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워싱턴에서 개최된 한국과 미국 양국 정상간 회담 이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양국간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한·미 FTA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섬에 따라 재협상을 둘러싼 양국간 치열한 기싸움이 예상된다. 한·미 FTA 재협상시 2006년 FTA초기 협상 당시 미국 정부가 요구한 전문의약품의 소비자 광고(Direct to Consumer Advertising,DTCA) 허용 여부가 또 다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글로벌 제약사가 많은 미국측은 당시 우리측과의 의약품협상에서 전문의약품의 광고를 허용할 것을 요구했으나 막판 협의과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협상의 개시된다면 글로벌 제약사들의 요구가 높은 전문의약품 광고 허용여부가 다시 협상테이블에 올라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관측이다. 전문의약품의 광고룰 둘러싼 논란은 1985년 방송광고를 전격 허용한 미국에서도 수십여년간 이어지고 있다. 의약품 광고가 소비자의 의약품에 대한 정보요구를 충족시킨다는 소비자 편익증대 주장과 글로벌 제약사들의 주요 판매촉진 수단일 뿐 아니라 오히려 소비자의 의약품 오남용을 낳을 수 있다는 반대측의 주장이 미국에서도 팽팽히 맞서는 현실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제약사가 광고에 1달러를 쓸때마다 매출은 4달러 20센트가 늘어난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로 소비자 직접 광고는 글로벌 제약사의 마케팅에 핵심 요소다. 실제 미국 시청자들에게 전문의약품 광고는 자동차 광고 못지 않게 빈번하게 접하는 내용 중 하나로 꼽힌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하루 평균 약 9개의 의약품 광고에 노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자 역시 미국 연수 중 하루종일 만성질환에서 폐암 등의 중증질환 전문의약품 광고까지 매일 수십개의 의약품 광고에 노출된 바 있다.
미국에서 전문의약품의 소비자 직접광고가 허용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옹호론과 부정적인 비판 등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향후 한미 FTA 재협상과정에서 대두될 이슈의 대응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출처 Space Coast Daily
미국은 18세기부터 지역 신문에 의약품 광고를 시작했으며 19세에는 물에 알콜성분이나 아편을 섞은 소위 ‘특허 약물’(Patent Medicine)이 봇물을 이뤘다. 이들 의약품 중 상당수는 과장 허위과장 광고로 당시 많은 논란을 빚었다. 일례로 1876년 리디아 핀크험 베지터블 컴파운드는 만성부인병부터 악성궤양까지 고칠 수 있다는 만병통치약 성격의 의약품을 신문 등의 지면에 대대적으로 광고하기도 했다. 20세기 들어 의약품은 미국의약품협회에 등재된 전문의약품(Ethical drug)와 아편 또는 알콜성분과 물을 혼합한 기존의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됐으며 이들 일반의약품은 여전히 아무런 규제없이 광고가 허용됐다. 20세기 초반 일반의약품 광고는 전체 신문 광고 수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때까지는 전문의약품도 처방전은 있지만 의약품 구입시 반드시에는 처방전 없이도 구매가 가능한 구조였다.
1905년 미국의약품협회에서는 전문의약품 광고기준을 마련하고 소비자에 대한 직접적인 광고를 제한하고 나섰다. 이에 따라 제약사들은 전문의약품의 대중광고보다 의사에 대한 프로모션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1906년 6월 연방정부차원의 첫 의약품 입벙인 ‘순수식품 및 의약품 법안’이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 시행됐으나 이 역시 제품의 라벨에 성분 등을 명확히 명기할 것을 규제하는 것이지 광고 자체에 대한 규제는 아니었다.
1938년 식품의약국(FDA)이 의약품 안전 관리에 대한 권한을 갖게 되면서 체계적인 규제정책이 나오기 시작했다. FDA는 1962년에는 통상 무역부서로부터 의약품 광고에 규제 감독 권한까지 넘겨받았다. 이 때부터 의약품 안전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이후 의약품 관련 판촉 활동은 전적으로 의사 대상으로만 이뤄졌다.
1980년대 들어 대형 의약품들이 출현하면서 제약사들의 소비자 직접광고(DTC) 욕구가 높아졌다. 이들은 DTCA가 질환의 진단과 치료에 대한 지식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이를 통해 치료를 받지 않고 있는 잠재환자들이 의사를 찾게 만들어 만성질환의 발병율을 낮춘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소비자의 선택권과 자율결정을 앞세운 이같은 논리는 신자유주의를 정책기조로 내세운 레이건 정부내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에 힘입어 1985년부터 제약사의 DTC의 광고활동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다만 당시에는 엄격한 기준준수(효과는 물론 부작용, 금기 등 제품 설명서에 담긴 정보를 모두 전달해야 한다는)와 FDA의 사전 검토가 요구되었다. 이후 제약사들은 방대한 의학정보를 모두 설명하려면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들 뿐 아니라 TV나 라디오 광고에 그 많은 내용들을 담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결국 논란 끝에 1997년 FDA의 새로운 지침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제품설명서에 인쇄되어 있는 구체적인 정보들을 모두 나타내지 않고도 광고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신에 다른 경로(웹 사이트,무료 전화, 의사, 약사 등)를 통해 추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전문의약품의 전면적 광고 허용 특히 방송광고 허용 이후 글로벌 제약사은 극적인 매출증가를 기록했다. DTC광고 허용 후 연 매출 1조원 이상의 블록버스터 의약품이 쏟아졌으며 전체 의약품에서 이들 초대형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30~40%선까지 늘었다. 이와 더불어 제약사의 판촉비용도 급증했다.1996~2000년 글로벌 제약사의 판촉비용은 91억달러에서 155억달러로 71% 늘었다. 특히 이 기간 DTC 광고비용이 8억달러에서 25억달러로 216% 증가했다. 광고 채널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일었다. 광고 허용 직전인 1997년 DTC 광고 매체에서 27%를 차지했던 의약품방송 광고비중은 2000년에는 64%까지 늘었다. 1990년 600억 달러 규모였던 미국 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0년 2136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으며 2015년에는 3500억 달러 규모로 급증했다.
