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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싸기부터 행정 치트키까지, 파리 정착 ‘HOW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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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 대와 삼십 대 후반은 달랐다: 짐 싸기 필승 전략

필자는 십 대 시절 유럽에서 수년을 체류한 경험이 있다. 그 기억만 믿고 유럽의 석회수를 우습게 봤다가 큰코다쳤다. 성장기 신체와 마흔을 앞둔 몸은 엄연히 달랐다. 입국 한 달 만에 머리카락이 무섭게 빠지는 경험을 한 뒤에야 한국에서 필터를 공수해 설치했다. 수질에 예민하다면 샤워·세면기 필터는 생존 짐 싸기 0순위다.

주방용품 중엔 음식물 거름망이 의외의 필수품이다. 프랑스는 음식물 쓰레기 분리수거가 의무는 아니지만, 양념 찌꺼기가 많은 한국 요리 특성상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담아두면 금세 악취가 진동한다. 한국식으로 음식물을 걸러내는 수챗구멍이 설치된 싱크대는 없다. 그대로 들이부었다가는 배관이 막히는 사태가 발생한다. 미국식 분쇄기도 드문 환경이라, 거름망에 부어 물기를 말린 뒤 처리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선물용으로는 한국 화장품을 강력히 추천한다. 프랑스에서 K-뷰티는 가성비를 넘어 ‘깨끗한 피부와 철저한 위생’의 상징이다. 특히 짐 싸기도 용이한 마스크팩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최고의 선물이다. LVMH그룹 계열의 유명 화장품 전문매장인 세포라부터 시작해서 라파예트, 봉마쉐 등 대형 백화점, 동네 마트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별도의 코너가 있을 정도로 2026년 현재 파리에서 한국 화장품은 대세가 맞다. 다만 아직은 정작 한국인은 생소한 외국 태생의, 무늬만 한국 화장품인 경우가 많고 진짜 한국산은 가격이 매우 높게 책정돼 있다.

파리 고급백화점 Bon Marche 내부 한국 화장품 코너

상비약은 각자의 사정에 맞게 꼼꼼히 챙겨야 한다. 공공의료 국가 특성상 현지에서 병원 진료 한 번 잡으려면 과정이 길고 복잡하다. 다행히 처방전 없이 약국(Pharmacie)에서 쉽게 살 수 있는 약도 많이 있다. 타이레놀 등 해열진통제의 경우 유럽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 대신 ‘파라세타몰(Paracetamol)’이라는 성분명을 사용하니 당황하지 말자.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성분이다. 프랑스의 경우 국민 약 ‘돌리프란(Doliprane)’을 사면 된다. 감기약으로는 미국의 데이퀼/나이퀼 격인 ‘페르벡스(Fervex)’를 추천한다. 효과가 아주 좋다.

파리 시내 약국

반면 후시딘 같은 상처 연고류는 한국에서 반드시 챙겨와야 한다. 프랑스에선 항생제 성분이 포함된 연고를 사려면 의사 처방전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흉터를 방지하는 메디폼 같은 재생 밴드류도 한국산이 단연 최고다. 다만 비타민이나 유산균 등 영양제류는 제약 강국 프랑스답게 현지 제품이 저렴하고 훌륭하니 짐을 늘릴 필요가 없다.

식재료의 경우 파리 시내에 한인 마트가 여러 곳 있어 수급이 원활하지만, 국산 고춧가루와 참·들기름은 챙겨오길 권한다. 여기서 중요한 팁 하나. 현지 마트에서 파는 한국 라면류는 대부분 돼지고기 성분이 빠진 할랄 제품이다. 오리지널 짜파게티와 신라면의 맛이 중요하다면 기억하자.

왼쪽이 현지에서 유통되는 할랄 인증 라면, 오른쪽이 한국에서 공수한 제품이다.

