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보기

8- 미국문화의 이해

by

8. 미국 문화의 이해

미국 생활 적응은 미국문화 이해하기에서 출발한다. 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불편을 느끼는게 당연한 것처럼 우리도 미국에 가면 불편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차이에서 오는 상이성 때문이다. 누가 그 차이를 빨리 깨닫고 극복하느냐가 미국생활에 잘 적응하는 방법이다.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처음 느낀 불편은 상이한 계량형 단위였다. 기온을 표시하는 단위가 한국에선 섭씨(C)지만 미국에선 화씨(F)다. 처음에는 일기예보에서 70도, 80도라고 표시해도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마다 머릿속으로 화씨를 섭씨로 바꿔 환산하고 했는데 영 불편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 계절이 지나면서 각종 기온을 체험하고 난 지금은 화씨 온도가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리표시를 나타내는데 킬로미터(㎞) 대신 마일(mile)을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경우다. 몇 마일이라는 숫자가 나오면 재빨리 1.6을 곱해 ㎞로 환산하곤 했는데 지금은 그런 절차를 생략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마일이라는 단위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부피를 재는 단위인 리터(ℓ) 대신에 갤런(gal)을 사용하고, 그램(g)에 파운드(lbs)를, 센티미터(㎝)에 인치(inch)를 사용하는 것 등은 아직 익숙지 않다. 아마 이런 단위들은 내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경우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생활을 마칠 때 즈음이면 이런 계량단위에 더 익숙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미국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쇼핑이다. 먹고 생활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쇼핑을 통해 구매되기 때문에 통상 일주일에 몇 번씩은 물품 구매를 위해 쇼핑센타에 가게 된다. 처음 미국 쇼핑센타를 갔을 때 물품의 가격표에서 손쉽게 미국상술의 특징을 엿볼 수 있었다. 대개 물품가격표가 9.99달러, 19.99달러, 99.99달러 식으로 붙여져 있다. 왜 그런지는 뻔하다. 한국도 9800원식의 물품가격표를 붙이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아주 예외적이고, 설령 그때도 9990원 식으로 1센트(10원)를 갖고 착시현상 장난을 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나는 미국의 상술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서 가격표 외에 또 한가지 신경을 써야하는 대목이 세금이다. 우리는 물품가격에 이미 부가세가 포함되어 표시되지만, 미국에선 계산시 가격표 요금에 반드시 세금이 덧붙는다. 나도 가끔씩 세금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고 쇼핑을 했다가 계산 시에 비용지출이 생각보다 많아 당혹스럽게 느낀 경우가 있었다. 내가 거주하는 미주리주는 7%의 세금을 가산하지만 세금부과율은 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또 한가지 쇼핑에서 생각해야할 부분이 세일이다. 우리는 과잉경쟁을 막기 위해 세일기간이나 세일방식에 대해 법적 규제장치가 많지만 미국은 규제가 없어 거의 연중세일이다. 여름청산 세일이 지나면 바로 가을맞이 세일, 학교 개강세일, 노동절 세일, 추수감사절 세일, 겨울맞이 세일, 크리스마스 세일 등 각종 명칭의 세일이 이어진다. 할인쿠폰 남발은 일상적인 일이며 심지어는 고객 내방이 적은 날(통상 토요일 오전)에 고객유치를 목적으로 early-bird sale을 실시하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나도 어느덧 세일에 익숙해져서 30% 정도의 가격할인은 세일도 아니고 50% 이상의 숫자가 붙어야 세일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9월과 봄의 문턱에 들어서는 2월에는 재고상품 처리를 위해 대규모 세일 행사가 벌어지는데 그때는 심지어 90%까지 숫자가 올라간다. 미국에서 몇 년째 생활한 한 가정주부는 “미국에선 세일기간에 물품을 구매하지 않고 정상가격에 구매하면 팔불출”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간혹 미국에서 팁(tipping) 때문에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초창기에는 팁을 지불해야 하는 장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데 혼란스러웠고 팁을 줘야할 경우에도 얼마를 줘야 하는지 몰라 난처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선 술에 취해 기분 좋아 주는 것이 팁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은 용역제공에 대한 공식적인 수고료로 받아들이고 있다. 나는 식당과 택시를 이용할 때는 팁을 지불한다는 정도만 알고 미국에 왔고, 실제 생활 속에서 하나씩 깨우쳐갔다. 식당도 팁 방식에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패스트푸드점은 팁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식당 중에서도 고객이 직접 카운터에서 돈을 치르고 음식을 받아 자리를 잡는 방식의 식당에서는 팁을 주지 않아도 된다. 그 외의 식당과 바(bar)에서는 팁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팁의 지불도 음식값의 10~20%까지 다양하다. 고급 음식점이나 술집일수록 팁 퍼센트가 높다. 처음에는 팁은 무조건 10%인 줄 알고 그만큼 계산해서 호기있게 지불했다가 종업원으로부터 팁이 적다는 얘기를 듣고 얼굴이 화끈해진 경험도 있다. 그래서 지금은 고급음식점에서 계산을 하기 전에 팁은 어느 정도가 적당하냐고 직접 물어본다. 한번은 친구와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팁을 줄 현찰이 부족했다. 음식값을 카드로 결재할 생각만 하고 미처 팁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동행인에게 체면을 무릅쓰고 현찰을 조금 빌려 팁을 계산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팁도 음식값과 함께 한꺼번에 신용카드로 결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 한가지 미국인들과 식사를 함께 했을 경우 식사비 문제에 대해 잠깐 짚고 넘어가자. 우리는 여러 사람이 식사를 함께 했을 경우, 돈을 지불할 때가 되면 난처한 입장이 되지만 미국인과의 식사 때는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식사를 살 생각이면 사전에 “It`s on me”(내가 내겠다)고 밝히는 게 좋다. 상대방이 식사비를 지불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식사 전에 그런 의사표시가 없었다면 식사비는 각자 지불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이뤄진 것과 같다. 식사 후 종업원에게 계산서(bill)를 분리해서 가져다달라고 하면 각자 주문한 것을 정확히 기록해 주문자 숫자만큼의 계산서를 가져온다.

