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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C 카디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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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인 제 아들의 취미는 야구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제 아들의
바람대로 주니어 야구팀에 가입시킨 것입니다. 자녀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에 맞는 클럽을 찾아 적
극적으로 활동할 것을 권합니다.


저희 가족은 2015년 7월 23일에 인디애나대학이 있는 미국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8월쯤 주니어 야구팀에 가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시즌이 끝나서 가입할 수 없다는 답신
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를 올해 봄에 알았습니다. 제가 사는 블루밍턴의 경우 주니어 야구가 통상 4월초
에 시작돼 6월말에 끝이 나더군요. 나이별로 팀이 구성되는데, 저희 아들은 9∼10세 팀에서 뛰었습니다.
 
주니어 야구는 크게 연습, 지역리그, 지역 토너먼트 형태로 진행됩니다. 4월 초부터 6월말까지 이 리그
가 진행됐습니다. 회비는 140달러였으며 유니폼 상의와 모자를 지급해줬습니다. 글러브와 배트, 하얀색
유니폼 하의, 야구화 등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물품이었습니다. 블루밍턴에는 4개의 주니어 야구
장이 붙어 있는 종합 경기장이 있습니다. 각각의 야구장에는 야간 경기를 위한 라이트 시설과 스코어를
알 수 있는 전광판, 관중석이 마련돼 있습니다.


3개월 동안 140달러라는 비용에 잔디가 깔린 야구장에서 아이들이 실컷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관(官)
과 지역 기업의 협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우선 블루밍턴 주니어 야구협회에는 블루밍턴시의
공원·여가국(Parks and Recreation Department)이 참여합니다. 이 공원·여가국이 주니어 야구팀들에게
경기장 사용을 우선적으로 허용하고,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경기장을 빌려 준다고 합니다.


또 제 아들이 속한 팀의 이름은 CFC 카디널스였습니다. CFC라는 이름이 낯설지요. CFC는 한국에도
지사가 있는 글로벌 헬스케어 업체 Cook 그룹의 자회사라고 합니다. 제가 취재해 보니 CFC의 본사
가 블루밍턴에 있으며 직원 수는 85명이고, 40년 된 역사를 가졌다고 합니다. 쉽게 말해 CFC는 블루
밍턴의 향토기업, 동네기업인 셈입니다.
 
즉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지역 기업들이 주니어 야구리그를 후원하고 주니어 야구팀들은 동네
회사의 이름을 따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기업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Spalding Law라는 지역
법률회사의 이름을 딴 야구팀도 있었습니다. 이런 후원 때문인지 회비 이외의 비용을 요구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감독은 연습이 끝난 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고, 수영장을 함께 가기도
했습니다. 기업의 후원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연습과 시합에도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일단 감독과 코치들은 직업적인 스포츠 강사들이 아니라 학부
모들이었습니다. 감독은 대체적으로 인디애나대 체육과 교수, 중·고등학교 체육 교사인 학부모나 과
거에 야구나 농구 선수를 했던 학부모들이 맡더군요.
 
저도 얼떨결에 코치로 참여했습니다. 아들을 야구장에 데려다 주고, 데려 오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우리 팀의 감독이 저에게 코치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래서 아이들과 캐치볼을 하고 배팅볼
을 던져주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감독과 코치들은 승부보다 즐거움(fun)을 강조하더군요. 연습때
는 감독이 타석에 선 아이들에게 공을 던져주는데, 아무리 못 하는 아이들이라도 공을 칠 때까지
던져 주더군요. 헛스윙을 스무 번 넘게 하는 아이들에게도 용기를 북돋워주며 공을 던져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연습은 4월 한달 정도 진행됐고, 일주일에 두세 번 모여 2시간 가량 했습니다. 그리고 5월부터 20경
기 정도 리그전이 이어졌습니다. 대략 10여개팀이 두 차례 정도 맞붙었습니다. 이 리그전 성적을 바
탕으로 시드를 정해 우승자를 가리는 토너먼트가 진행됐습니다.


리그와 토너먼트로 이어진 시합에서도 감동적인 장면들이 꽤 있었습니다. 제 아들팀과 맞붙은 A팀에
걷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어린이가 선수로 뛰고 있었습니다. 그 팀 선수들의 부모들은 그 선수의 작
은 움직임에도 큰 박수를 보내주더군요. 하지만 그 선수는 타석에 들어 설 때마다 삼진을 당했습니다.
그날따라 승부가 박빙으로 흘러갔습니다. 그 팀이 1점 차이인가, 2점 차이로 우리 팀에 뒤지고 있었
고 그 팀의 마지막 공격이었습니다. 무슨 소설처럼 그 선수 앞에 주자들이 모여 찬스가 생겼습니다.
감독은 선수를 바꾸지 않고 그 선수를 그대로 기용하더군요. 위기 상황에서 그 선수는 역시 삼진 아
웃을 당했지만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니어 야구는 6회까지만 진행되는데, 제 아들팀은 8강이었던 토너먼트 2차전에서 무려 연장
11회까지 가는 혈투 끝에 B팀에 패했습니다. 상대팀이 결승점을 올렸을 때, 한국 프로야구에서 많이
나오는 장면처럼 그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몰려 나와 서로 부둥켜안고 기뻐했습니다. 우리팀 선
수들 대부분은 울거나 울먹였구요. 그런데, B팀 감독이 경기장으로 뛰어 나와 그라운드에서 기뻐하
는 자기팀 선수들을 향해 “저 팀은 매우 훌륭한 팀이다. 저 팀 선수들과 먼저 인사하라”고 말했습
니다. 그제야 양팀 선수들은 악수를 교환했습니다. 그 장면도 제게는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 처는 저보고 아들보다 주니어 야구에 더 빠졌다고 놀리곤 했는데, 실제 그랬습니다. 한·일전보다
주니어 야구가 더 손에 땀을 쥐더군요. 블루밍턴 주니어 야구에서는 투수가 한 경기에 3이닝을 초과
해 던지지 못하도록 정해 놓았습니다. 참고로 제 아들은 투수와 3루수를 주로 맡았는데, 두 경기 연
속 5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기도 했고, 끝내기 안타를 맞기도 했습니다. 야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승리
와 패배를 동시에 경험한 것이 제 아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확신합니다.


또 스포츠보다 친구 사귀기가 더 쉬운 것은 없어 보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같은 팀 친구가 타석에
들어서면 그 친구 이름을 크게 불러주며 응원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순간 가슴 한 켠이 무거운 것도 감출 수 없습니다. 제 아들은 야구를 너무 좋
아해 한국에서도 야구클럽에서 활동했었습니다. 그 때 구경 갔던 한국의 야구클럽 환경과 미국에서
직접 체험했던 주니어 야구의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글로 담는 것이 가슴 아플 정도로 차
이가 심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어린이들을 위한 스포츠 시설이 확대되고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맺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