출처 Pharma marketing
DTCA 광고효능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도 미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DTC 광고 옹호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의 상호 모순적인 주장들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옹호론자들은 무엇보다도 교육 효과를 강조한다.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치료 결정 과정에서 환자의 자율성을 촉진하고 의사와 환자 관계를 증진시킬 뿐 아니라,그동안 진단·치료를 받지 않았던 환자들이 치료를 받게 하고 처방 약물에 대한환자의 순응도를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제약 회사들 사이의 경쟁을 유도함으로써 제품 가격하락 효능까지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이애미대학 크리스탈 아담스 교수는 지난해 11월 ‘Jou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JAMA)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처방의약품 광고를 통해 알려진 의약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도 증진은 환자가 본인의 질병관련한 의사결정에서 보다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밝혔다.미국 최대 제약사인 화이자 역시 지난해 3월 발표한 ‘fact Sheet’에서 “환자들의 DTC 광고를 통해 질병과 질환치료에 대한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아담 S 로버트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부회장 역시 “소비자들이 DTC를 통해 얻은 정보를 담당 의사와 상의하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질병관리에 맞는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에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며 옹호론을 뒷받침했다.
2006년 미국 식품의약품청(FDA)이 6000명 대상 연구 진행한 결과, 환자의 48.6%가 의사를 면담하기 이전에 광고를 통해 의약품과 효능과 부작용을 우선 확인하고 53%는 전문의약품 광고 접한 후 의사와의 소통이 원활해졌다고 응답하는 등 광고 노출이 소비자 만족도 향상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면 DTC 광고 반대론자들은 소비자가 광고 내용의 질을 판단할 전문성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이러한 광고들이 위험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의사·환자 관계를 오히려 해치는 부작용과 의약품의 오남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마케팅비용이 결과적으로 의약품 가격에 전가된다는 것 역시 DTC반대론자들의 주요 지적 사항이다. 로열 뉴질랜드 대학은 지난 2월 성명을 통해 “DTCA는 왜곡된 정보와 부적절한 의약품의 소비를 유발할 뿐 아니라 값비싼 진료를 유도하는 등 공공의 이익에 심각한 해악을 야기하고 있다”며 반대입장을 밝혔다.뉴질랜드는 미국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전문의약품의 전문의약품 광고를 전면 허용하고 있는 국가다.전미의약품협회(AMA)는 2015년 “전문의약품 광고가 소비자와 환자간 갈등을 유발할 뿐 아니라 마케팅 비용으로 인한 의약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규제 필요성을 강조했다.반대론자들은 DTCA 광고에서 질병 관리와 관계된 대안적 치료법 (운동이나 식이요법 등)을 언급보다 의약품의 효능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가격정보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경쟁을 통한 가격하락 유도를 주장하는 옹호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반박하고 있다.
출처 Evaluate Pharma
전문의약품의 광고허용은 국가 뿐 아니라 이익집단간 이해가 상충하는 뜨거운 이슈다. 한미FTA재협상에서 미국측이 전문의약품의 전면광고 허용을 요구할 경우 의료보건산업과 환자편의,의사·약사 등 이해진단의 입장 등 다각적인 검토가 불가피한 현안이다. 미국측은 환자에 대한 공정한 정보접근 및 제공을 명분으로 내세워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면의 핵심은 글로벌 제약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제약회사들의 이해 관계다. 미국 제약회사들은 전문의약품의 소비자 직접 광고를 통해 매출 확대를 기대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길리어드 화이자 MSD 글로벌 시장에서 많이 팔리는 상위 10대 전문의약품 가운데 7개가 미국 회사 제품이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1조원을 넘는 전문의약품이 전무하다.전문의약품 광고가 전면적으로 허용되더라도 국내 제약사들은 광고를 통해 판매를 촉진할 만한 의약품군이 마땅히 없는 현실이다.
보건 당국 입장에서는 DTCA 허용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면밀히 따져봐야한다. 광고를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을 접한 소비자들의 고가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선호할 경우 자칫 건강보험 재정악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과 달리 전국민건강보험 체계를 운영하고 있는 우리의 경우 미국과 더불어 전 세계에서 두번째로 전문의약품의 전면광고를 허용한 뉴질랜드의 사례를 심도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뉴질랜드는 사보험 중심인 미국과 달리 우리와 유사한 전국민건강보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DTCA를 둘러싼 일반인과 의사·약사간 인식에도 큰 편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DTCA를 전면 허용한 이후 미국에서는 의사와 약사 등 의학전문가 중심으로 의약품 오남용, 의사·환자간 불신증대 우려 등을 이유로 줄곧 반대입장을 표명해오고 광고를 통해 의약품 정보를 접한 환자가 의사들에게 특정 의약품의 처방을 요구할 경우 양측의 신뢰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뿐만 아니라 고가 오리지널 의약품 처방요구가 늘어 건강보험 재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게 이들 의료집단의 지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적·재정적 이해관계와 이해집단간 상이한 인식차이를 고려할 때 미국측의 재협상 요구에 앞서 보건당국이 선제적으로 DTCA 전면 허용에 따른 경제적 이해관계와 산업 및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 등을 다각적으로 연구해 대응논리와 마련할 필요가 있다.
△ Henry J. Kaiser Family Foundation, “Impact of Direct-to-Consumer Advertising on Prescription Drug Spending,” www.kff.org, June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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