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치가 보여준 AI 민주주의 매일경제 채종원 연수기관: 컬럼비아대
제1장 알고리즘 권력의 도래
인공지능(AI)은 이제 더 이상 정보 기술(IT) 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AI는 검색엔진을 고도화하고 업무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혁신의 결과물로 인식됐다. 그러나 2022년 생성형 AI 등장은 이런 패러다임을 흔들었다. 이제 AI는 단순히 기업의 효율성 제고를 넘어 인간의 정치적 판단, 여론 형성, 나아가 국가 정책 결정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가 됐다.
한국 정치권에선 아직 AI 관련 논의가 주로 딥페이크나 허위 정보 차단 등 역기능 통제에 집중돼 있다. 선거철에 등장하는 가짜 합성 영상·음성이나 정보 조작 문제 등이 주요 관심사다. 이런 행위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요소이다. 다만 미국 정치에서 전개되는 AI 이슈는 그보다 한 발짝 더 앞서 있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권은 AI를 정보 활용 도구를 넘어 선거 지형, 민주주의 패러다임 및 권력 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제도 변수’로 인식한다. 빅테크 기업들은 막대한 정치자금을 투입해 AI 관련 입법 과정에 개입하고 있다. AI 발전과 비례하는 데이터센터 건설 문제는 이제 지역사회의 전기요금 인상 및 환경 갈등을 유발하는 생활 정치의 주요 의제가 됐다. 아울러 AI 확산에 따른 노동시장 개편은 다양한 노동자 계층의 불안감을 자극하면서 이들의 투표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성형 AI의 활용도가 커질수록 이에 상응해 민주주의 정치 체제도 변화를 겪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플로리다주 정부가 챗GPT 운영사인 OpenAI와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를 안전상의 이유로 고소한 후 공방이 가열되고 있음을 짚은 뒤 미국 연방 정부 차원의 AI 가이드라인 수립 여부가 올해 중간선거 핵심 공약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했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분석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고학력·전문직이 밀집한 민주당 우세 지역(Blue State)에서 AI 발전에 따른 직업 대체 우려가 화이트칼라 유권자들의 표심을 흔들 수 있다고 언급했다. 또 AI 구동을 위한 인프라 확충이 전력망 부하와 공공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펜실베이니아, 애리조나, 미시간 등 중간선거의 승패를 가를 주요 경합 주(Swing State)는 누가 궁극적으로 인프라 비용 부담을 떠안고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지역 내 주요 현안이 됐다.
이처럼 AI는 더 이상 과학기술 분야 뉴스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 노동, 국가 안보, 선거 전략 및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까지 관통하는 최상위 정치 의제로 성장했다. 기존 정치학에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 변수로 정당 구조, 권력 구조(대통령제, 내각제), 세금 및 재정 정책, 노동시장 등이 주로 다뤄졌다면 이제는 AI 시스템을 독립변수로 설정해 정치 현상을 분석하는 모델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에선 이런 흐름에 대한 고민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례로 2026년 6월 치러진 제9회 지방선거에서 향후 국가 비전에 대한 전략과 대안 마련은 철저히 실종됐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윤어게인’ 등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AI가 제도권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가파르게 커지고 있는 변화는 시차를 두고 한국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첫 시험대가 2028년 23대 총선이 될 수 있다.
이에 본 보고서는 미국 내 정책 연구, 언론 보도, 학계 논문 등을 토대로 AI기술 및 빅테크 기업이 선거, 입법 및 정책 결정에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분석하고 이런 미국 내 변동이 한국 정치권에 던지는 시사점을 도출하려고 한다.
제2장 기존 연구 검토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 모델(LLM)의 빠른 발전은 선거운동과 정치 제도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학계에서 AI와 정치 간 상호 관계를 규명하려는 시도는 주로 정치 커뮤니케이션과 선거 캠페인, 유권자 행동, 민주주의 및 AI 규제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플로리안 푸스(Florian Foos)는 생성형 AI가 후보자 연설문, 후원금 모금 메시지 기획, SNS 콘텐츠 생성, 방대한 정책 자료 요약 등 전통적인 선거 캠프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는 정치신인이나 군소정당 후보도 거대 정당 수준의 고도화된 메시지 생산 능력을 제공받게 돼 제도권 정치 진입 장벽을 낮추는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사프 심촌(Asaf Simchon)은 AI 기반 알고리즘이 단순한 인구통계학적 타기팅을 넘어 개별 유권자별로 심리와 가치관에 맞춘 정밀한 정치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다고 보여줬다. 한 바이(Han Bai)는 LLM이 작성한 정치 메시지가 갖는 대중 설득력이 정치 전문가가 작성한 것과 대등했다는 점을 통계로 증명했다. AI가 단순한 문장을 다듬는 보조 역할을 넘어 공론장에서 유권자의 의견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종의 독립적 행위자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헌트 올콧(Hunt Allcott)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한 대규모 실증 실험을 한 결과 SNS의 알고리즘이 유권자의 정치 정보 소비 편향과 정치적 양극화를 촉진하는 매개체로 작동하고 있다면서도 SNS가 선거의 승패를 결정하는 정도의 영향력까진 보유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터 퇴른베리(Petter Törnberg)는 정치 알고리즘이 이용자의 소속감과 이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동시에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을 키워 정서적 양극화를 더 확대시키는 주범으로 봤다. 크리스토퍼 베일(Christopher Bail)도 상대 진영의 의견이 알고리즘을 타고 노출이 돼더라도 이것이 타 진영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정치적 적대감만 키우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SNS에서 생각과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면서 본인의 편견, 신념을 진실로 믿는 현상) 더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AI가 법안 제정이나 민원 해결 등 정치 행위에 교란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유럽의회 리서치 서비스(EPRS)는 이익집단 로비스트들이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방대한 법안들의 초안을 검토한 후 자구 하나를 교묘하게 틀어 법적 규제를 무력화하는 입법 로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 생성형 AI를 동원해 다양한 이슈의 가짜 민원과 청원을 무차별적으로 양산하는 ‘인공 잔디’(아스트로터핑, Astroturfing)’캠페인의 위험성도 나타난다. 아스트로터핑은 기업이나 정치 세력이 자금을 대고 조직했음에도 일반 대중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풀뿌리 운동인 것처럼 위장하는 여론 조작 기법을 말한다. 아스트로터핑 때문에 각 의원실은 AI가 작성한 가짜 민원과 유권자가 요구한 진짜 청원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있음이 증명됐다. 이는 자칫 여론 수렴 단계에서 특정 집단에 의해 민원 내용이 왜곡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대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로 성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라 크렙스(Sarah Kreps)와 더그 크라이너(Doug Kriner)도 생성형 AI의 무분별한 남용은 대의제의 핵심 가치인 대표성, 책임성,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약화한다고 봤다.
