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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브렉시트 10년이 한국 경제에 준 교훈
세계 공급망 변화와 대응 방향 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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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브렉시트 10년이 한국 경제에 준 교훈
- 세계 공급망 변화와 대응 방향 모색
한겨례신문 이완 연수기관: 소아스런던대

들어가며

홍콩 출신 대니와 얀은 영국에서 성공을 꿈꾸는 이주민이다. 이들은 2023년 홍콩에 있던 집 등 모든 자산을 처분하고 아이를 데리고 아시아 대륙을 건넜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 받은 뒤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중국 중심의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하자 새로운 삶을 찾기로 한 것이다.

영국은 1997년 홍콩을 반환할 당시 중국으로부터 ‘일국 양제(50년간 홍콩 자치 보장)’를 약속받았지만, 중국이 이를 위배했다고 보고 2021년 홍콩인들에게 국경 문을 열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전에 태어난 홍콩 주민에게 새로운 비자를 발급해 영국 내 5년간 거주 및 취업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영주권을 취득한 뒤 시민권까지 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과거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역사적 책임과 민주주의 국가로서 중국의 권위주의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런던 근교에 자리를 잡은 대니는 영국의 한 은행에서 IT 관련 일자리를 잡았다. 영국에서 초기 적응에 성공한 이들은 이제 아들 다니엘의 교육을 위해 집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세컨더리 스쿨에 진학할 나이가 가까워지자, 좋은 공립 세컨더리 스쿨이 있는 이른바 ‘학세권’을 찾아나선 것이다. 다니엘이 공부를 잘해 ‘그래머 스쿨’에 진학하면 좋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대니와 얀의 사례는 홍콩인들이 영국으로 이주해 어떤 삶을 꿈꾸는 지 잘 보여준다. 영국이 필요로 하는 고급 노동력의 수요를 채우면서, 아이에게 좋은 교육 등 더 많은 기회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들은 세금을 충실히 낼 뿐만 아니라 영국 부동산 시장을 견인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들 보다 먼저 도버해협을 건넌 로디카 역시 일자리와 교육의 기회를 영국에서 찾았다. 그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로디카의 남편 바샤는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으로 향하는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왔다. 건축 일자리를 잡은 뒤 딸과 아들 등 가족을 영국으로 이끌었다. 바샤는 고향인 몰도바에서 버는 수입 보다 영국에서 벌 수 있는 수입이 훨씬 크다고 했다. 몰도바에는 일자리가 많지 않다.

이들은 성실히 일하며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다. 로디카는 아이들 교육을 뒷바라지 한 뒤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만, 아이들은 영국에 뿌리를 박을 가능성이 크다. 영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았고 몰도바어를 쓰지 않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이런 이민자들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브렉시트 전에는 유럽연합 내 사람들이, 브렉시트 후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 유럽연합이 아닌 곳에서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이들은 서비스업 등 영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인터넷 연결 신청을 하면 케냐 출신 노동자가 왔고, 택시서비스 우버를 부르면 이집트 출신 운전자가 왔다. 이발소에는 이란 출신 헤어디자이너가 있고, 목수를 찾으면 폴란드 출신 노동자를 주변에서 추천한다.

영국이 가진 장점 때문이었다. 전세계적으로 쓰임이 많은 언어인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이전부터 다문화 커뮤니티가 존재했다. 선진국이 가진 교육과 의료 등 복지 혜택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던 대영제국이 남긴 유산이었다.

그런데 영국은 왜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8%(2025년 기준)로 유로존 평균 1.2%보다 낮았다. 금융, 바이오 등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제조업들은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다. 전세계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국산 제품을 찾기는 어렵다. 최근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엔 브렉시트가 있다는 분석이 많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정 이후 10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리폼유케이의 대승

올해 영국의 지방선거는 반이민, 반유럽연합을 내세운 리폼유케이(영국개혁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집권당인 노동당은 대패했고, 양당제를 함께 이끌어온 보수당은 존재감을 상실했다. 리폼유케이가 보수당의 오른쪽 위치를 잠식했고, 왼쪽에서는 녹색당이 노동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끌어모았다.

집권당이 대패한 것은 지난 2024년 노동당에 14년 만에 승리를 안겨주며 경제를 다시 일으켜달라고 했던 유권자들의 바램을 채워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영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이전보다 훨씬 틀어막고 있지만 대중의 이민에 대한 혐오감도 지우지 못했다. 외려 이민자에 대한 혐오 등을 앞세운 극우정당 리폼유케이가 더 약진했다.

