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뮤직을 찾아서
얼마 전 한국 뮤지션들과 블루스 ‘성지 순례’를 다녀올 기회를 얻었답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국 블루스 밴드 ‘최항석과 부기몬스터’의 리더 항석 형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제가 미국에 있으니 국제블루스챌린지(International Blues Challenge)에 구경 오라고 말이죠. IBC는 미국 50개 주와 전세계 각지의 블루스맨 컨테스트이자 축제입니다. 작년엔 코로나19로 쉬었지만 올해는 5월 6~9일 미국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열렸습니다.
‘나 뚱뚱해’란 노래로 유명해진 항석 형은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 대표를 맡고 있답니다. 한국블루스소사이어티는 매년 미국 본부와 함께 한국 대표 블루스맨을 선발, 블루스 본고장으로 출전시킵니다. 올해는 밴드 부문에 리치맨과 그루브 나이스, 솔로 부문에는 하헌진이 출전했죠. 세계 각 블루스 소사이어티에서 예선전을 통과한 100곳 넘는 팀이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Beale Street)로 모입니다.
(1) ‘블루스의 성지’ 멤피스
빌 스트리트는 블루스 클럽들이 한데 모여 있는 오래된 음악 거리입니다. 20곳 안팎의 라이브 클럽에서 이틀 동안 참가자들이 예선전을 벌입니다. 저 같은 블루스 마니아들이 각각 개성이 다른 클럽들을 자유롭게 다니면서 공연을 즐깁니다. 꿈만 같은 시간이죠.
30대의 젊은 블루스 밴드 ‘리치맨과 그루브 나이스’(사진)는 전세계의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한국 밴드로는 처음으로 결승 Top5에 올랐답니다. 결승전은 멤피스의 전통 있는 극장 오르페움(Orpheum)에서 열렸죠. 리치맨 밴드는 리드미컬한 자작곡으로 ‘K블루스’ 위상을 드높였지만 결승 진출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1등을 하면 상금과 함께 버디 가이(buddy Guy) 등 세계적인 블루스맨과 함께 크루즈선에 마련된 꿈의 무대에 오를 수 있었을텐데 아쉬움을 삼켰죠.
멤피스는 흑인 중심의 소박한 도시입니다. 1968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 당했던 곳이죠. 블루스는 억압받고 존중받지 못하던 남부의 가난한 자들이 구슬픈 목소리로 절망과 희망을 부른 것이 그 시작입니다. 멤피스 특유의 흑인 감성은 블루스의 원조인 셈이죠. 이 곳에서 Stax 레코드사가 역할을 하면서 Stax라는 블루스 장르가 생겨났죠. 멤피스에 가면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스택스 아메리칸 소울 박물관’(Stax Museum of American Soul)입니다. 미국의 블루스가 미국 남부에서 어떻게 탄생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죠.
멤피스에서 미시시피 강을 따라 한시간 남짓 내려가면 크락스데일이란 곳이 나옵니다. 여기가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의 성지이자 요람입니다. 작고 아담하지만 예술인 마을입니다. 크락스데일에도 블루스 클럽이 제법 있답니다. 주로 블루스 대도시 시카고에서 활동하다가 귀향한 뮤지션들이 연주하곤 합니다.
(2) ‘재즈의 도시’ 뉴올리언즈
멤피스에서 5시간반 남쪽으로 내려가면 루이지나주의 뉴올리언즈가 나옵니다. 미국 재즈의 도시입니다. 공항 이름부터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시내 한가운데 루이 암스트롱 공원이 있죠. 재즈 트럼펫 연주자 겸 가수인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 뉴욕에서 대성하기 전인 1920년대 뉴올리언즈 클럽에서 잠시 공연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고향은 뉴올리언즈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해요. 남매 같은 루이 암스트롱과 엘라 피츠제럴드의 듀엣 명반을 들으면서 뉴올리언즈로 향하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뉴올리언즈의 유명한 음악 거리는 ‘버번스트리트’라고 합니다. 스팅 노래 가사에도 나오죠. 좁은 골목길인 이 곳엔 100년 전쯤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했을 듯한 조그마한 클럽들이 가득 모여있답니다. 멤피스의 빌스트리트보다 훨씬 아기자기하고 흘러나오는 음악도 다양합니다. 밖에서 클럽 안을 보면서 흥에 겨우면 안으로 들어가 맥주를 한병 시켜들고 비집고 자리를 잡습니다.
