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cky

미국 워싱턴DC 조시타운대학교에서 2010년 7월부터 연수중인 동아일보 이은우 기자 입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이 곳에 온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시간이 빠른 건 마찬가지네요. 꼼꼼히 준비하고, 현지 정보를 충분히 알아둬야 귀한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에서 미국 생활의 ‘tricky’ 측면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전 그대로 ‘교묘한, 사기꾼 같은 데가 있는’ 부분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보이스 피싱
우선 ‘voice fishing’에 대해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현지 휴대폰을 개설하면, 그 직후부터 보이스피싱에 시달리게 됩니다.
신규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아내서 보내는 것인지, 아니면 무작위로 보내는 건지는 정확치 않습니다.
다만, 이 곳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이 한국 못지않게 보이스피싱이 많습니다.
저도 휴대폰을 만들자마자 보이스피싱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고 ‘important information’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긴장하게 됩니다.
이 곳에서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탓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영어를 모르면 차라리 무시하겠는데, 웬만큼 들리니 더 문제입니다.
‘fantastic news’를 전하게 돼서 기쁘다며 시작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대충 보이스피싱이라고 느끼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뭔가 찜찜함은 남게 됩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다 이 곳 정보에 어둡고, 이방인의 막연한 피해의식도 있는 까닭이죠.
전화를 안받거나 끊어버리면, 음성 메시지를 남겨두기도 합니다. 음성 메시지에서 또’very important information’ ‘problem’ ‘fantastic news’ 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게다가 상대가 나의 이름까지 알고 있으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보이스피싱과는 조금 다른데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되면서, 귀찮기만 하고, 때로는 헛돈을 써야하는 사례도 생기니 주의해야 합니다.

보이스 피싱을 피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죠.
우선 ‘800-***-****’ 전화는 일단 의심해야 합니다. 본인이 가입한 자동차 보험회사(GEICO 같은)나 전기회사, 수도회사 등에서도 800으로 시작되는 번호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웬만해서는 이런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경우는 드물고, 이 전화를 받지 않았더라도 중요한 내용이라면 이메일이나 우편으로 알려오기 때문에 ‘800-’ 전화는 무시해도 괜찮습니다.
다음으로 녹음된 목소리가 자동으로 나오면 보이스피싱으로 보고 그냥 끊으셔도 좋습니다. 발신번호가 800으로 시작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음성메시지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상대방이 남기는 데야 어쩔 도리가 없죠. 보통 보이스피싱 전화가 오고 끊어버리면 바로 음성메시지가 휴대폰으로 날아옵니다. 이 때는 그냥 지우면 됩니다. 그냥 미국에서 새로 휴대폰 개통한 통과 의례로 생각하고 조금 귀찮음을 감수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찜찜해하지 마세요. 전화로 중요한 정보를 듣지 못해서 낭패를 당했다는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당첨? 공짜는 없다.
DC에서 가까운 포토맥 밀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포토맥 밀 아웃렛 외에도 IKEA, COSTCO, JCPENNY 등 대형 매장이 많은 곳이죠.
최근 한국에서 지인이 방문해 이 곳에 갔었습니다. 쇼핑을 끝내고 돌아오려는데 자동차 한 대를 전시해놓고 진행 중인 경품 행사를 보게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응모를 하길래 저도 이름과 주소를 적은 카드를 응모함에 넣었죠.
그런데 며칠 뒤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얼마 전에 포토맥 밀에서 경품 행사에 참여한 ***씨 아니냐, 당첨이 됐다”는 얘기였습니다. 제가 원래 요행수가 없는 사람이라 좀 듣다 그냥 끊었답니다.
그런데 녹음된 전화도 아니고, 제 이름을 알고 있고, 제가 응모를 했던 것도 사실이라 찜찜하기도 했습니다.(결코 요행을 기대하진 않았답니다.^^)
다음 날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5만 달러 상당의 자동차와 현금 2만5000 달러 중에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여행권, 주유권, 숙박권 등에 대해 계속 얘기를 하더군요.
의심이 많은 저는 상대방에게 전화번호와 이름을 물어봤습니다.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시도라면 자신의 이름과 주소, 전화번호 등은 알려주지 않을 듯해서였죠.
그런데 다 알려주면서 방문해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다시 캐물으니까 결론은? 당첨은 맞지만 최종 당첨은 아니랍니다.
이를 테면 1차 당첨이 됐고, 최종 당첨자는 내년 3월에 뽑는다는 거죠.
요약하자면 일단 1차 당첨자에게 각종 선물을 나눠줄 것이고, 그 중에서 다시 뽑아서(몇 차까지 추첨이 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5만 달러 상당의 자동차 또는 현금 2만5000달러를 준다는 겁니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일종의 마케팅이랍니다. 여행권, 주유권, 숙박권 등 각종 선물이라는 것도 공짜가 아니라는 거죠.
넓은 의미에서 이 것도 보이스피싱의 연장이며 솔깃하지만 귀찮을 따름이라는 판단입니다.

◆할인 vs 아웃렛·인터넷
이따금 우편함을 들여다보면 온갖 할인 쿠폰과 세일 우편물로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잘 이용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는 쿠폰도 있습니다만 저의 경험으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골프 갤럭시에서 50달러 이상 구매하면 10달러, 250달러 이상 구매하면 50달러 할인해주는 쿠폰을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해당 제품들을 인터넷(이베이 등)에서 찾아보니 쿠폰으로 할인한 가격보다 40% 이상 저렴했습니다.
한 동안 우편함에 침대 할인 쿠폰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할인 쿠폰을 들고 해당 매장을 방문했었죠. 사려고 했던 침대가 생각했던 가격보다는 다소 비싸 그냥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 IKEA에서 거의 똑같은 침대를 발견했습니다. 할인 쿠폰으로 그 매장에서 샀을 때보다 IKEA의 판매가격이 딱 절반이었습니다.
IKEA에서 사면 배달이 안 되고(배달비가 무지 비싸죠), 조립도 직접 해야 합니다. 어쨌든 저는 IKEA에서 침대를 사서 잘 쓰고 있습니다.

위의 사례와 정반대인 경우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할인(?)이죠. DC에서 자동차로 1시간 30분 거리에 셰넌도어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산의 능선을 잇는 240KM 남짓 산정도로가 국립공원을 가로지르게 됩니다. 자동차 1대 입장료가 15달러인데 30달러를 내면 1년 동안 입장할 수 있습니다. 1년짜리 입장권을 사고 두 번 가면 본전은 되는 셈이죠. 저는 1년 입장권을 사서 이미 3번 다녀왔고 겨울, 봄에도 갈 작정입니다.

연수를 떠나기 전 회사의 모 국장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연수 기간 동안 마른 낙엽을 태우듯이 돈을 써라”는 말씀. 언론계에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얘기라네요. 워낙 소중한 시간이니까 다소 무리가 되더라도 충분히 경험하고 오라는 뜻이겠지요.
이 말씀 새기고 열심히 실천하다보니 심히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