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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V 직원은 왜 그럴까… 미국 사회도 의아해하는 공공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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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V 직원은 왜 그럴까…

미국 사회도 의아해하는 공공행정

미국 연수자에게 악명 높은 두 곳의 관공서가 있다. 한 곳은 우리로 치면 운전면허시험장 격인 DMV(Driver & Motor Vehicle Services)이고, 또 한 곳은 우리 주민등록증 격인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발급하는 사회보장청(SSA)이다. 전자는 연수자라면 누구나 방문해야 하는 곳이고, 후자는 각주마다 정책이 달라 방문해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있는 오레곤주는 미국에서 급여를 받지 않는 사람에게 SSA를 방문하지 않아도 되도록 DMV 행정처리를 하고 있다. 하지만 뉴욕 등 일부 주는 DMV에서 현지 운전면허증을 받으려면 필수요건으로 SSA에서 사회보장번호를 발급받도록 요구해 결국 전자와 후자 모두 방문해야 한다.


[사진1] DMV 정문

이 두 곳이 악명 높은 이유는 관공서임에도 어느 직원이 일 처리를 하느냐에 따라 심각하게 일의 편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수와 관련해 여러 경험담을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을 고발하는 글이 적지 않다. 몇 가지 어처구니없는 사례를 언급하면 캘리포니아의 한 DMV 직원은 뉴멕시코주 운전면허증을 들고 캘리포니아주 면허증으로 교환하겠다고 온 민원인에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얘기했다. “멕시코 면허증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교환이 안 됩니다.” 민원인은 황당해하며 뉴멕시코주는 미국 51개 주 가운데 하나라고 항변했고 직원은 그제야 업무처리를 했다.


[사진2] DMV 내부

또 다른 어처구니없는 일도 한둘이 아니다. 미국 오레곤, 워싱턴 등 상당수의 주는 한국 운전면허증에 대해 필기와 실기시험을 모두 면제하고 현지 면허증으로 교환해준다. 이 경우 필요한 서류는 한국 면허증과 DMV 신청서, 여권, 거주지 증명서뿐이다. 하지만 이를 정확히 인지하는 직원은 소수에 불과하다. 어떤 직원은 한국 면허증이 한글로 돼 있으니 국제운전면허증을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한국 면허증에 대해 한국 영사관에서 영어로 된 공증을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있다. 오레곤주의 경우 한국 영사관을 가려면 차량으로 3시간 이상 소요되는 시애틀까지 이동해야 하는 만큼 공증을 받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거주지 증명서 역시 어떤 직원은 임대차 계약서 하나만 제출해도 인정하는가 하면 또 다른 직원은 각종 공공요금 청구서 우편물 등을 추가로 요구하기도 한다. 이를 갖추지 않으면 당연히 행정처리를 거부한다. 따라서 당일 행정처리를 맡는 직원이 어느 정도로 현명하고 규정을 잘 인지하고 있는지에 따라 일의 성사 여부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와 아내는 오레곤주 DMV 운전면허증을 최대한 빨리 발급받아야 차량 구매와 현지 운전에 모두 편한 만큼 한국에서 예약하고 갔다. 미국 서부는 차량으로 다니지 않으면 제대로 이동을 하지 못할 정도로 광활해 DMV 예약은 상당히 붐볐다. 우리는 7월 초 한국에서 DMV 예약신청을 알아봤는데 이미 집 근처 DMV는 8월 말까지 예약이 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결국 집에서 차량으로 25분가량 걸리는 포틀랜드 북부 DMV로 입국 후 4일 만에 방문하도록 예약을 진행했다. DMV는 물론 예약하지 않고도 방문할 수 있는데 이 경우 그날 여유 상황에 맞춰 일을 처리하는 만큼 몇 시간이 걸릴지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당일 처리가 안 돼 다음날 재방문해야 할 위험성도 있다.