반면 펠릭스 시몬(Felix Simon)은 생성형 AI가 선거 결과를 직접적으로 뒤흔들었다는 실증적 증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분석했고, 브루킹스 연구소 역시 생성형 AI가 새로운 왜곡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존재하는 조작 정보를 증폭시키는 역할에 머물러 있다고 평가했다. 대신 AI 기술을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제도 또는 규범이 부재하면 민주주의의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기존 연구들은 전반적으로 마이크로 타기팅처럼 특정 AI 기술이 표심에 주는 효과를 측정하는 데 치중하는 경향도 보인다.
제3장 리테일 정치의 재편
미국 카터 및 레이건 행정부 시절 연방 하원의장을 지낸 팁 오닐은 ‘모든 정치는 지역에서 시작된다’(All Politics Is Local)고 말했다. 거시경제, 외교·안보 같은 거대한 국가적 의제가 선거판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유권자가 투표소에서 마주하는 질문은 결국 ‘우리 동네 도로는 언제 확장되는가’, ‘우리 지역 일자리는 늘어나는가’, ‘내 세금은 얼마나 오르는가’처럼 생활 밀착형 의제라는 것이다. 정치인이 선거철은 물론 평시에도 지역 행사와 주민 간담회를 찾아다니며 이른바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 국회를 봐도 중앙 정치에서 존재감이 약한 국회의원이 3선 이상을 하는 배경을 살펴보면 대부분 ‘지역구를 잘 관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소매 정치’(Retail Politics)라고 한다.
다만 소매 정치는 물리적 제약이 있다. 유권자와 눈을 맞추고 악수를 하며 민원을 청취하는 행위는 가장 인간적인 정치 행위이지만, 아무리 강행군을 펼쳐도 하루 동안 직접 만나 설득할 수 있는 유권자의 수는 제한적이다. 1790년 미국 하원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인구는 평균 3만 4000명이었지만 지금은 평균 76만 명에 이른다. 한 명의 의원이 대리해야 하는 유권자의 수는 수십 배 늘어나도 예나 지금이나 정치인에게 주어진 하루는 24시간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누구를 먼저 만나고 어느 지역을 방문하며 어떤 집단에 더 시간을 집중할 것인가는 선거 승패를 가르는 중요 전략이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런 전제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정치인의 기존 정책, 연설문, 인터뷰, SNS 게시글, 의정 활동 데이터 등을 학습한 LLM은 시공간의 제약을 두지 않고 유권자와 대화한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서도, 새벽 두 시 침대 위에서도 유권자는 질문할 수 있고 해당 정치인을 학습한 페르소나는 언제든 답변한다. 실제로 정치인을 만나지 못해도 AI 정치인으로부터 받은 답변으로 어느 정도 궁금증 해소는 가능해졌다.
생성형 AI가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TV 토론이나 거리 유세 중심의 ‘방송형‘(Broadcasting) 선거운동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나이, 성별, 지역 등을 기준으로 해당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 비슷한 타기팅 전략을 펼치는 대신 더 정밀한 맞춤형 공략이 가능해졌다. 유권자의 SNS 이용 패턴, 포털 검색 기록 등을 종합해 정치 성향, 가치관 등을 추론한다. 이를 바탕으로 LLM은 동일한 정책을 소개할 때도 수용자별로 맞춤형 문체와 논리 구조를 여러개 만든다. 예를 들어 안정과 공동체를 중시하는 유권자에게는 연대와 일상의 안전을 강조하는 따뜻한 언어로 정책을 설명한다. 경제 성장과 기술 혁신을 중시하는 유권자에게는 투자 대비 효과, 국가 경쟁력 등의 구체적 수치를 앞세워 보다 직설적인 방식으로 공약을 전달하는 것이다.
