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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the moment – 현실 속 겨울왕국을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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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joy the moment – 현실 속 겨울왕국을 보셨나요?

김민형 서울경제신문 차장

미국 미주리주 콜럼비아에 해외연수를 온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계절은 어느덧 뜨거운 여름과 찬란했던 가을을 지나 깊은 겨울에 접어들었다. 해외연수기에 날씨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이번 주에만 벌써 두 번의 ‘No School’이 이어진 탓이다. 한국에서는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하루에 5분도 채 되지 않는 날이 많았다. 미국에서만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No School로 하루 종일 함께 지지고 볶아야 하는 날들은 연수생활의 가장 큰 도전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 겨울은 미국 미주리주에 30년 만의 강추위가 찾아온 덕분에 현지인들도 고개를 가로저을 만큼 다양한 날씨 이벤트가 이어지고 있다.

• 겨울왕국의 상상력을 만든 Freezing rain

“Wow. It’s Frozen”

연수를 오기 전 들었던 가장 특이한 미국의 기상현상 중 하나는 Freezing rain 이다. 한국어로 표현하면 ‘어는 비’다. 한국에서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기상현상이다.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인터넷상에서 어는 비는 ‘지표의 온도가 어는점 이하일 때 내리는 비로, 진눈깨비나 우박과 달리 과냉각 상태의 액체로 내리다가 땅에 부딪치는 즉시 얼게 된다’라고 소개되어 있다.

Freezing rain이 보고 싶어 Freezing rain이 내릴 것으로 예보된 어느 날 새벽 2시에 집밖으로 나섰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눈 보다는 얼음에 가깝고, 얼음 보다는 눈에 가까운 액체와 고체가 뒤섞인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땅에 떨어질 때는 “툭” 소리가 난다. 크기가 작은 Freezing rain은 사람이 맞아도 괜찮지만, 큰 덩어리를 맞으면 꽤 아플 수도 있다. 신기한 것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얼어버린다는 점이다. 차가운 얼음 위에 물이 떨어지면 곧바로 얼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온 세상이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나뭇가지 하나하나에 고드름이 얼어붙어 있다. 그 나뭇가지를 햇빛이 비추는 광경은 장관이다.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고드름끼리 부딪히며 “스르륵”하는 소리를 냈다. 마치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있는 느낌. 미국 사람들은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어떤 사람들은 “날씨가 계속 추워서 이런 광경이 며칠 더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위는 힘들지만 이런 광경은 마음 속에 오래 담고 싶어서일 것이다. 디즈니가 겨울왕국이란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자연현상에서 모티브를 얻어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 온 몸으로 체험한 Blizzard

지난달 초 집 근처의 할인잡화점 ‘Marshall’을 찾았다. Marshall은 Polo, Nike, Coach 등 브랜드 상품들을 할인 판매하는 상점이다. 백화점에서 팔다 남은 재고들을 들여와 팔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하다. 보통 권장소비가(Manufacturer’s Suggested Retail Price : MSRP) 보다 많게는 10분의1까지 할인해 판매한다. 실속 쇼핑족들로 항상 붐비는 곳이다. 이곳은 오전 10시에 열어 오후 9시 정도까지 영업한다.

한가로운 쇼핑을 즐기고 있던 오후 7시께 갑자기 안내방송이 나왔다. 눈보라(Blizzard)가 몰아칠 예정이니 30분 후에 가게 문을 닫겠다는 것이었다. ‘눈이 오면 얼마나 오길래 가게 문을 일찍 닫을까’. 약간은 불편한 마음으로 서둘러 쇼핑을 마치고 가게를 나섰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엄청난 눈이 그야말로 옆으로 휘몰아 치고 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과 함께 엄청난 눈보라가 불어왔다. 주차장의 차까지 가는 것이 가능할까 싶을 정도였다. 용기를 내 아이들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온 몸이 휘청거리고 뺨을 때리는 눈은 따가워 얼굴이 찌푸려졌다. 겨우겨우 차에 도착했지만 이제는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음을 굳게 먹고 수동기어로 바꾼 후 평소 5분 거리를 30분이나 달린 후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약 Marshall이 조금 늦게 문을 닫았다면 고객들은 물론 직원들도 귀가를 포기해야 했을 것이다. 문을 일찍 닫겠다고 했을 때 속으로 했던 불평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미국 중서부 사람들에게 블리자드는 재난에 가까운 상황이다. 곳곳의 나무가 부러지고, 광고판이 떨어져 나가고, 차량 추돌사고가 속출한다. 지역 TV뉴스를 보니 부러진 나무 때문에 여러 집이 피해를 입었고, 고속도로를 오가던 차량들은 사고로 1시간 가량이나 길이 막혀있었다고 한다. 다음날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전날 자신이 겪었던 블리자드 무용담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그들은 “I survived. Thanks God”이란 말을 썼다. 한국에서는 온라인게임 이름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블리자드. 그 실체를 온 몸으로 느낀 소중한 경험이었다.

