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의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다시 한 번 ‘백신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는 얼마 전 본인의
페이스북에 “딸에게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며 사진을 올렸고, 이에 인터넷과 각
언론이 뜨겁게 반응했다. 갓 태어난 아이에게 예방접종을 하는 게 무슨 별 다른 일이라고 저렇게
호들갑인가라고 생각하고 넘기던 나는 워싱턴 포스트나 타임즈 지 등 유수 언론들이 이 소식과 논란
에 대해 보도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백신 접종이 자폐증이나 소아마비를 유발한다.’는 주장은 아주 극소수 무지한 사람들이 믿는 미신
이나 괴담 쯤으로 치부하고 있었는데, 실상은 조금 더 심각했다. 존스홉킨스대학 국제대학원인 SAIS
에서 현재 보건학 수업을 듣고 있는 나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보건 전문가들은 어떻게 진단하는지,
그리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물론, 한국에도
‘백신의 위험성’을 주장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접종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2009년에서 2010년
까지 신종 플루가 유행했을 당시, 백신이 나왔을 때 남들보다 빨리 접종을 하려는 사람들이 대다수
였지만, 일부에서는 백신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며 접종을 기피하거나, ‘의사 자녀들은 백신을 맞추
지 않는다’는 등의 근거 없는 괴담을 만들어 퍼트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알려졌고 대다수 일반 국민들은 본인과 자녀의 건강, 그리고 사회 전체의 면역을 위해서
백신 접종은 필수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이런 괴담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보건학 수업 <‘백신, 자폐 위험’ 논문 조작> 보도 시청 중
마침, 지난 3월 1일 강의 주제는 ‘의료 정보 악용’과 ‘특권층의 무지’였다. 지난 학기에 이어 두 학기
째 보건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백신 논쟁’이다. 미국에서의 ‘백신 논쟁’은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한 외과 의사가 발표한 논문에서 “MMR(홍역, 유행성 이하선염,
풍진예방) 백신이 어린이에게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주장한 것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이 논문은 어린이 12명을 대상으로 한 아주 작은 규모의 연구였고, 무엇보다 논문에 사용한
의료 기록 등을 조작한 것이 밝혀져 논문이 취소됐을 뿐 아니라 이 논문을 쓴 의사의 의사 면허까지
박탈됐다. 또, 이후로 계속해서 “백신접종은 자폐증과 무관하다”는 보다 과학적인 대규모 연구 결과
들이 연이어 발표됐다. 미국 법원도 2009년 MMR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최종 판결했지만
백신에 대한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자녀에게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부모들의 수는 여전했다.
미국의 MMR 접종률은 90%를 조금 넘기고 있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소속 라마예 교수님은 수업
시간에 “일부 연예인들이 자신의 아이가 MMR 백신을 맞아서 자폐증에 걸렸다고 주장하며 ‘백신접종
기피’에 가담하고, 이를 미디어를 이용해 알리면서 미국 일부 교육받은 백인 집단에서 아이에게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현상이 확산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당시 자신의 아이가 자폐증에 걸렸다고 주장
했던 연예인의 아이는 자폐증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그들의 거침없는 백신이 위험하다는 주장은
끝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백신 기피 현상은 단순히 일부 계층의 잘못된 행동 방식에 그친 것이 아
니라 미국 공중 보건에 큰 구멍을 냈고, 값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다.”며 지난해 홍역의 대유행에 대해
설명했다.
후진국 병으로 꼽히는 홍역이 미국 17개 주에서 유행했고 어린이를 중심으로 백 명이 넘는 환자가
발생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가난하고 교육 수준이 낮은 층에서 홍역이 유행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다. 경제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으며,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자연 상태의 것’으로 줘야 한다고 강조
해 ‘오가닉 제품’만 사용하고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이른바 ‘그래놀라 맘’이 집중된 지역이 홍역 유행
의 온상이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콜로라도 등 미 전역에서 12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해
미국보건당국을 긴장하게 했다.
지난 2000년에 홍역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공식 발표하기도 했던 선진국 미국에서 백신만 맞았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을 홍역이 대규모로 발생한 것이다. 수십년 동안 백신으로 인한 위험성보다 얻을
수 있는 질병 예방 효과가 훨씬 크다는 과학적 근거와 논문, 전문가 집단의 설득보다 연예인 몇 명
의 ‘백신 접종 뒤에 아이가 이상하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일부 부모에게는 더욱 설득력이 있었던 것
이다. 보통 MMR백신은 12~15개월에 한 차례, 4~6세에 또 한 차례 접종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공중 면역학 측면에서 92~94%의 집단면역이 유지돼야 지난 번 사태와 같은 집단 발병을 막을 수 있다
고 보고 있는데, 현재 미국의 MMR 예방접종률은 91%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00년에 홍역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발표하기도 했던 미국, 15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백신 논란’은 이제 정치권에서도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권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홍역 백신이 안전하다는 것은 진실이라며 백신 접종을 옹호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TV에 출연해, “부모가 자녀에게 백신을 맞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반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 경선주자는 지난해 9월 공화당 토론에서 “지인의 아이가 백신 접종을 하고 고열에 시달리다
가 자폐증에 걸렸다”고 말했고, 짧은 시간에 아기가 너무 많은 백신을 맞으면 자폐증에 걸린다는 여러
통계자료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의학계는 백신 접종은 100% 안전하다며 정치인들이 의학계의 의견을 존중하고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은 삼가 줄 것을 당부했다. 일부 소득 수준과 교육 수준이 높은 특권층의 무지는 후
진국형 전염병의 유행뿐 아니라 임신, 출산과 관련한 ‘모성 사망률 상승’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
전 세계적으로 모성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 추세이다. 한국의 2013년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 당 11.5명
으로 1985년 175명이던 것과 비교하면 급감했다. 그런데 세계 최고의 의료, 위생 수준을 자랑하는 미
국의 모성 사망률이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모성 사망률과 비교해
서도 훨씬 높은 숫자를 보이고 있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의 자료를 보면 2012년을 기준으로 미국의 임신과 출산 관련 모성 사망률은
10만 명 당 16명에 이른다. 심지어 최근 몇 년 추세를 보면 16명에서 18명에 이른다.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의 라마예 교수는 이에 대해 “역시 일부 소득 수준이 높은 백인 집단에서 벌어진 것이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고, 의사나 조산사 같은 전문가의 도움 없이 집에서 출산하는 것이 ‘자연주의
출산’이라며 유행처럼 번져나갔고, 이 같은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고 분석했다.
출처: 미국질병예방통제센터(CDC)
의료 정보는 왜곡돼 전달될 경우에 그 결과가 이처럼 치명적이다. 정보에 대한 접근이 너무도 쉬운
요즘, 과학적인 근거가 충분하고 일반인들에게 꼭 필요한 의료 정보를 어떻게 오해 없이 전달할 것
인지 고민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