민주주의를 제도화하고 안정적인 양당제의 상징처럼 보였던 영국이 이처럼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 이후와 시기적으로 겹친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는 국민투표 이후 영국 총리 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를 거쳐간 총리는 6명에 달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테리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낵, 그리고 2026년 6월 사임을 발표한 총리인 키어 스타머이다. 키어 스타머 역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패하면서 당 안팎의 사퇴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영국에서 지낸 1년 동안 지켜본 브렉시트의 영향은 한국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영국은 유럽 경제 공동체, 즉 유럽의 한 울타리 공급망에서 이탈한 선택에 대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었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발생한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의약품 부족, 에너지 가격 급등 등 공급망이 국민 안전, 안보와 굉장히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영국에 아프게 확인시켜줬다.

아울러 브렉시트는 전 세계가 마주한 세계화의 균열을 상징한다.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 갈등,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이은 통행료 징수 움직임 등은 자유무역 시대가 종지부를 향해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계경제포럼(WEF)은 ‘글로벌 밸류체인 전망 2026’ 보고서를 통해 “분절화와 지정학적 변동성은 무역 장벽, 산업정책, 그리고 지속되는 갈등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이는 세계화를 미국, 중국,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하는 경쟁적 블록으로 분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21세기 분절화의 대표적 사례인 브렉시트를 통해 영국의 사례를 연구하는 것은 공급망과 경제 뿐 아니라 정치 사회 전반에 관한 다양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 특히 수출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진 한국은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무역구조의 변화를 유심히 살피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이미 희토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요소수 등 공급망이 연달아 흔들리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전세계적으로 전쟁이 지속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우방을 확보할 수 있는 중견국 연대와 같은 제안도 살펴 한국 경제의 선택지를 넓히는 방안도 검토하겠다.

영국의 경제상황

영국의 슈퍼마켓에서 살 수 있는 우유 가격은 2년새 0.2파운드 올랐다. 2024년 슈퍼마켓 웨이트로즈(Waitrose)에서 살 수 있는 자체(PB) 브랜드 우유 가격은 4파인트(2.27리터)에 1.55파운드였는데 2026년 6월 가격은 1.75파운드였다. 상승률은 11.4%다.

영국에서는 우유가 기본 식료품이어서 가격의 변동은 가계 부담으로 직결된다. 우유는 체감물가를 좌우하는 대표 품목이다. 런던에 살며 대학교 어학원에서 일하는 나타샤는 브렉시트 이후 가장 체감하는 변화는 물가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19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기는 했지만 브렉시트 이후 물가가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그의 일자리는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 학생들이 영국에 있는 학교에 오기 힘들어지면서 크게 위협받았었다.
영국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은 2022년 9.1%, 2023년 7.3% 등 코로나19 이후 급등했다가 지난해 약 3.5% 수준으로 내려왔다. 그래도 한국보다는 1%포인트 정도 높고, 다른 주요7개국(G7) 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물가가 다른 나라보다 높게 오른 것은 공급망에서 이탈한 뒤 온 코로나19 등의 충격을 훨씬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내에 있을 때는 부담이 적었던 통관 행정비용 등이 증가했고, 영국 밖 노동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면서 늘어난 생산비용 등이 물가를 끌어올렸다. 영국은 농산물 등 식료품의 공급을 유럽 내 다른 나라들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에너지 비용도 올랐다. 유럽연합 회원국이었을 때 영국은 내부 전력시장을 통해 전력을 조달했지만 브렉시트 이후 이 지위를 상실했다. 영국은 해저 케이블을 통해 노르웨이, 아일랜드, 프랑스, 벨기에, 덴마크, 네덜란드로 전기를 수출입하고 있는데 영국 에너지협회 추산을 보면, 브렉시트로 인한 에너지 거래비용 손실이 매년 1억2000만파운드~3억7000만파운드에 달한다.1