야밀 벨레스(Yamil Velez)는 2026년 3월 컬럼비아대 SPS가 주최한 ‘2026 Political Analytics Conference’에서 AI를 통한 ‘초개인화 설득’의 위력을 소개했다. 그는 AI가 개별 유권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배경을 분석해 맞춤 메시지를 생성했을 때 일반 광고보다 2배 이상의 설득 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기존 전략가들은 라틴계 유권자를 만날 때 항상 ‘이민제도 개혁’이나 ‘국경 문제’를 1순위 메시지로 준비했다. 하지만 야밀은 AI를 활용해 라틴 유권자 개개인의 선호도를 심층 분석한 결과 많은 라틴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은 낙태권이나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입장이었다. 야밀은 “더 이상 라틴 집단 혹은 흑인 집단처럼 거시 관점으로만 유권자를 바라봐선 안 된다”며 기존의 인구통계학적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유세 방식도 일방적인 전달에서 쌍방향 소통(Interactive Communication)으로 진화한다. 유권자의 질문과 관심사에 맞게 설명 내용과 방식을 실시간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취업 준비생에게는 일자리와 주거 정책을 중심으로, 은퇴를 앞둔 유권자에게는 연금 개혁과 의료보장 정책을 우선 안내한다. 특정 지역 주민에게는 데이터센터 건립이 전기요금과 전력망, 환경에 미칠 영향을 중심으로 공약을 재구성해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정치는 지역 정치’라는 정치 격언이 기술 진화 덕분에 현장을 찾지 않아도 디지털 공간에서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AI가 정치권에 순기능만 주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본인을 겨냥한 무기로 작동할 수 있다. 2024년 10월 미국 버지니아주 제8선거구에서 발생한 ‘돈봇’(DonBot) 사건이 이를 상직적으로 보여준다.
지역구 현역 하원의원인 돈 베이어(Don Beyer)가 추가 공개 토론을 거부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출신인 벤틀리 헨셀(Bentley Hensel)은 베이어 의원의 공식 홈페이지, 보도자료, 연방선거위원회(FEC) 공시자료, 과거 투표 기록 등을 학습시킨 AI 챗봇 ‘돈봇’을 직접 제작했다. 헨셀은 온라인 생중계 토론회에 불참한 베이어 의원 대신 돈봇을 토론 상대로 세웠다. 돈봇은 실제 베이어 의원의 정책 기조를 상당 부분 정확히 반영한 답변을 이어갔다. 심지어 헨셀이 “당신(베이어) 대신 헨셀에게 투표해야 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지자 돈봇은 “아니다. 나(베이어)에게 투표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는 경쟁 후보의 ‘디지털 복제품’을 만들어 직접 경쟁자와 상대하지 않고도 경쟁자에 대한 공개 검증의 장을 마련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돈봇 사건이 후보의 페르소나를 공론장에 강제 구인한 경우라면 2024년 뉴햄프셔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직전 발생한 ‘바이든 로보콜’ 사건은 AI가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복제한 AI 음성이 수만 명의 유권자에게 전송됐다. 내용은 “이번 예비선거에는 투표하지 말고 11월 본선을 위해 표를 아껴두라”는 허위 메시지였다. 민주당 지지층의 투표 포기를 유도해 선거 결과를 왜곡하려고 했던 이 사건은 미국 정치권에 큰 충격을 안겼다. 결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AI 생성 음성을 이용한 로보콜을 불법으로 규정한 행정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AI는 이제 선거운동 효율성을 높여주던 단순 보조재 단계를 넘었다. 정치인의 정체성을 대리할 수 있고, 때로는 허위 정보로 유권자의 판단 기준까지 뒤흔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제4장 민주당 vs 공화당 AI 대결
선거에서 캠프의 경쟁력은 선거자금 규모나 오프라인 조직력만으론 부족하다. 유권자의 성향을 얼마나 정교하게 포착하고 이에 맞춘 메시지를 얼마나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해졌다. 이 변화를 이끄는 최전선에 생성형 AI가 있다. 과거에는 거리 유세와 TV 광고 기획력이 캠프의 역량을 대변했다면, 이제는 알고리즘을 통해 유권자와의 접촉면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지도 캠프의 능력을 평가하는 핵심 지표가 됐다. 2026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역시 이런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데, 내부를 들여보면 AI를 바라보는 시각에 다소 차이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1월 제2기 출범 직후 바이든 행정부가 시행한 규제 중심의 AI 행정명령을 폐기했다. 대신 ‘Removing Barriers to American Leadership in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새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어 백악관은 ‘Winning the AI Race: America’s AI Action Plan’을 발표하며 AI를 경제 성장, 국가 안보, 산업 혁신을 동시에 견인할 전략 산업으로 규정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천명했다. 로드맵은 AI 인프라 확충,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 완화, 첨단 반도체 공급망 확보, 동맹국과의 기술 동맹 강화를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친시장·고속 성장 중심의 정책 기조는 공화당의 선거 전략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그 중심축은 공화당 유권자 데이터 플랫폼 기업인 ‘데이터 트러스트(Data Trust)’다. 데이터 트러스트는 투표자 명부를 넘어 소비 패턴, 지역 정보, 당적 이력, 상업 데이터 등을 총망라한 당의 핵심 자산이다. 생성형 AI 등장은 이 방대한 데이터를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정치적 무기로 탈바꿈시켰다. 예전에는 수십 명의 데이터 분석가가 며칠씩 매달려야 했던 유권자 세분화와 맞춤형 메시지 설계를 이제는 LLM이 실시간으로 수행한다.
공화당의 AI 전략은 ‘속도, 자동화, 초개인화’로 압축된다. 대표적 친공화당 디지털 컨설팅업체인 ‘푸시 디지털 그룹(Push Digital Group, PDG)’을 비롯한 우파 성향의 정치 컨설팅사들은 생성형 AI를 활용해 광고 문구, 이미지, 영상, 선거용 이메일 및 문자 메시지를 자동 생산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하나의 정책 메시지를 두고 수십~수백 개의 변형 버전을 동시에 쏟아내고 있다. 예전에는 광고 한 편을 제작한 뒤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한 후 그 효과를 검증하기까지 수일이 소요됐다면 이제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동일한 공약을 유권자 성향별로 다각화한 광고를 배포하고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수집한다.
