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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바꾸는 미국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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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위키피디아의 수정 사항은 단 12분 만에 전 세계 챗봇의 답변으로 복제됩니다. 당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그가 어떤 가치를 지녔는지는 이제 인간이 아닌 알고리즘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컬럼비아대 SPS가 주최한 ‘2026 Political Analytics Conference’에서 민주당 하원선거위원회(DCCC) 선임 고문 메그 슈웬츠파이어(Meg Schwenzfeier)가 던진 경고입니다. 올해 컨퍼런스의 압도적 키워드는 단연 ‘AI’였습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AI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인간의 직관과 정무적 감각의 가치를 역설했습니다.
이번 컨퍼런스에서 나온 내용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응답률 1% 여론조사의 늪과 재탄생

전통적인 여론조사는 이제 생존을 넘어 재창조의 단계를 맞이했습니다. 온메시지 퍼블릭 전략(OnMessage Public Strategies)의 웨스 앤더슨(Wes Anderson)은 현재의 여론조사를 ‘270대 1의 전쟁’이라 불렀습니다. 실제 응답자 1명을 만나기 위해 무려 270번의 전화를 걸어야 하는 처참한 효율성 때문입니다. 이메일 조사 역시 응답률이 0.5~1%에 불과해, 1만 명의 표본을 얻으려 100만 통을 발송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이러한 수치의 함정을 극복할 대안으로 슬링샷 전략(Slingshot Strategies)의 에반 로스 스미스(Evan Roth Smith)는 ‘규모화된 정성 조사(Scaled Qualitative)’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유권자를 미리 정해진 틀(20대 남성, 중도층 등)에 끼워 맞추는 ‘슬롯화(Slotification)’를 강하게 비판하며, AI를 활용해 수많은 사람의 자유로운 의견 속에서 깊이 있는 패턴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에반은 뉴저지 선거의 교훈을 예로 들었습니다. 2025년 뉴저지 예비선거 당시 폭스뉴스 등 대형 여론조사 기관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민주당이 좋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74~75%가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수치만 보면 민주당 후보들이 예비선거에서 매우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고, 향후 본선에서도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에반 팀에서 뉴저지 11구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AI 개방형 조사를 해보니 유권자들은 민주당 주류 지도부와 고령 정치인들을 향해 ‘게으른 노인들’, ‘길 잃은 강아지’라고 표현하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유권자들은 설문지에서 민주당이라는 이름에는 습관적으로 긍정으로 응답했지만, 자유롭게 말해보라는 질문에는 ‘지도부가 너무 늙었다’, ‘기득권에 안주한다’, ‘지지층의 요구에 반응하지 않는다’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는 이 사례를 통해 “전통적인 여론조사들이 ‘민주당 지지층은 결집했다’는 가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 지지층 내부에서 심각한 냉소와 분열이 일어나고 있었고, 만약 이를 포착하지 못한 채 선거 전략을 짰다면 본선에서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또 이런 발견 덕분에 2025년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마이키 셰릴(Mikey Sherrill)처럼 참신한 인물이 승리하는 전략적 토대가 됐다는 설명입니다.

워크벤치 전략(Workbench Strategy)의 제인 레이번(Jane Rayburn)은 AI가 생성한 가짜 응답자가 데이터를 오염시키는 상황에서, 결과가 상식에 부합하는지 인간이 직관적으로 검증하는 ‘스멜 테스트(Smell Test)’가 필수라고 덧붙였습니다.

웨스 앤더슨 역시 보안이 중요한 ‘상대 후보 약점 조사(Opp-research)’의 경우, 스크린샷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인 ‘라이브 콜(상담원 직접 전화)’로 회귀하고 있다는 실무적 팁을 전했습니다.

구글 요약 답변만 읽는 유권자 설득 전략

유권자의 정보 소비 경로가 구글 상단의 ‘AI 요약 답변’으로 이동함에 따라 캠페인 전략도 전면 수정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메그는 이를 ‘정보의 가두리 양식장(Information Walled Garden)’이라 정의했습니다. 유권자가 검색 리스트를 클릭하는 대신 AI가 요약한 내용만 소비하게 되면서, AI 제조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특정 매체의 논조가 유권자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편집자’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에 메그는 이젠 선거캠프의 핵심 보직은 검색 엔진 최적화(SEO)를 넘어선 ‘답변 엔진 최적화(Answer Engine Optimization)’ 팀이라고 말합니다. 위키피디아 수정 사항이 단 12분 만에 챗봇 답변에 인용되는 현실에서 24시간 내내 AI의 답변을 모니터링하고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는 디지털 대응 역량이 승패의 척도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