국제금융 인사이트는 영국 상황에 대해 “브렉시트 등으로 물가상승 압력이 구조적으로 높은데다 성장률 기본 전망도 낮아 스태그플레이션 압력이 심각해질 것으로 평가”했다.2 또 브렉시트 여파와 파운드화 변동성 확대로 기업 투자가 위축되고 실질 가계소득이 감소하면서 경제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 전망치(2026년 0.8%)보다 추가 하락이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브렉시트는 미래 활력도 뺏고 있었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미친 영향을 분석해 내놓은 워킹페이퍼를 보면, 브렉시트는 2025년까지 영국 국내총생산(GDP)을 6~8% 감소시켰으며 그 영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누적되었다. GDP의 6%라면 2025년 명목GDP 기준으로 연간 약 1500억파운드(약 283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또 투자규모는 12~18%, 고용은 3~4%, 생산성은 3~4%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부정적 효과는 브렉시트 과정에서의 높은 불확실성, 수요 감소, 경영진 시간의 분산 그리고 자원 배분의 비효율 증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이 논문의 결론이었다.3

투자와 생산성의 감소는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보도를 보면, 브렉시트로 만들어진 불확실성에 의해 “투자 중단 사태는 2016년에 시작돼 2021~2022년까지 이어졌다”고 유럽개혁센터가 분석했다. 특히 제조업과 수출지향적 서비스업에서 투자 감소가 두드러지는데, 유럽이라는 큰 시장에 대한 접근이 제한되는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영국 예산책임청(OBR)은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의 장기 생산성이 유럽연합 잔류 대비 약 4% 낮아질 것으로 추정했다. 유럽개혁센터의 존 스프링포드는 “노동자들이 최상의 장비를 갖추지 못하게 되고 기존 자본(장비 및 건물)이 노후화된다”면서 “브렉시트는 경기 침체와 실업률 상승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기 정체와 서서히 무너져 내리는 과정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4 이를 더 쉽게 말하자면 “브렉시트의 진짜 문제는 경제의 혈관에 독소처럼 남아 오랜 취약점들을 고착화한다는 점”이라며 “이는 영국을 저성장 경로에 가둔다”고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했다.

영국의 대응

영국은 2016년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1973년 영국이 유럽연합의 전신인 유럽공동체에 합류한지 43년만이었다. 영국은 회원국 최초로 유럽연합을 탈퇴한 나라다. 영국은 이후 유럽연합과 오랜 협상 끝에 2020년 12월 24일 무역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전 품목에 무관세, 무쿼터를 적용했고, 서비스 무역에는 상호 시장 접근, 내국인 대우 등 기본 원칙에 합의했다. 그러나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 무역기술장벽 등 비관세 조치에서는 개방 수준이 약화했고, 영국 금융기관의 자유로운 유럽 시장 접근을 보장하는 ‘패스포팅’ 권한이 종료되는 등 유럽연합 내 자유로운 교역과 서비스 제공에선 후퇴한 게 분명한 사실이었다.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 뒤 시장이 축소되는 것을 상쇄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눈을 돌렸다. 영국은 유럽연합을 탈퇴한 이후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으나 성과가 없었다. 미국은 영국의 최대 무역 상대국으로 2023년 기준 영국의 대미 무역수지는 890억달러 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기 집권에 들어가면서 전세계를 향해 관세를 부과해 영국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노력은 물 건너간 셈이 됐다.

중국과도 다시 접근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2020년대 초반부터 중국을 체제적 경쟁자로 정의하고 중국에 대한 의존도 축소와 자국 공급망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전략을 수립해왔다. 홍콩 인권문제, 기술 탈취 우려 등이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당 정부가 들어선 뒤 키어 스타머 총리가 런던 내 중국의 새 대사관 건립을 승인하고 중국을 방문해 투자를 유치하는 등 실용적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CPTPP(포괄적 점진적 환태형양경제동반자협정)에 가입하고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과 무역협정을 체결하거나 추진하는 것만으로는 유럽연합에서 이탈한 무역 감소 영향을 상쇄하기는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영국은 이러한 어려움을 인식하고 2025년에 새로운 산업정책을 내놨다.5 경제성장을 위한 주요 목표를 언급했는데 첫번째 내세운 것이 높은 전기요금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었다. 청정에너지에 투자하고 유럽연합 에너지 시장과의 연결을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국제적인 무역 파트너십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분열되고 지정학적으로 변동성이 크며 기술 중심의 세계를 헤쳐 나가는데 실용적, 유연적, 스마트적, 공정한 방식으로 새로운 무역 협정을 확보”한다는 게 목표다.