예를 들어 청년 구직자에게는 일자리 창출과 규제 완화를 통한 창업 지원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러스트 벨트 지역 제조업 종사자에게는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노동자 보호 정책을 직관적으로 각인시키는 방식이다. AI는 해당 광고 클릭 수와 시청 지속 시간 등을 초 단위로 분석해 필요하면 설득용 문구와 이미지를 계속 보정한다. 선거 캠프 내 전략가들도 AI가 수행한 수천 번의 실시간 테스트 결과를 해석하고 적재적소에 이를 반영하는 디렉터 역할이 점점 중요해진다.
농촌 지역, 블루칼라 노동자, 보수 성향 고령층 등 공화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은 기술 변화에 따른 급격한 고용 불안 및 개인정보 침해에 대한 저항감이 강한 집단임에도 공화당이 이 같은 AI 기술 패권에 주력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공화당 지도부는 지지층의 불만을 지정학적 프레임으로 전환하며 돌파구를 마련했다. 중국이 주도하는 AI 세상을 막기 위해선 미국은 내부 규제를 풀고 더 빠르게 전진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AI 액션플랜을 통해 AI를 반도체 공급망, 원자력 전력망, 군사용 데이터센터와 결합해 국가 생존이 걸린 안보 정책으로 격상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보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규제 목소리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유권자도 개인정보 유출이나 일자리 불안을 중국과의 전쟁에서 감수해야 하는 비용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화당은 바이든 정부의 AI 정책을 폐기하며 AI 가이드라인에서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와 기후변화 관련 지침도 지웠다. 공화당은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애국주의 등 우파적 가치를 검열하고 민주당 성향의 진보 이념을 알고리즘에 주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공화당은 자신이 추진하는 AI 정책은 좌파 진영의 문화적 지배 시도에 맞서 미국의 정체성과 가치를 사수하는 이념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맞서 민주당도 AI 기술을 선거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식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선봉에는 ‘하이어 그라운드 랩스(Higher Ground Labs, HGL)’가 있다. HGL은 미국 진보 및 민주당 진영을 지원하는 최대 규모의 정치·선거 기술 전문 벤처캐피탈(VC)이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패배한 직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신 인사들과 실리콘밸리의 테크 전문가들이 결성했다. 당시 공화당에 뒤처져 있던 디지털 타기팅과 유권자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하고, 진보 진영만의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출발했다.
2026년 상반기 HGL은 ‘자율형 AI(Agentic AI) 공모전’을 공식 발표했다. 단순히 텍스트나 이미지를 자동 생성하는 단계를 넘어 캠페인 기획부터 실행 및 피드백까지 선거 전반의 프로세스를 독립적으로 수행하는 AI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이다. 일방향, 물량 공세 중심인 공화당의 ‘푸시 AI(Push AI)’ 전략에 대항해 유권자 데이터 분석부터 자원봉사자 모집과 배치, 소액 후원금 모금 유도, 콘텐츠 실시간 대응까지 통합된 AI 에이전트 시스템으로 해결하겠다는 구상이다. 즉 AI를 단순한 업무 보조원이 아닌 캠페인의 핵심 의사결정을 내리는 ‘디지털 선거 참모’로 전면 배치하겠다는 전략적 포석이다.
특히 민주당은 구글 상단의 AI 요약 답변을 주로 이용하는 유권자에 관심이 많다. 이들의 정보 소비 경로가 자당에 유리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유권자가 검색 결과 링크를 일일이 클릭하는 대신 검색엔진이 제공하는 단 하나의 AI 요약 문장만 소비하게 되면서 공론장은 빅테크가 구축한 ‘정보의 가두리 양식장(Information Walled Garden)’으로 변모했다고 분석했다. AI 제조사와 파트너십을 맺은 특정 매체의 논조나 편향된 데이터가 유권자의 세계관을 규정하는 ‘보이지 않는 편집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 하원선거위원회(DCCC) 선임 고문인 메그 슈웬츠파이어(Meg Schwenzfeier)는 앞서 언급한 컬럼비아대 컨퍼런스에서 “위키피디아의 아주 작은 수정 사항조차 단 12분 만에 전 세계 챗봇의 답변으로 복제 및 확산 되는 현실에서 DCCC 등은 기존의 검색 엔진 최적화(SEO)를 완전히 넘어선 ‘답변 엔진 최적화(Answer Engine Optimization, AEO)’ 팀을 캠페인의 핵심 보직으로 전면 배치했다”고 말했다. 24시간 내내 주요 생성형 AI의 답변을 모니터링하고, 아군 후보에 대한 악의적인 알고리즘 왜곡이나 잘못된 요약 정보를 실시간으로 교정·방어하는 고도의 디지털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민주당은 AI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다. AI를 선거용 기술을 넘어 ‘거버넌스 테크(Governance Tech)’나 ‘시빅 테크(Civic Tech)’로 격상시키고 싶어한다. 이런 시도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사례로 오픈소스 기반의 숙의 플랫폼 ‘폴리스’(Pol.is)가 있다. 폴리스는 수만 명의 시민이 분출한 파편화된 의견을 실시간으로 분류하고 그룹화 후 서로 대립하는 집단 간의 숨은 공통 분모를 도출해 낸다. 또 2024년 구글 딥마인드가 발표한 ‘하버마스 머신’도 생성형 AI가 대규모 공론장에서 의견을 요약하고 합의 기반을 찾아냄으로써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딥마인드 연구진이 5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험 결과 AI가 생성한 합의문(56%)은 인간 중재자가 작성한 합의문(44%)에 비해 더 높은 지지와 공감을 얻었다.