• 큰 코 다친 겨울 대비

미국, 특히 미주리지역 사람들은 일기예보를 철썩 같이 믿는다. 일기예보가 워낙 자주 틀리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 굳이 타국에서 한국의 일기예보 능력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미국의 일기예보는 한국과 비교해 정말 정확한 편이다. 게다가 특별한 날씨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TV에서 거의 10분 간격으로 날씨 방송이 나온다. 아마도 한국과 달리 사회 시스템이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일 것이다. 날씨변화에 따른 가장 큰 이벤트는 No School이다. 특히 맞벌이 하는 가정 입장에서 No School은 재앙에 가깝다. 만약 당일 새벽에 콜럼비아 퍼블릭스쿨 위원회가 No School을 결정하면 부모들은 아이들을 맡길 곳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맞벌이 부부들이 회사에 지각하는 일은 다반사다. 다만 회사는 이런 상황을 이해해주는 분위기다.

이달 초 미주리주에는 엄청나게 많은 눈과 강추위가 예보됐다. 제트기류에 둘러싸여 북극 지역에 갇혀있어야 할 차가운 공기 중 일부가 제트기류 이상으로 밖으로 빠져 나와 남하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북극의 추위라고?. 에이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호들갑일까’. 월마트, 하이비 등 각종 대형마트에서 식료품 등을 사재기 해대는 콜럼비아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우리집도 물과 계란을 잔뜩 사 비축해 놓았다.

날씨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이틀 연속 내린 눈은 1미터 넘게 쌓였다. 집 앞의 눈을 아무리 치워도 속수무책. 빙판길로 변한 도로는 마비됐다. 콜럼비아 지역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집 앞의 슈퍼마켓을 가려고 해도 차를 몰고 가야 한다. 이런 곳에서 도로에 1미터 넘게 눈이 쌓인다면 그것은 ‘고립’을 의미한다. 게다가 눈이 그친 날 저녁 기온이 영하 22도로 떨어졌다. 스마트폰에서 알려주는 체감온도는 영하 30도. 1미터 넘게 내린 눈이 그대로 얼어버릴 참이었다. 그나마 생존에 필요한 물을 충분히 사 놓은 것이 위안거리였다.

눈 내린 당일 큰 도로는 제설작업을 실시해 다음날부터 차들이 다닐 수 있었지만, 주거지역의 도로는 답이 없었다. 동네 사람들과 함께 눈을 치워봤지만 중과부적이었다. 결국 그렇게 5일 동안 고립된 상태로 지내다 콜럼비아 시청이 제설차량을 Side road까지 보낸 후에야 고립에서 탈출 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 가족들은 한국에서 가져온 각종 깡통에 든 음식을 먹으며 버텨야 했다.

올해 초 미주리지역에 닥친 대설과 강추위는 역사적으로 30년만이었다고 한다. 이런 특별한 시기에 미국에서 연수생활을 하는 것에 감사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감사하게 생각한다. 눈이 많이 오면 학교는 쉬고 온 동네는 눈썰매장으로 변신하다. 마트에서 사는 썰매를 사거나 옆집 썰매를 빌리면 훌륭한 놀거리가 된다. 특히 이번 추위는 한국의 언론에도 보도돼 한국의 지인들로부터 여러 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우습게 봤던 미국 겨울에 다시 한번 고개를 가로저으며 위대한 자연 앞에 미약한 인간의 존재에 겸손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 언덕길에 멈춰선 차…아찔했던 순간

