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교육 문제
연수생들이 미국에 오기 전에 가장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가 자녀들의 교육문제일 것이다. 아이들이 미국학교에 가면 잘 적응하고 미국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첫 번째일 것이고, 가끔 해외뉴스에서 미국학교에서의 총기사고 뉴스를 접하고 안전이 우려되지 않을까 하는 게 두 번째일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가지 모두 마음을 놓아도 좋다는 것이다. 한국학생들의 대다수는 부모들의 높은 관심과 한국생활에서 기인한 많은 학습시간 때문에 미국아이들과의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간혹 미국학교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해 뉴스를 장식하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학제는 3단계 혹은 4단계로 되어있다. 내가 있는 콜롬비아시는 4단계로 1~5학년이 elementary, 6~7학년이 middle, 8~9학년이 junior high, 10~12학년이 high school로 되어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그냥 elementary (1~6), middle(7~9), high(10~12)의 3단계로 된 곳도 있다.
나도 딸아이들의 학교경험을 통해 미국교육에 몇 가지 특징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첫 번째 특징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 내가 아무리 잘해도 나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뒤질 수 밖에 없다. 한국의 상대평가제가 학교공부 외에도 사교육에 매달리는 등 과열경쟁을 유발하고 친구들간의 인간관계를 삭막하게 만드는 원인이 되지만 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일정 점수 구간대를 정해놓고 그 안에 포함되면 모두 A학점을 받을 수 있다. 이를테면 93점 이상이면 A학점을 받는데 94점을 받은 학생이나 95점을 받은 학생이나 모두 A로 표시된다. 그러므로 학과목에 따라 A 등급자가 많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두 번째 특징은 학생을 일회성으로 평가하는 법이 없고 한 한기동안 총체적인 생활상과 노력도, 시험성적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성적을 매긴다는 점이다. 출결상황, 수업태도, 과제물 제출, 때때로 실시하는 간이시험(Quiz), 몇 차례 실시하는 시험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기말에 과목별 최종 성적이 산출된다. 학기 중간 중간 과목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현재까지 얻은 성적을 알려준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자신의 과목별 점수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분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특히 콜롬비아시 교육당국은 모든 학생들의 교육진행도를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갖춰놓았다. 집에서 학부모가 로그인을 하면 출결상황, 그 시점까지의 과목별 취득점수, 과목별 과제물상황 등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학부모가 학교를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자녀의 학교생활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세 번째는 학과 공부 이상으로 과외활동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방과 후 과외활동, 즉 체육 음악 미술 그리고 지역봉사, 사회활동 등이 학생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연수라는 제한된 시간동안 자녀들에게 미국 교육을 시키다 귀국하는 경우에는 별로 신경을 안쓰지만 미국에서 자녀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키는 경우에는 필수적 요인이 된다. 미국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체육,음악 등의 과외활동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사회봉사단체 등에 가입하는 경우를 목격할 수 있었다. 학교당국도 과외활동 활성화를 위해 많은 돈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교육당국의 예산지원이 부족해 항상 학교측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미국의 공립학교들은 학부모에게서 일체의 학비를 받지 않는 대신 전적으로 예산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그런데 과외활동에 대해서는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기부(fundraising)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다. 학교측은 학부모들로부터 각종 명목으로 기부를 받는다. 사실 명목은 기부지만 실제는 학부모들의 호주머니를 강제로 열게 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금모금을 위한 식사티켓 판매, 댄스파티, 쿠키판매 등 형식도 다양하다. 학부모들이 특정 잡지를 정기구독하면 잡지사가 학교에 기부하거나 특정 상점에서 학용품을 구입하면 학교가 그곳에서 기부금을 받는 식의 간접기부 방식도 사용된다. 한국 같으면 학교비리라고 뉴스에 실릴 법한 부분도 있지만 이곳에서는 누구도 문제삼지 않는 사회 분위기다. 사실 한번에 지갑에서 나가는 비용이 대개 10달러 미만이다. 과연 이런 기부로 얼마나 기금을 모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한국 학생들이 미국학교에 처음 들어갈 때는 영어가 딸리니까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고 걱정을 많이 하지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매우 만족하는 이유가 한국과는 다른 미국식 교육제도만의 장점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학생들이 초기에 어려움을 겪는 부분은 역시 영어 때문일 것이다. 수학은 한국의 학습과정이 앞서 있기 때문에 내용은 잘 알지만 수학용어를 몰라 애를 먹는 경우가 있고 사회, 역사 등은 내용도 생소하고 모르는 단어가 많아 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영어구사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ESL 교사가 도움을 주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극복해갈 수 있다. 심지어 영어에 서툰 외국인은 시험시간에도 ESL 교사로부터 모르는 단어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 있다.
미국의 학교가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도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한국의 학교시스템보다 안전에 더욱 신경을 많이 쓴다. 미국에서는 중학교 이상은 대학처럼 강의식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반(class)이 없고 학생은 각자 학기 초에 원하는 과목에 수강신청을 한다. 그러므로 친구들과 수강과목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다. 수업 진행은 한국처럼 학생들은 교실에 앉아있고 교사가 교실을 방문하는 식이 아니라, 각자 개인이 과목별 강의실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강의와 강의시간 사이에 휴식시간이 단지 5분이라는 점이다. 학교 입학 초기 딸아이들이 화장실 들를 시간도 없이 강의실 옮겨 다니기도 빠듯하다고 불평하는 소리를 들었다. 상식적으로 어린 학생들이 5분 동안 화장실을 사용하고 강의실에 자리를 잡기는 무척 빠듯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미국에서 오래 생활한 교민에게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이유인즉 학생들에게 비행을 할 시간적 틈을 주지 않기 위함이란다. 학생들끼리 모여 소란을 피우거나 마약을 사용하거나 할 시간적 여유가 없이 바로바로 강의실로 옮겨 다닐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만 준 것이 5분 휴식시간이란 것이다. 점심시간도 학교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략 20분 전후다. 중학교 이상은 수업 시작시간이 오전 8시고 초등학생은 오전 9시다. 학생들은 통상 그 30분전에 학교에 등교한다. 그런데 이때도 30분 이전에는 설령 등교했더라도 교내에 들어갈 수 없다. 등교를 돕는 스쿨버스가 35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면 학생들을 하차시키지 않고 5분간 차내에 대기시킨다. 이 경우도 학생들에게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적 여유를 주면 소란과 비행이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는 판단에서다.
학교에서 폭력사용이나 싸움이 일어나면 많은 경우 경찰이 출동한다고 한다.아이들의 말로는 학교에서 폭력이 동원되는 경우는 잘 볼 수 없었는데 한번은 학생들간에 큰 싸움이 일어나자 언제 연락이 됐는지 경찰이 나타나 곧바로 연행해갔다는 것이다. 학내 문제에 대해 최대한 사회가 개입을 자제하는 분위기인 한국과는 분위기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교에서 총기나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가 발각되면 경찰이 출동하고 해당 학생은 퇴학조치를 당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