기타 개인적 추천 아이템으로는 튼튼한 한국산 물티슈, 나무 면봉, 그리고 방충망이 있다. 여름철 건조한 기후의 프랑스는 벌레가 적은 편이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깨끗한 전망을 포기하더라도 방충망을 설치하면 평온한 수면을 보장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방충을 위해 에펠탑 전망을 포기한 점은 마음이 조금 쓰리지만 후회는 없다.

(왼쪽) 형태가 제각각인 오스만 건물 창문들. (오른쪽) 가내 수공업으로 오리고 붙여 설치한 방충망 view

2. 행정 지옥, ‘뫼비우스의 띠’를 끊는 치트키

국적불문 외국인의 프랑스 정착기에는 유명한 밈(meme)들이 있다. 휴대전화 가입엔 은행 계좌가 필요하고, 계좌를 열려면 부동산 계약서가 필요한데, 정작 집을 계약하려면 전화번호와 계좌가 있어야 한다는 무한루프다. 이 고리를 끊어낼 필자의 ‘치트키’를 공개한다.

① 통신: 한국에서 eSIM으로 번호부터 확보하라
필자는 한국에서 프랑스 최대 통신사 Orange의 eSIM을 한 달 치 미리 구입해 왔다. 반드시 현지 전화번호가 포함된 상품이어야 한다. 번호가 있어야 체류 등록과 계좌 개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한 달 뒤에는 약정 없이 선불 충전 방식으로 회선을 유지하자. 무엇이든 해지 절차만 서너 달씩 걸리는 프랑스 특성상, 단기 연수자는 계약을 최소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② 체류: 입국 후 3개월 이내 온라인 등록 필수
비자를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입국 후 3개월 이내에 온라인으로 체류증을 활성화(Validation)해야 한다. 이 절차를 놓치면 비자가 있어도 불법 체류 신분이 되어 재입국이 불가능해진다. 유럽 내 다른 국가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할 숙제다. 이후 비자 종류에 따라 이민국(OFII)의 신체검사와 시민 교육 이수 등이 이어진다. 신분증 개념인 실물 체류증은 1년 이상 거주자에게만 발급된다.

③ 금융: 전통 은행 대신 인터넷은행 사용
BNP 파리바 같은 시중 은행은 개설과 해지 절차가 악명 높다. 대신 리투아니아 기반의 인터넷 은행인 레볼루트(Revolut)를 추천한다. 한국처럼 송금은 즉각 이뤄지고, 계좌 유지 수수료도 없다. 시중 은행의 경우 동 은행 계좌 간 이체조차도 ‘미니멈’ 24시간이 소요된다. 상상이나 가능한가. 한국 송금 역시 환전 앱을 함께 활용하면 1시간 이내에 처리된다. 무엇보다 시중 은행처럼 부동산 계약서를 요구하지 않고 현지 주소지만 입력하면 계좌가 열린다. 보증금과 월세를 즉시 이체해야 열쇠를 받을 수 있는 부동산 계약 구조상, 빠른 계좌 개설은 필수다. 인터넷 은행의 경우 현금 입출금 제한이 유일한 단점이지만, 카드 결제가 보편화된 파리 생활에선 큰 불편함이 없다.

④ 파리정착 꿀팁최최종_txt
위와 같은 순서로 현지 전화번호와 은행 계좌, 부동산 계약까지 마치면 전기와 인터넷 계약 등은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 가능하다. 전기 계약은 국영 전기회사인 EDF의 경우 외국인을 위한 영어 상담 라인이 개설돼 있어 언어 장벽이 낮다. 인터넷 계약은 온라인 신청보다 집 근처에 있는 통신사 대리점을 직접 방문하는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그래야 불시의 문제가 생겼을 때 수시로 쫓아가 닦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대표번호로 전화해 전광석화와 같은 서비스 기사님의 방문을 기대했다간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프랑스 행정은 들어올 때보다 나갈 때가 더 무섭다. 각종 서비스 계약을 해지할 때는 반드시 서면(등기우편)으로, 통상 한 달 전에는 신청해야 하니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