다만 공화당은 AI를 활용해 유권자의 직관을 자극하고 바이럴 마케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기조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향하는 숙의 민주주의가 치열한 선거전에서 얼마나 자당에 도움이 될 것인지에 대한 회의적 시각도 보인다.
이처럼 미국 양당이 전개하고 있는 AI 경쟁은 단순한 기능적 우열 가리기는 아니다. 공화당이 속도와 정밀한 타격을 중심으로 놓고 있다면 민주당은 참여형 민주주의의 확대를 지향한다. 2026년 미국 중간선거 이후 각 정당이 내놓을 AI 선거 캠페인에 대한 평가가 주목된다.
제5장 전기료 폭등으로 번진 AI 데이터센터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AI 발달로 새롭게 떠오른 민생 이슈 대응도 중요해졌다. 데이터센터 건설 및 전기요금 상승 이슈는 첨단 기술 경쟁이 유권자의 일상에 파고들어 표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몇 년 새 생성형 AI와 LLM 학습을 위한 초대형 데이터 센터 건설이 급증하고 있다. 이에 따른 전력망 부하 및 인프라 비용이 가정으로 전가되는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처럼 에너지 인프라(발전소, 파이프라인, 송전망)가 국가 권력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에너지 정치학’으로 부른다. 에너지 정치학 논란이 뜨거운 곳은 미국 최대 전력망을 운영하는 PJM 인터커넥션이 관할 하는 워싱턴DC를 비롯한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등 13개 주이다.
이 지역들에서 용량경매(Capacity Auction) 비용이 급증했다. 용량경매란 발전소들이 미래 특정 시점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약속(발전용량)을 하고 입찰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PJM 같은 전력망 운영기관이 향후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을 예방하기 위해 발전소들과 맺는 일종의 전력 공급 보험의 보험료를 결정하는 경매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PJM 용량경매 결과를 보면 2024~2025 인도연도(Delivery Year, 낙찰받은 발전소가 약속한 전력을 공급하는 의무 기간) 경매에서 22억 달러 수준이었던 전체 조달 비용이 2025~2026 인도연도 경매에서 무려 568% 급증한 147억 달러를 기록했다. PJM의 내부전력 거래와 시장을 감시하는 독립 시장 감시 기구인 ‘모니터링 애널리틱스’는 이 같은 비용 폭등의 주 배경으로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 확대를 지목했다. 에너지 전문 매체 유틸리티 다이브의 PJM 공시자료를 분석한 보도를 보면 PJM의 2027~2028 인도연도 용량 경매 비용 164억 달러 중 40%에 육박하는 65억 달러가 데이터센터 전력 부하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나온다.

이처럼 빅테크 기업의 인프라 구축 비용이 가계 및 소상공인의 전기요금 인상 압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관련 지역의 여론도 냉랭하다. 2026년 4월 페얼레이 디킨슨 대학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뉴저지 유권자의 66.7%가 안정적인 전력 공급 대책이 수립되기 전까지 데이터센터의 신규 건설을 일시 중단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5월 스탁턴 대학 조사에서도 뉴저지 유권자의 56%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 내 AI 데이터센터 진입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또 생성형 AI가 발달이 가져오는 노동시장 재편도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공장 자동화가 주로 블루칼라 중심의 문제였다면 생성형 AI가 주도하는 노동 구조 개편은 화이트칼라가 수행 중인 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잠재적 폭발력은 더 크다는 전망도 있다. 화이트칼라의 고용 불안감을 더욱 끌어올린 사례가 AI 기업인 앤드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의 경고였다. 그는 2025년 5월 악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AI 기술의 급격한 고도화로 향후 1~5년 이내에 초급(Entry-level) 화이트칼라 직무의 50%가 대체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정밀한 사회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면 전체 실업률이 10~20%까지 치솟는 극단적인 고용 쇼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이 경고는 금융·법률·컨설팅 등 고학력 청년층이 주로 맡고 있는 주니어 직급의 붕괴 가능성을 시사한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전문직이 된 20대도 AI에 밀려 사회에서 경쟁력은 물론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다.
이런 화이트칼라의 고용 불안감을 막고자 민주당 일각에선 AI 규제 관련에 나섰다. 2026년 3월 25일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과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하원 의원은 ‘AI 데이터센터 모라토리엄 법안(AI Data Center Moratorium Act)’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안은 AI 인프라가 고용 시장, 지역 환경, 전력망 안정성에 미치는 포괄적 영향을 의회 차원에서 규제하고 철저히 검증할 때까지 신규 데이터센터의 건설 및 확장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같은 움직임은 앞서 기술 혁신을 무제한 허용하기보다 국가가 적절히 개입해 속도를 조절함으로서 고용 불안을 줄이고 동시에 중산층의 표심도 노리는 민주당의 정무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실리콘밸리의 빅테크들을 직접 압박하고 나섰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2026년 2월 24일 국정연설에서 “주요 기술기업들은 자신들이 초래한 막대한 전력 수요와 계통망 확충 비용을 스스로 충당할 법적·윤리적 의무가 있으며 이를 일반 국민들의 고지서에 얹어 가계를 파탄 내는 행위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2026년 3월 4일 백악관은 빅테크 기업들이 초래한 전력 인프라 비용을 일반 가계에 전가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전기요금 납부자 보호 서약 선포(Ratepayer Protection Pledge Proclamation)’를 발표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당일 서약에 참여한 기업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오라클, xAI, OpenAI이다.