우리는 예약일에 맞춰 떨리는 마음으로 DMV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줄이 두 곳으로 갈렸다. 하나는 우리처럼 예약을 한 사람을 위한 줄이고 또 하나는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들, 이른바 스탠바이(Stand-by) 줄이었다. 미리 예약했던 터라 바로 민원 안내직원이 접수했다. 내가 “한국 운전면허증을 오레곤주 면허증으로 바꾸고 싶다”고 하자 그녀는 “필기시험을 봤느냐”고 되물었다. ‘이 직원 역시 제대로 규정을 모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내가 온라인으로 규정을 살펴봤는데 한국 면허증은 별도의 시험 없이 오레곤주 면허증으로 교환해주는 것으로 돼 있다”고 말하자 그녀는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창구직원에게로 보냈다.

창구직원은 50대 베테랑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우리는 신청서류와 집 임대차 계약서, 여권, 한국면허증을 제출했고 그녀는 다행히 추가로 서류를 요구하지 않았다. 3가지 간단한 질문에 답변해야 하는데 사고 시 장기기증을 할 것이냐는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나와 아내는 모두 원치 않는다고 답했다. 이어 시력검사가 이어졌는데 현미경처럼 생긴 기계에 눈을 밀착한 뒤 왼쪽, 오른쪽 어느 곳에 불이 켜지는지를 답하는 수준의 간단한 인지력 검사였다. 나와 아내는 큰 어려움 없이 필요한 절차를 마쳤는데 문제는 컴퓨터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신청서류에 우리에게 익숙한 센티미터와 킬로그램으로 키와 몸무게를 적어냈다. 서류상으로는 인치, 파운드 대신에 센티미터, 킬로그램도 허용됐다. 하지만 막상 시스템상에선 문제가 생겨 버벅거렸다. 직원은 몇 차례나 오류가 생기자 결국 우리 키와 체중을 인치, 파운드로 환산해 입력한 뒤 일 처리를 마쳤다.

직원이 컴퓨터와 싸움을 하며 시간이 정체되고 있어 마침 옆 창구 직원의 일 처리 장면도 보게 됐다. 옆 창구에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히스패닉 청년이 통역해줄 친구를 대동하고 있었다. DMV의 악명 높은 행정과는 정반대의 진풍경이 이곳에선 펼쳐지고 있었다. 시력검사를 하는데 통역 맡은 친구가 제때 제때 맞춰 딱딱 말을 전달하는 것도 아니고 대답도 당연히 불성실하게 이뤄졌다. 이러다 보니 시력검사의 의미는 희석됐고 형식적인 절차에 그치게 됐다. 하지만 DMV 직원은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면허증 발급 절차를 진행해주고 있었고 결국 그는 면허증 발급에 성공할 분위기였다. DMV 직원에 따라 일 처리가 복불복이라더니 정말 그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우리의 다음 절차는 면허증에 삽입될 증명사진 촬영이었다. 이곳은 별도의 증명사진을 가져올 필요가 없고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면허 발급 수수료 인당 80달러까지 내자 DMV 직원은 우리의 한국 운전면허증을 거둬갔다. 한국면허증을 가져간 뒤 본국으로 보낸다는 정도만 인지하고 있던 터라 DMV 직원에게 “내가 언제 어디서 한국면허증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허를 찔린 듯한 사람 마냥 놀라더니 겸연쩍게 웃으며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역시 DMV는 DMV구나.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으니 한국면허증은 본국 어딘가로 보내긴 하지만 대부분 찾지 못해 한국 와서 재발급을 받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우리는 악명 높은 DMV에서 별 탈 없이 면허증 신청에 성공했고, 꼬박 이주일 뒤 실물 면허증이 집으로 배송됐다. “DMV 직원들이 공무원임에도 일 처리 방식이 왜 이렇게 어설플까”하는 궁금증에 몇몇 전문가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져봤다. 포틀랜드 대 국제교류처 직원은 “DMV 직원들은 대부분 명석하지 않다. 어려움을 겪으면 무조건 책임자(Supervisor)와 면담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고 조언했고, 한 행정학 전문 교수는 “DMV 직원의 어설픈 일 처리가 미국 행정학의 연구주제로도 활용됐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나는 DMV에서 해방됐지만, 다른 많은 한국 연수생들이 또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될지 일말의 우려감이 든다. 그리고 그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