다음은 실생활과 밀접한 도로법규에 대해 잠깐 이해를 도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 운전을 하다가 온 연수생들에게 미국 도로 운전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한 두 가지 생소한 대목이 있어 운전자들이 종종 실수를 한다.

미국의 도로에는 `stop` , `all ways stop`이라는 표시를 많이 볼 수 있다. 신호등이 설치된 곳은 한국 도로보다 적은 대신 작은 골목길에도 이같은 표시를 붙여놓은 곳이 태반이다. ‘stop’ 표시는 일단 그 지점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친 다음 지나가라는 뜻이다. ‘all ways stop’은 네거리 작은 교차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일단 차를 멈춘 채 교차로에 도착한 차량 순서대로 진행하도록 차례를 기다리라는 뜻이다. 차량이 오는가를 눈치껏 살피며 적당히 진행하는 습관에 익숙해진 한국 운전자들에게 익숙지 않은 대목이다. 이를 위반해 범칙금 티켓을 발부받았다는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한국 운전자들이 익숙지 않은 또 다른 부분이 스쿨버스와 긴급 자동차를 조우했을 때의 대처이다. 미국에서 스쿨버스가 학생의 승하차를 위해 정차하면 진행차선이든, 반대편 차선이든 모든 도로가 올스톱이다. 스쿨버스가 승하차 용무를 마치고 출발하면서 해야 도로의 다른 차량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또 경찰차와 소방차 등 긴급차량이 사이렌을 울리며 진행 중일 때는 모든 차량이 도로 우측에 정차해야 한다.

한번은 왕복 4차선 도로에서 2차선으로 잠시 딴 생각을 하며 운전하다가 맞은편 도로에서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하차시키고 있는 것을 무시하고 지나친 적이 있었다. 도로 폭이 넓어 스쿨버스가 눈에 잘 띄지 않았고 옆 차선의 차량들이 정차하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옆 차량들의 손가락질을 하고 경음기를 울려대는 통에 창피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다. 만약 경찰차가 이 장면을 봤더라면 적지 않은 범칙금을 부과했을 것이다. 스쿨버스 통행위반은 미국에서 가장 중한 범칙금 사유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