다만 이 서약은 법적 구속력은 없는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빅테크 기업의 자발적 선의에 의존해야 하고, 이와 관련한 실질적 비용 분담 조항이나 강제력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공화당이 견지해 온 친시장, 규제 완화 기조와 모순되는 행보였다는 점에서 중간선거를 의식한 유권자 달래기용 이벤트라는 평가도 있다.
오히려 실질적 행정권을 보유한 주 정부 차원에서 입법 움직임은 활발하다. 캘리포니아, 오하이오, 유타에선 데이터 센터가 변전소 및 송전망 증설 비용을 직접 선납하도록 강제하는 별도의 독립 법안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거나 시행에 착수했다.
이처럼 2026년 미국 정계는 AI와 관련해 시장의 확장을 용인하면서도 표심 방어를 위해 빅테크를 한시적으로 압박하는 공화당과 전통적 지지층인 화이트칼라의 고용 쇼크 가능성에 대비해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민주당 간의 노선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제6장 K스트리트와 규제 포획
정부에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필연적으로 이를 막고자 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나오기 마련이다. 과거 철도 독점 자본이 독점금지법을 무력화하고, 석유 카르텔이 에너지 안보 정책을 집필했으며, 월스트리트가 금융위기 직후 규제 법안의 조항을 직접 수정했듯이, 생성형 AI 시대도 동일한 경로를 밟고 있다. 달라진 것은 막후에서 규칙을 움직이려는 핵심 행위자가 지금은 빅테크라는 점이다. 그리고 빅테크 집단은 규제 포획(Regulatory Capture)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고 있다. 규제 포획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기업을 감시하고 규제해야 하는 정부 기관이나 규제 당국이 오히려 규제 대상인 기업(이익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 현상이다.
다니엘 카펜터와 데이비드 모스는 저서 ‘Preventing Regulatory Capture’에서 규제 포획의 핵심 원인을 정보 및 전문성의 독점이라고 했다. 행정·입법 기구가 정책을 설계할 때 필요한 고도의 기술적 전문성을 규제 대상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순간 포획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AI 산업은 이런 규제 포획이 일어나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다. LLM의 구조, 컴퓨팅 인프라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이해하는 집단은 정부가 아닌 오픈AI, 구글 등 시장의 선점자들이다. 애초에 정보 비대칭이 존재한다. 그리고 미국 의회가 기술 장벽에 가로막혀 기업이 제공하는 팩트 시트와 기술 자료에 의존하는 순간 규제 논의 출발점부터 AI 기업에 의존하게 된다.
워싱턴 K스트리트에서 AI 로비스트도 급증하고 있다. 시민단체 퍼블릭 시티즌이 2026년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미국 연방 로비스트 1만3699명 가운데 3570명이 AI 관련 의제를 한 번 이상 다뤘다. 전체 연방 로비스트의 26%에 해당한다. 2020년 1311명이었던 AI 관련 로비스트 수도 2025년 3570명으로 늘었다. 또 로비스트와 고객 관계를 기준으로 보면 2022년 1672건에서 2025년 6110건으로 3년 만에 265% 급증했다고 밝혔다.
관련 분야 자금 규모 성장세도 비슷하다. 블룸버그 거버먼트가 로비공시법 자료를 분석해 보니 2019년 이후 K스트리트의 AI 관련 누적 매출은 4억 2000만 달러를 상회한다. 특히 챗GPT가 출시된 2023년 1분기 이후에만 총 3억 달러(전체의 약 71.4%)가 집중 투입됐다. 이는 AI가 더 이상 실리콘밸리만의 이슈가 아니라 워싱턴의 예산, 안보, 에너지, 선거, 노동정책을 동시에 흔드는 범정부 의제로 전환됐음을 의미한다.
주요 빅테크 기업들 역시 발 빠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2025년 기준 메타는 약 2600만 달러, 아마존은 약 1800만 달러, 알파벳은 1300만 달러, 마이크로소프트는 900만 달러 이상을 연방 로비에 쏟아부었다. 아울러 오픈AI 역시 전년 대비 로비 예산을 7배 이상 증액하며 120만 달러 이상의 외부 로비 계약을 체결했고 안드레센 호로위츠와 엔비디아도 각각 100만 달러 안팎의 자금을 집행하며 룰 세터(Rule Setter)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나섰다.
빅테크는 막대한 자금을 워싱턴에 쓰고 있지만 이들이 대외적으로 내세우는 브랜딩 방식은 안전과 사회적 책임이다.
024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메타, 구글, 오픈AI 등 20개사는 딥페이크 선거 개입 방지 자발적 협약에 참여했고 디지털 워터마크와 콘텐츠 출처 표시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는 법적 강제력이 없는 자율규제이고 위반해도 제재 수단이 제한적이다. 대외적으로 윤리와 책임을 강조해도 실제 정책 결정 과정에선 규제 강도와 범위를 최소화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또 빅테크 기업들이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프레임은 국가 안보다. 2025년 이후 워싱턴에서 진행된 AI 청문회나 발간된 정책 보고서에는 ‘미국이 AI 규제를 과도하게 강화하면 중국이 기술 패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취지의 주장이 반복해서 재생 중이다. 그 배경을 살펴보면 단순히 산업을 보호해달라는 주장을 넘어선 정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규제 완화 요구를 국가 안보 전략과 동일 선상에 두면 AI기업이 잘 되는 것이 곧 미국의 이익으로 해석된다. 이 프레임이 설정되는 순간부터 미국이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미국 정부는 미국 AI 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규제는 줄여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마틴 길렌스(Martin Gilens)와 벤저민 페이지(Benjamin I. Page)의 ‘Testing Theories of American Politics: Elites, Interest Groups, and Average Citizens’ 논문에 따르면 미국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특정 정책을 원해도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 확률은 0에 가까운 반면 경제 엘리트 또는 기업 이해집단이 선호하는 정책은 법제화가 된다.
