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대화할 때 동원하는 동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렇게 어려운 동사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숙어를 많이 쓴다. 나도 처음에는 숙어에 익숙지 않아 어려운 동사들을 자주 사용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what?인 경우가 많았다. 나는 문장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에 사용하지만 미국인 입장에서 대화할 때 그런 단어를 듣는 것이 너무 생소하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미국인들은 come, go, do, get, make, take 등 우리가 잘 아는 몇 개 동사 뒤에 전치사를 붙이는 식으로 대부분의 의사표현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