반면, 컬럼비아대 야밀 벨레스(Yamil Velez) 교수는 AI를 통한 ‘초개인화 설득’의 위력을 증명했습니다. AI가 개별 유권자의 고유한 논리를 분석해 맞춤 메시지를 생성했을 때, 일반 광고보다 2배 이상의 설득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 전략가들은 라틴 유권자를 만날 때 항상 ‘이민 개혁’이나 ‘국경 문제’를 1순위 메시지로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야밀은 AI를 활용해 라틴 유권자 개개인의 선호도를 심층 분석한 결과 많은 라틴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낙태권이나 대마초 합법화 같은 사회적 이슈였습니다. 야밀은 “더 이상 라틴 집단 혹은 흑인 집단이라는 거대 범주로 유권자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며 인구통계학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데이터에 기반한 ‘전략적 배짱’과 내러티브 타겟팅

매체 환경이 변화면서 선거에서 전략적 인내와 메신저의 선택도 중요해졌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정치전략가 재키 번즈(Jackie Burns)는 2025년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마이키 셰릴 후보의 승리 공식인 ‘Hold Your Powder(화력 아끼기)’를 소개했습니다. 상대 후보들이 초반에 3500만 달러를 쏟아부을 때, 셰릴 캠프는 유권자의 37%가 무관심하다는 데이터에 근거해 단 20만 달러만 집행하며 때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아껴둔 자금을 막판 8주에 집중 투입해 14%p 차 대승을 거뒀습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배짱을 부렸기에 가능한 결과였습니다.

김은지 컬럼비아대 교수는 정치 전문 유튜버보다 요리나 운동 등 일상을 공유하는 ‘비정치적 인플루언서’의 메시지가 젊은 층에 더 효과적임을 실험으로 입증했습니다. 유권자들은 이들을 신뢰할 만한 이웃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에리카 프랭클린 파울러(Erika Franklin Fowler) 웨슬리안대 교수는 Connected TV(CTV) 광고 비중이 2026년 25%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CTV 광고는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등에서 콘텐츠를 볼 때 나오는 광고입니다. 그리고 범죄 수사물 시청 직후 치안 정책 광고를 노출하는 식의 ‘내러티브 타겟팅’이 선거 광고의 표준이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AI는 ‘신입 협업자’, 최종 승부는 인간의 정무감각으로

AI의 진화가 장밋빛 미래만을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도 언급됐습니다.
현재 온라인 여론조사 응답의 무려 40%가 AI 봇에 의해 작성되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공유되었습니다. 이는 여론조사 데이터 자체가 ‘기계가 질문하고 기계가 답하는’ 허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에 데이터의 신뢰도를 위해 설문 과정에서 혈류 측정이나 눈동자 추적 같은 생체 인식기술을 도입해 실제 인간임을 인증하는 절차 도입이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전문가들은 AI를 독자적인 결정권자가 아닌 ‘신입 협업자(Junior Collaborator)’로 규정했습니다. 모든 진영이 AI를 활용해 초개인화 타겟팅을 수행하는 평준화된 전장에서,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1인치는 결국 인간의 정무적 감각과 진정성이라고 강조합니다. AI가 내놓은 계산 결과를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유권자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영역은 여전히 인간 매니저의 전유물이기 때문입니다.

美 2026 중간선거, 하원은 민주당 탈환할 듯

컨퍼런스에 참석한 전략가들은 이번 중간선거를 ‘AI라는 신입 사원을 얼마나 능숙하게 부리는 인간 매니저인가’를 가리는 리더십 전쟁으로 전망했습니다.
민주당의 하원 탈환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 속에서 상원까지 민주당이 차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분위기였습니다.

▲ 상원 판세: 공화당 텃밭에서의 초박빙 승부
조 렌스키(Joe Lenski) SSRS 부사장은 과거 5번의 선거 데이터를 근거로 올해 상원 승부처를 알래스카, 아이오와, 오하이오, 네브래스카, 텍사스로 봤습니다. 이 지역들은 전통적인 공화당 우세 지역(Red States)이지만, 현재 데이터상 4%p 이내의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민주당이 기존 경합주(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등)를 수성하는 동시에 앞선 5개 주 중 최소 2곳 이상에서 승리해야 상원 다수당 탈환이 가능할 것으로 봤습니다.

▲ 하원 판세: 민주당의 탈환 가능성 고조
하원의 경우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민주당은 단 3석 순증만으로도 다수당 지위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현재 경합으로 분류된 지역구의 상당수가 공화당 현역 의원 지역구인데 역사적으로 중간선거는 집권 여당에 불리한 심판 성격이고 현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높지 않다는 점에서 민주당의 하원 탈환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고 있습니다.

▲ 간헐적 유권자가 변수
카비르 칸(Kabir Khanna) CBS 뉴스 이사는 선거 결과를 결정지을 핵심 집단으로 ‘5%의 간헐적 유권자’를 꼽았습니다. 이들은 정치 고관여층이 아니고 주로 물가, 가스비, 월세 등 민생 경제에 반응합니다.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던 젊은 남성층 중 일부가 현재 경제 분야 등에서의 실망감으로 인해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투표장에 나오지 않거나 민주당으로 선회할 경우 공화당에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