1km 정도 더 걸어가면 프렌치먼 스트리트가 나옵니다. 이 곳에는 버번스트리트의 재즈 클럽보다 더 큰 무대를 갖춘 클럽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답니다. 클럽마다 재즈 밴드의 스타일이 다릅니다. 제가 갔을 때 한 곳은 클라리넷 연주자가 리더였고, 다른 곳은 피아노 중심의 연주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떤 곳은 Bar와 공연장을 분리해 놓고 입장료를 받기도 합니다.
뉴올리언즈는 과거 프랑스 지배를 받았던 곳이죠. 다른 미국 도시와 달리 프랑스 문화가 곳곳에 녹아있어 색다른 느낌을 줍니다. 특히 음식 문화가 잘 발달돼 있죠. 잠발라야 검보 그리츠 등등 한국인 입맛과도 잘 맞는답니다.
(3) ‘컨트리 락의 도시’ 내슈빌
멤피스에서 3시간 거리에 있는 내슈빌은 컨트리 음악이 생겨난 음악 도시입니다. 멤피스가 흑인 음악의 중심지라면 내슈빌은 백인 음악의 중심지입니다. 컨트리뿐 아니라 락, 메탈 공연이 집중적으로 열립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라이브 클럽은 멤피스나 뉴올리언즈의 클럽과는 달리 큰 규모를 자랑합니다. 3~4층 건물이 통째로 라이브 클럽으로 운영되는 곳들도 많습니다. 라이브 클럽에는 사람으로 가득합니다. 한국의 나이트클럽을 연상케 합니다.
내슈빌은 테네시주에서 가장 큰 도시입니다. 미국 전역에서 알아주는 음악도시죠. 컨트리 포크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내슈빌로 향합니다. 이 지역 사람들의 컨트리, 락 음악 사랑은 클럽 아무데나 가도 쉽게 느낄 수 있답니다.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클럽을 찾는 중년 부부뿐 아니라 20대들도 적지 않답니다. 내슈빌 지역에서 가진 음악에 대한 영향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기타 브랜드의 대명사 깁슨도 내슈빌에 위치해 있죠. 유명 음반사들도 내슈빌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습니다. 내슈빌에 있는 컨트리뮤직 명예의 전당에 가면 밥 딜런, 엘비스 프레슬리 등 전설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4) 뉴욕, 시카고 여행을 한다면
미국 특유의 SOUL 음악을 스며든 도시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황홀한 경험이죠. 세계적인 뮤지션뿐만 아니라 실력 있는 인디 뮤지션들이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답니다. 저 같은 락, 블루스, 재즈 마니아들에겐 신세계입니다.
하지만 미국 연수 여행 상당수는 가족 여행이죠. 음악을 좋아하는 마니아라면 스스로를 위해 음악 여행을 추천하고 싶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그렇다면 뉴욕, 시카고 같은 대도시를 갔을 때 라이브 클럽은 한번 들러보길 추천합니다.
블루스, 컨트리, 재즈의 중심지에서 인정받은 뮤지션은 시카고, 뉴욕으로 떠납니다. 시카고, 뉴욕엔 준수한 레스토랑에서 훌륭한 라이브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답니다.
뉴욕의 유명 재즈바인 블루노트는 자녀들과 함께 갈 수 있답니다. 미리 티켓을 예매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공연 보다 한두시간 앞서 가서 좋은 자리를 맡은 뒤 가볍게 식사하면서 공연을 즐기는 것을 추천합니다. 재즈바 빌리지앳더뱅가드도 미리 티켓을 예매해야 합니다. 수십년째 공연장을 지키고 있는 재즈맨들의 훌륭한 연주를 느낄 수 있답니다. 뉴욕대 근처에는 맥주 한잔과 함께 블루스나 락을 즐길 수 있는 클럽이 즐비합니다.
시카고는 블루스와 재즈가 모두 유명합니다. 알 카포네가 단골이었다는 재즈 바 그린밀부터 버디 가이 레전드 등등 셀 수 없답니다. 1936년생인 버디 가이는 블루스 계의 살아있는 전설입니다.매년 1월에는 버디 가이가 자기 클럽에서 직접 공연을 하고 팬들과 소통합니다. 추운 1월 시카고 여행 비수기 때, 저는 시카고에 가서 버디 가이 공연(사진)을 보고 왔답니다. 86세 레전드의 공연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