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 스페인 매체 인터뷰가 화제인 이유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을 스페인 매체 엘 파이스(El País)의 인터뷰 내용이 한국에서 전해지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매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스페인에서 가장 유력한 신문이자 온라인 뉴스 사이트 중 하나입니다. 그 영향력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에서도 대단합니다. 온라인 독자의 절반이 스페인 밖에서 접속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상한(?) 매체는 아니라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인터뷰 중 논란된 부분 중에 저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바로, 엘파이스 기자님께서 “K팝의 비약적인 성공이 아티스트들에게 비인간적이냐?”고 묻는 부분입니다.
그동안 엘파이스는 여러번 K문화에 긍적적으로 다뤘고, 이 기자님도 영화를 글래스고에서 공부하셨다는 프로필 등으로 미뤄 짐작해 봤을 때 예술은 그래선 안된다고 작심하고 질문 하셨다고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사실 물어볼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RM의 9살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내용의 노래가사를 인용하며 질문한 것으로 봐서 기자님도 공들인 질문이었습니다. RM은 일부 동의하는 발언을 하다가 되묻습니다. “근데 질문이 뭐였나요?”. 이때 기자는 가차없이 다시 한번 더 “시스템이 비인간적이냐?”고 질문의 핵심을 다시 확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RM은 다시 답을 이어갑니다. 많이 개선이 되고 있다는 요지로 말입니다. 그리고는 연습생 시절이나 데뷔 초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해 차분히 말합니다. “춤 실력이 늘었고 대학생활을 놓쳤다”고…
백미는 여기부터입니다. 기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젊음에 대한 신앙, 완벽함, 과도한 노력이 한국 문화의 특징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RM의 대답이 생각해 볼 거리가 됩니다.
서양인은 이해 못할거라고 전제하고는 과거 아팠던 한국의 근대사를 나열하며 스페인어로는 호디아멘테(jodiamente, 비속어) 번역됐는데 -한국말로 하면 ‘ㅈㄹ(?)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게 우리가 wf 열심히 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정면으로 돌파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대놓고 스페인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프랑스, 영국 같은 다른 나라에 식민지 시대를 안겨준 나라에 살면서 이 노력을 비인간적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냐”라며 시원하게 일갈했습니다. 그리고 “부작용이 있겠지만 그런 노력이 K팝을 매력적이게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다른 질문들도 RM은 잘 답변합니다. 논리가 좋고 질문의 의도 파악도 빨라서 서른 살을 앞둔 청년이 단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미술에도 해박하며 특히 음악적인 질문에선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견해를 정확히 전달한 것으로 읽혔습니다.
화룡정점은 여기입니다. K란 수식어가 지겹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스포티파이(음악 스트리밍 서비스)가 우리를 그렇게 분류했지만 그것은 ‘프리미엄 도장’이며 “우리 선대(할아버지)가 이뤄 온 유산”이란 표현을 씁니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면서 수많은 인디오(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았다가 1550년 스페인 서북부 바야돌리드에서 원주민들에게도 이성이 있는가란 토론을 벌였다고 합니다. 일부 철학자는 인디오는 이성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게 고작 500년도 안된 일입니다. 엘파이스 인터넷 독자들이 중남미에도 많고 K팝 팬도 중남미에 많으니 RM의 뼈있는 한마디에 공감해 줄 중남미 사람들도 많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여기까지 RM의 이야기를 그만하고 이제 제 얘길 해 볼까 합니다. 최근 한국에서 온 분들과 같이 안달루시아 지방을 두루 다녔습니다. 그중 가장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얘들(유럽 사람들)은 조상을 잘 만나서”란 말입니다. 부럽다는 뜻이겠죠.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 가이드분이 지도를 보며 1861년 조선에서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졌고 1863년에 영국 런던에선 지하철이 개통됐다는 얘길 해주셨는데 확인해봤더니 정확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만큼 그 시절엔 큰 격차가 벌어졌단 뜻입니다.
그런데 ‘K-’가 선대가 만들어놓은 ‘프리미엄 도장’이란 얘길 들으니 이들의 조상만 부러워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합니다. 엘파이스 기자님의 질문을 저는 평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스페인에서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나 선입견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봅니다(언젠가 이 얘기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잘 써보고 싶습니다). 그보다 먼저 한국 여권을 보며 남한이냐를 묻는 것을 보면, 양국이 서로에 대해 공부하고 이해할 필요가 더 있다고도 봅니다.
그런데 RM의 역사관과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 당당한 자기 논리로 무장한 인터뷰를 읽어보니 양국 사람들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이 공부하는 것 보다 먼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잘 모르니 오해할 때가 참 많습니다. 서로를 존중 못할 때도 많습니다.
안타깝게도 최근 이강인 선수가 스페인 라리가에 마요르카 홈팀 경기장에서 골을 넣었는데도 관중들이 눈을 찢고 있는 모습을 중계 중 봐야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얼마전 원정 경기에 응원을 갔다가 관중석에서마저 상당한 모욕감을 느낀 적도 있습니다.
‘K-’를 당당하고 자랑스러워하는 RM이나 차별 속에서도 계속 선전하고 있는 이강인 선수를보면 장하단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인터뷰가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일조했음 합니다. 기자님의 질문도 날카롭긴 했지만 답변자의 답변을 잘 반영해 준 용기에 대해서도 칭찬하고 싶습니다. 한국과 스페인에 교류가 앞으로 더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