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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 테이블을 떠나다
워싱턴 현지 진단으로 본 한반도 안보 공백과 한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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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협상 테이블을 떠나다
- 워싱턴 현지 진단으로 본 한반도 안보 공백과 한국의 선택
한국일보 김현빈 연수기관: 조지워싱턴대

1. 도입: 한미 양국의 무능과 우선순위에서 지워진 북핵

한반도 평화적 관점에서 보자면 2025년 가을 경주 APEC 정상회의와 앞서 워싱턴 DC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동이 남긴 성적표는 참담했다. 미국도 대한민국도 북한 문제 해결에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만 명백히 입증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동 문제, 국내 인플레이션 등 국내외 현안을 수습하느라 북한 문제에 투입할 역량이 전무했다. 한국 역시 정권 출범 이후 정상 간 뚜렷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2025년 여름부터 1년 간 워싱턴DC에서 지켜본 바, 한반도 이슈는 워싱턴 정가의 우선순위에서 완전히 지워진 분위기다.

한국 언론도 이러한 정체를 고스란히 분석했다. 《코리아타임스》는 “교착 상태인 관세 협상과 미중 경쟁 틈바구니에서 한국의 실용 외교가 딜레마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구체적인 공동성명조차 없이 끝난 것은 “기본적인 정책 방향도 합의하기 어려웠다”는 증거다. 양국 정부가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북한은 핵물질 생산 시설을 풀가동하며 탄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산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 시계가 완전히 멈춰 서버린 현실 속에서, 관계 개선이 요원한 본질적 이유와 향후 닥쳐올 실질적 위협을 워싱턴 발 생생한 육성을 통해 기록하고자 한다. 

2. 현장 증언: ‘38노스’가 진단한 비핵화 환상의 종언과 북한의 대미 노선 전환

미국 워싱턴DC 중심부에 위치한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북한 전문 연구조직 ‘38노스’(38 North) 핵심 인사들은 인터뷰에서 난 30년 동안 미국이 펼쳐 온 대북 정책이 왜 실패했는지, 그리고 북한의 태도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바뀌었는지를 짚었다.

조엘 위트 스팀슨 센터 수석연구원

38노스 설립자인 조엘 위트(Joel Wit) 스팀슨 센터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미국 정부가 고수해 온 ‘북한의 핵을 없애겠다는 생각과 대화 방식’이 처음부터 잘못되었다고 분석했다. 위트 연구원은 “일반 대중이나 심지어 전문가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북핵 문제에 대한 서사(narrative)는 완전히 틀렸다”며 “북한은 지난 30년 동안 관여에 진지했다. 하지만 결국 미국이 심각한 실수를 저지르며 기회를 날려버린 것입니다”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과거와 똑같은 대화 제안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위트 연구원은 “모두가 ‘이제 비핵화를 고집하지 않고 군비 통제를 하겠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가 항상 해오던 것”이라며 “비행 테스트 금지, 동결, 긴장 완화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북한은 절대 그런 것들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합의되지 않을 과거의 똑같은 관여 제안과 로드맵을 되풀이하면서 ‘그래도 시도해 볼 만하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 수립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북한 내부 정세를 분석하는 이민영 38노스 선임연구원 역시 김정은 정권이 미국과 대화하려는 마음을 완전히 접은 것 같다고 진단했다. 또 그런 북한의 방향성을 돌이킬 수 있는 동력이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이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2022년 9월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비핵화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30년 넘게 지탱해 온 대미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었다”며 “북한은 더 이상 미국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이 반응하지 않는 것은 북한의 급변한 처지와 자신감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9차 당대회 보고를 보면 엄청난 자신감이 느껴진다. 김정은은 다극 세계를 건설하는 움직임의 중앙에 북한이 서 있다고 선언했다”며 “본인을 굉장한 ‘글로벌 액터(Global Actor)’로 부상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글로벌 정세 속에서 러시아와 손을 잡은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출하며 국방공업과 군수공업이 다시 살아나고 현대화된 것 등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3. 북미·남북 관계 개선이 요원한 근본적 이유

북미 및 남북 관계의 개선이 전례 없이 요원한 이유는 한미 양국이 북핵을 해결할 실효성 있는 지렛대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당겼던 대북 제재는 북·중·러 삼각 밀착의 가속화로 인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특히 전문가들은 러 동맹에 주목했다. 러시아에 대한 무기 수출은 북한 군수산업의 대대적인 현대화를 부르고 있으며, 시진핑 중국 주석의 평양 방문에서 ‘비핵화’라는 단어가 전면 실종된 것은 중국이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사실상 묵인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브루스 클링너(Bruce Klingner) 맨스필드 재단 선임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러시아로부터의 지원 증대, 사이버 범죄 활동, 중국과의 무역 회복 등으로 인해 오히려 경제 상황이 개선되었다. 클링너 연구원은 이로 인해 “북한의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절박함이 줄어들었다”고 진단했으며, 이 삼각 협력 강화가 북한이 미국에 대해 더 강한 입장을 취하게 만드는 근본 배경이라고 짚었다.