AI 분야도 보통 시민은 일자리, 선거, 개인정보, 전기요금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며 관련 대응책 마련을 바라지만 정작 워싱턴에서는 AI를 국가 안보를 위해 AI 기업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로 접근하고 있다.
실제 빅테크 자본의 힘을 보여준 규제 포획의 대표적 사례로 ‘90일 사전 접근권’의 무력화가 있다. 90일 사전 접근권은 정부가 프론티어 AI(최첨단 고성능 AI) 모델이 대중에 출시되기 전 그 위험성을 미리 검증하기 위해 추진했던 일종의 사전 안전 점검 기간이다. 당초 행정부와 의회는 프론티어 AI의 치명적 안보 위험을 검증하기 위해 강력한 사전 안전장치 마련에 공감했지만 AI 기업를 대변하는 로비 군단이 ‘미국의 기술 패권 상실’을 들고 나오며 막아 나섰다. 결국 검증 기간은 30일로 단축됐고 강제 조항들도 대거 무력화됐다.
이처럼 포획 전술은 규제의 완전한 소멸을 노리진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대신 의회를 움직여 실효성 없는 최저 기준의 연방 가이드라인법을 통과시키는게 주 목적이다. 대외적으로는 규제가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미국 헌법상의 연방 법률 우위의 원칙을 이용하려는 빅테크의 의중이 깔려 있다. 연방 기준이 제정되면 개별 주 정부는 그보다 높은 수준의 규제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7장 신흥권력이 된 빅테크와 AI 규제론자의 낙선
K스트리트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빅테크 자본의 시선은 이제 워싱턴을 넘어 AI 관련 독자적 사법 안전망을 구축하려는 개별 주 정부로 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뉴욕, 일리노이, 콜로라도 등 주 정부들은 선거 딥페이크, 알고리즘 차별, 소비자 보호, AI 생성물 표시 의무 등을 담은 안전망을 갖춰 나가고 있다. 하지만 빅테크 기업들은 이를 ‘패치워크 규제’(일관된 법이 아닌 지역·기관별 서로 다른 규제들이 있는 형태)라고 부르며 반발한다. 다양한 규제들이 어지럽게 쌓이게 되면 결국 미국 AI 산업의 혁신 속도가 둔화되고 중국과의 기술 경쟁에서도 밀릴 것이라는 안보론, 지정학 프레임을 다시 들고 나온다.
사실 미국에서 주 정부는 새 정책을 실험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환경 규제, 개인정보 보호, 노동 기준 등에서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은 연방 표준을 압도하는 선제적이고 강력한 법안을 도입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 된 전례가 있다.
AI 규제 분야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나타난다. 캘리포니아의 ‘SB 1047’(인공지능 모델을 위한 안전 및 보안 혁신법)이 대표 사례다. 이 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대형 AI 모델 개발사와 해당 모델 학습에 필요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안전조치와 리스크관리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비록 2024년 9월 개빈 뉴섬 주지사의 거부권 행사로 최종 발효되지 못했지만 주 정부가 거대 기술의 위험을 사전에 통제할 수 있다는 신호를 남겼다. 실제 이후 뉴욕, 일리노이, 콜로라도 등 주 정부들은 기술 자본의 연방 정부 포획에 대응해 디지털 워터마크 의무화, 알고리즘 책임성 법안, 선거 딥페이크 금지법 등 주 차원의 자체 방어망 구축에 착수했다.
주 정부들이 AI 규제에 속도를 낸 배경에는 생성형 AI 기술이 선거 체제와 공론장을 위협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테크 자본이 규제 완화를 위해 2025년 한 해에만 1억 3000만 달러에 로비 자금을 투입하는 사이 실제 선거 현장은 AI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선거 직후 투표용지가 조직적으로 훼손되거나 위조 투표함이 적재되는 가짜 영상을 무차별 유포해 유권자들의 불복을 선동하는 등의 사례가 있다.
하지만 개별 주 정부의 방어막 구축에 맞서 빅테크 기업들과 이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슈퍼 팩(Super PAC, 정치자금 기부단체)은 또다시 반격에 나섰다. 빅테크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 기관들은 50개 주마다 규제 수준과 워터마크의 조건이 달라지는 환경이 도래하면 미국 소프트웨어 생태계가 파편 화돼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는 점을 적극 주장했다. 이에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12월 11일 ‘Ensuring a National Policy Framework for Artificial Intelligence’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법무부 장관 직속으로 ‘AI Litigation Task Force’를 설치해 연방 정책 기조와 충돌하거나 헌법상 통상조항을 위배한다고 판단되는 주 정부의 AI 법률에 대응하도록 했다. 이 지점에서 테크 자본이 기획한 규제 포획의 정교한 매커니즘이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들은 규제의 완전한 소멸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연방 의회를 움직여 실효성이 약한 최저 기준만 만들어두려는 전략이다. 미국 헌법 상 연방 법률 우위의 원칙을 끌어와 주 정부의 손발을 묶어버린 것이다.
2026년 6월 치러진 뉴욕주 민주당 의회 예비선거 역시 AI 규제 공방이 선거의 당락을 가른 미국 정치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뉴욕주 의원이자 강력한 AI 규제 및 사법적 통제를 옹호하던 현역 정치인 알렉스 보어스(Alex Bores)는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과 주요 AI 기업 관계자들이 후원하는 슈퍼 팩의 집중 표적이 됐다.