미국에서 2월 셋째 월요일은 President’s Day(워싱턴 초대대통령의 생일)로 휴일이다. 콜럼비아 지역 학교들은 전주 금요일도 휴일로 지정해 총 4일의 짧은 휴일이 주어졌다. 평소 가깝게 지내는 몇몇 가족들과 1시간반 정도 거리인 Osage Beach(바다가 아닌 호수) 리조트로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역시 날씨였다. 낮 최고 온도가 섭씨 3~5도 흐림으로 예측됐던 날씨가 출발 일이 가까워질수록 영하로 내려가고 눈 예보로 바뀌었다. 논의 끝에 이런 날에 여행가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고 의견이 모아져 결국 차를 몰고 출발했다. 오전 10시쯤 출발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날씩 30분 만에 눈보라로 바뀌었다. 앞차와의 간격이 조금만 멀어지면 차선은 물론 앞차가 보이지 않았다. 너무 가까이 따라 붙으면 미끄러운 도로에 추돌사고가 걱정됐다. 차량 전방의 확인 가능한 거리는 50미터 가량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차들이 게걸음을 하는 와중에도 시속 70마일로 1차선을 가로지르는 용감한 미국인들도 있었다. 문제는 언덕길에서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길에서 발생했다. 갑작스런 내리막에 브레이크를 밟은 차들이 도로 위에서 미끄러져 돌기 시작하며 추돌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기자는 느린 속도로 가급적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던 덕분에 차가 돌며 추돌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옆 차선을 달리던 차는 피겨스케이팅 회전하듯 도로 위를 빙그르르 돌기 시작했고, 뒤 따라 오던 차는 아예 차 컨트롤을 하지 못해 도로 옆 안전지대에 박혀버렸다. 브레이크를 짧게 수십번씩 밟으며 곡예운전을 하듯 위험지역을 빠져 나왔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한숨 돌릴 무렵 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고속도로에서 지방도로로 나가는 길이 오르막길이었던 것. 제발 중간에 멈추지 않고 한번에 올라갈 수 있길 바라며 진입했다. 한번 차가 서면 다시 오르기는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앞서 가던 차가 멈춰서는 바람에 우리 가족이 탄 차도 멈춰야 했다. 결국 차는 오르막길을 올라가지 못했다. 20분쯤 서 있었을까. 경찰이 출입구를 막고, 견인차량도 등장했다. 약 100미터 길이의 오르막길 Exit 도로에 멈춰선 20여대의 차들을 한대씩 견인했다. 차 한대를 견인하는 데 족히 20분은 걸렸다. 결국 Exit 진입을 포기하고 후진하여 30분쯤을 돌아서 평지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날 함께 여행을 떠났던 4가족 중 한 가족의 차량은 결국 도로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 가드레일에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지만, 아찔했던 운전 경험은 그날 술자리 내내 이어졌다.

여행을 다녀온 후 TV를 통해 본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눈이 왔던 당일 콜럼비아에서 서쪽 캔자스시티로 향하는 국도에서 47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이번 여행은 다른 방향이었지만, 화면으로 접한 사고현장은 아찔했다. 미국에서는 눈이 많이 올 때는 운전하면 안 된다.

• “Enjoy the moment in Missouri.”

기자가 연수생활을 하고 있는 미주리 지역 사람들이 겨울철에 자주 하는 말이다. 날씨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눈과 추위로 야외활동이 어렵다 보니 어쩌다가 뜨는 햇살을 즐기라는 뜻에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기자에게 이 말은 단순히 날씨와 관련된 말로만 들리지 않는다. 척박하기 그지없는 북미대륙의 중서부를 온갖 힘을 다해 개척해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어왔던 미국인들의 도전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말로 들린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날들이 이어질지라도 잠깐 아주 잠깐 행복한 순간에 감사하고 즐기면서 새로운 미래를 대비하는 에너지를 축적하는 미국인들의 삶의 태도가 아닐까.

미국 연수생활 중에 가끔 접하는 한국의 날씨 뉴스는 답답하기만 하다. 특히 겨울날씨는 더욱 그렇다. 올해 한국 언론이 보도한 겨울 날씨 역시 예년과 다르지 않다. 겨울철 어쩌다 따뜻한 날에는 미세먼지가 창궐해 야외활동하기 어려운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겨울 주말마다 아이들과 함께 갈만한 실내놀이터를 검색했던 한국에서의 삶이 떠오른다. 이유가 무엇이든 한국의 날씨, 특히 겨울 날씨는 이렇게 바뀌었다. 과거의 상쾌한 겨울날씨로 되돌리려는 노력도 물론 진행돼야 하지만, 인간의 행동에 대한 결과로 나타나는 자연현상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방법도 함께 찾아야 할 때다. 또한 그 어느 나라보다 바쁘게 돌아가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한국인들이 마음 속에 이런 생각을 가져 보면 어떨까. Missourian 처럼 말이다.

“Enjoy the moment in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