한반도 이슈에서 한국은 완벽히 고립됐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협상의 물꼬를 트겠다는 기조를 유지하지만, 북한은 남한을 철저히 배제하는 ‘배남(排南)’ 전략으로 선회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이재명 정부는 북한 중국에 대한 회의론자들과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원하는 온건파 사이에 분열돼 있다”고 진단했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 회장은 워싱턴DC에서 열린 포럼에서 “통일 경쟁이라는 남북 관계의 본질적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며 “미국의 안보 공약 약화와 트럼프 행정부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한국의 안보 불안이 증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4. 한반도 리스크 증가 : 대만 연루, 자체 핵무장 딜레마

가장 우려되는 대목으로 전문가들은 북한의 오판 가능성과, 미국의 거래주의가 불러올 동맹의 파열음을 꼽았다. 워싱턴 현지에서 참석한 조지워싱턴대 한국학연구소(GWIKS) 주최의 두 차례 주요 포럼에서 패널들의 진단은 한국이 맞닥뜨린 안보 위기의 실체를 짚는 데 모아졌다.

① 방위비 폭탄과 대만 연루의 이중고

브루스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은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GDP 5%까지 증액하라고 요구하고, 주한미군 분담금을 연간 100억 달러로 인상하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미국의 구체적인 안보 요구 사항을 전했다. 또한 미국이 동맹 현대화를 명분으로 미국의 초점을 대만 방어로 재편하고 한국의 역할을 한국 방어로 국한하려는 논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봤다. 작전통제권(OPCON) 전환 역시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에서의 미국의 책임을 줄이는 방안으로 간주하여 조건을 완화해 조기에 넘겨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해 같은 포럼의 연사로 나선 손한별 국방대학교 교수는 “한국은 지금 전략적 전환점에 서 있다. 대만 위기는 단순히 대만에 관한 것이 아니다”고 경고했다. 

② 톱다운 회담과 평화 선언의 안보 공백 리스크

조엘 위트 연구원과 이민영 연구원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 가능성 자체를 낮게 보면서도, 정치적 이익에 기반한 섣부른 타협을 우려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김정은 위원장이 평화 선언을 제안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에게 노벨 평화상과 같은 정치적 이득을 줄 수 있지만, 실제적인 위협 감소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이러한 평화 선언이 “실제적인 위협 감소 없이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촉발하여 억제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의 경제 상황 개선도 악재로 꼽았다. 특히 과거와 달리 북한의 군사 능력이 강화되고 있고, 북한이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치르는 러시아와 결속하는 과정에서 러시아로부터의 지원 증대, 사이버 범죄 활동, 중국과의 무역 회복 등으로 경제 상황이 비약적으로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미국과의 협상 자체에 대한 절박함이 줄었다는 얘기다. 

③ 확장억제 약화와 자체 핵 능력 확보의 안보 딜레마

북한의 핵 위협 증가와 미국의 안보 공약 약화라는 현실 속에서 한국 내 자체 안보 노선에 대한 논쟁도 화두다. 전봉근 회장은 “북한이 50~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핵무기 생산을 늘리고 있는 현실”을 짚으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SSN) 획득을 통해 억제력을 강화해야 하고, 에너지 안보를 위해 농축과 재처리 등 한국의 핵연료 주기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로버트 리트왁(Robert Litwak) 조지워싱턴대학교(GWU) 연구 교수 역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갖춘 것이 확장 억제의 게임 체인저”라며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관심은 위험에 대응하려는 ‘헤징(hedging·위험 분산)’ 전략의 일부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러한 핵 능력 강화 움직임은 심각한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샤론 스파슨(Sharon Spason) GWU 연구 교수는 미국의 무역 안보 연계 접근 방식을 지적하며, 한미 원자력 협정 재협상을 통한 핵연료 농축 및 재처리 허용이 “한국의 산업 안보에는 중요하지만, 잠재적으로 불안정성을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스파슨 교수는 농축 및 재처리 능력이 “한국에 잠재적인 핵무기 개발 역량을 부여하는 것”으로 비쳐져 “중국뿐만 아니라 북한의 위협을 더욱 고조시킬 수 있다”며 지역 안보에 초래될 안보 딜레마를 경고했다.

5. 결론: 관성의 파기와 경제안보 기반의 대체 불가능한 자립 전략

한국은 더 이상 실효성 없는 비핵화 로드맵에 매달리거나, 동맹의 선의에 안보를 의존하는 수동적 태도를 전면 폐기해야 한다.

첫째, 비핵화는 더 이상 현실에서 작동 불능이 됐다는 점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베네수엘라와 이란에게 보여준 태도로 인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둘째, 안보 딜레마를 낳는 군사적 핵무장 대신 ‘원전 및 첨단 산업 공급망 동맹’ 중심의 경제안보 체제로 동맹의 성격을 격상해야 한다. 제인 나카노(Jane Nakano) CSIS 선임연구원의 분석대로, 최근 AI 및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전 세계적으로 안정적인 저탄소 전력 확보가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나카노 연구원은 “미국과 한국 모두 핵 엔지니어링 역량과 칩 제조 능력을 보유하고 있어 공급망 협력이 국가 경제 안보에 중요하다”고 짚었다. ‘핵 코러스(nuclear chorus)’, 즉 미국과 한국이 기술, 제조, 프로젝트 관리를 통합 패키지로 묶어 산업·공급망·비확산 체제 전반에서 협력하는 파트너십을 완성해야 한다는 조언도 눈 여겨 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