이 한 곳의 선거구에만 미디어 캠페인과 낙선 운동을 위해 수천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테크 자본이 투입됐고, 선거전은 AI 규제파 대 AI 찬성파의 대결로 치러졌다. 결국 보어스 의원은 낙선했다. 파이낸셜타임즈와 가디언은 이번 결과에 대해 ‘AI 산업에 감히 맞서는 정치인은 언제든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장을 정계 전체에 보낸 사건’으로 평했다. 거대 자본이 선거판을 움직여 규제론자의 입을 막는 ‘위축 효과’를 입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동시에 테크 자본이 이제는 로비 수준을 넘어 특정 후보의 생사를 결정할 정도의 신흥 권력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있다.
제8장 AI는 새로운 권력, 한국 거버넌스 과제
본 보고서는 생성형 AI를 혁신 기술이 아닌 대의제 민주주의의 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제도 변수로 설정하고 살펴봤다. 미국 정치에서도 AI가 선거 캠페인의 효율성을 높이는 보조 도구에 머물지 않고 의제 설정, 입법 방향, 규제 강도까지 변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국도 2026년 1월부터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이 시행됐고, 생성형 AI 표시 의무와 고영향 AI 관리 의무가 도입됐다. 대통령 직속 국가AI전략위원회도 출범해 국가 AI 전략과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공직선거법도 개정돼 선거일 전 90일부터 선거일까지 AI 딥페이크 영상·음향·이미지의 제작·편집·유포·게시를 금지했고 그 외 기간에도 AI 생성 사실 표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벌어지는 AI 논의는 아직 산업 진흥과 기술 신뢰성 확보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 반면 AI가 선거와 입법 과정, 생활 정치 의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선 상대적 주목도가 떨어진다. 이제 한국도 AI 산업 진흥과 규제라는 이분법을 넘어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제도 설계로 문제의식을 확장해야 한다.
우선 2028년 제23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기존 딥페이크 규제를 넘어서는 종합적 AI 선거 규범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공직선거법은 딥페이크 영상 등에 대한 금지와 표시 의무를 두고 있지만, AI 기반 유권자 자동 응대, 생성형 AI가 작성한 맞춤형 정치 메시지, 알고리즘 타게팅 광고, 답변형 검색에서의 후보 정보 왜곡 문제까지 포괄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향후 공직선거법 논의는 AI 생성 콘텐츠의 표시 의무를 넘어, AI 캠페인 운영 주체와 비용, 자동화된 유권자 접촉의 투명성, 정치광고 알고리즘의 책임성까지 포함해야 한다.
또 AI가 여론조사와 공론장 자체를 왜곡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컬럼비아대 컨퍼런스에서는 현재 온라인 여론조사 응답의 무려 40%가 챗봇에 의해 작성됐다는 연구 결과가 공유됐다. 이는 여론조사 데이터가 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질문하고 기계가 답하는’ 허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신호이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와 학계, 조사기관은 AI 응답 식별 기술, 인간 응답자 인증 절차, 조사 데이터 검증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다만 안구 추적이나 미세 혈류 측정 같은 생체 인증 방식은 개인정보 침해와 감시 논란을 동반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AI가 만들어낼 생활 정치 의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데이터센터의 수도권 집중과 전력 계통 부담은 이미 현안이 됐다. 분산에너지법과 전력계통영향평가 제도가 도입됐지만 초거대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확대에 따른 송전망 투자, 지역 수용성, 전기요금 부담 문제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이 비용이 가계와 소상공인에게 일방적으로 전가되지 않도록 대용량 수용가의 비용 부담 원칙을 더 명확히 해야 한다. 동시에 생성형 AI가 화이트칼라와 전문직 노동시장에 미칠 충격에 대비해 사후 실업 대책이 아니라 선제적 재교육과 직무 전환 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빅테크 기업의 관료 포획도 차단해야 한다. AI 거버넌스의 핵심은 기술 권력을 공적 영역에서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이다. AI 모델 및 인프라에 대한 전문성이 관련 기업에 집중될수록 정부와 국회는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에 종속될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국가AI전략위원회와 국회, 규제기관은 공공 부문의 AI 전문성을 강화하고, 독립적인 기술 검증 체계와 공익을 우선하는 전문가 그룹을 구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AI 정책은 정권의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초당적 국가 전략이 돼야 한다. 생성형 AI 발전 속도는 정권 교체 주기보다 훨씬 빠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AI 정책의 방향이 흔들리면 한국은 기술 경쟁에서도, 민주주의의 안정성에서도 뒤처질 수 있다. 최소한의 AI 거버넌스 원칙은 여야 합의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만들어 가야 한다.
다만 AI를 너무 위협의 대상으로 바라볼 필요도 없다. 선거 전문가들의 의견처럼 AI는 적절한 개입을 통해 리스크 관리를 해줘야 하는 ‘신입 협업자(Junior Collaborator)’에 가깝다. 정치 현장도 마찬가지다. 모든 정당과 캠프가 AI를 활용한 초개인화 타기팅에 뛰어들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관련 기술 사용 능력은 빠르게 평준화될 것이다. 즉 어느 선거 캠프나 비슷한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을 것이란 의미다. 이럴 때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차이는 결국 AI가 산출한 데이터를 어떤 맥락으로 해석하고 이를 메시지로 전환해 유권자와 신뢰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그런 정무감이 필요한 영역은 여전히 인간 정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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