10년 동안 8개 핵심 산업에 투자하는 게 핵심 뼈대다. 디지털 전환과 자동화 등 첨단제조 분야에 280억 파운드를 투자하고, 철강 화학 전력 등 기초산업과 공급망을 회복하는데 투자를 집중한다. 강점이 있는 영화와 음악 등 콘텐츠 산업과 생명과학 분야를 육성하고,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에도 자주적 역량을 키우겠다고 했다. 핀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장벽 축소 등 런던을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 유지하는 전략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대응이 영국의 경쟁력을 회복하는 데 얼마나 유용할지 미지수가 크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 사회는 혼란에 빠져있다. 2026년 지방선거 결과에서 보여주듯 일자리가 사라진 런던 주변부에서는 런던의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여전히 크다. 2년 전 영국에서 쇠락한 지역을 찾아 노동자를 인터뷰한 바 있는 사회학자 이반씨는 “이들은 세계화와 더불어 더 이상 생산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신이 ‘나비에서 애벌레로 바뀐 것 같다’고 한탄하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이들의 좌절은 세계의 변화와 관련이 있는데, 전통적으로 우파로 분류되는 경제적 영역의 자유주의(신자유주의)와 좌파로 분류되던 문화적 영역의 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가 결합되어 선진국의 스탠다드가 됐다. 이후 런던 엘리트들은 이 두 가지 모두의 수혜자가 된 반면에 지방의 노동 계급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이중으로 소외됐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총리가 계속 바뀌는 등 정치마저 리더십을 상실하면서 이 같은 분열을 극복하고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방비 증액과 에너지 비용 상승 등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는 영국이 새로운 비전에 자원을 집중하기도 어렵게 만들고 있다.

2026년 2월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앞에서 유럽연합 재가입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중견국 연대 제안

브렉시트는 세계가 열린 사회에서 닫힌 사회로 후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일 뿐만 아니라, 미국-중국의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강대국의 패권 경쟁 시대에 고립주의를 택한 나라가 경제적인 취약점을 드러낸 사례로도 꼽을 수 있다.

영국이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은 자발적이었지만, 올해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기습공격은 어느 나라라도 자신의 의지와 달리 ‘공급망 단절’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줬다. 원유와 가스의 수송로였던 호르무즈 해협이 사상 처음으로 봉쇄돼 바다 위 수송선은 멈췄고 비행기는 중동 하늘을 돌아가야 했다. 원유와 가스 가격 급등은 전세계 물가를 오르게 만드는 등 주머니가 얇은 이부터 타격했다. 한국에선 원유 제품인 나프타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우려에 쓰레기봉투 품귀 현상이 일어나는 등 체감하지 못했던 일상 속 공급망 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와중에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올해초 스위스 다포스포럼에서 한 연설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강대국끼리 패권 다툼을 위해 공급망을 마음대로 쥐고 흔들고 있으니 이에 대항할 중견국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제안이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강대국들의 패권 경쟁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 규칙 기반의 질서는 희미해지고 있으며 ‘강자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약자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냉혹한 논리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식량을 조달하지 못하고,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국가는 선택지가 거의 없습니다. 규칙이 더 이상 우리를 보호해주지 못할 때,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해야만 합니다. 각자 도생하며 성벽을 쌓아 올리는 ‘요새들의 세계’는 결국 모두를 더 가난하고, 더 취약하며,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마크 카니 총리 연설)

각자도생으로 내몰리기 전에 이를 막을 수 있는 카드로 제시한 것이 ‘중견국의 연대’였다. 카니 총리는 “중견국들은 힘의 공백과 위협 속에서 각자 고립될 것이 아니라, 서로 결속하여 스스로의 방위, 인프라, 그리고 공급망에 대한 투자를 과감히 늘려야 한다”며 “유동적인 세계 정세 속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광범위한 연대와 관여를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니 총리의 제안은 2026년 6월에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도 투영됐다. 의장국인 프랑스는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 ‘글로벌 거시경제 불균형 해소 및 공급망 안정’을 내걸고 중견국과의 대화를 확대하겠다고 했다. 카니 총리가 제안한 중견국 연대 제안에 대한 논의 폭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견국 연대가 우리의 공급망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대안이 되는 길은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외 다음 시장으로 꼽히는 유럽연합은 갈수록 경제적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 올해 6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은 카니 총리의 ‘중견국 연대’ 구상에 대해 “환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그들이 이미 그렇게 해본 적이 있다. 그걸 유럽이라고 부른다”며 “과거 미국 GDP의 90%에 달했던 유럽의 GDP는 이제 70%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국의 1, 2위 수출국은 미국과 중국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브렉시트의 효과와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브렉시트는 영국 사회에 물가 상승, 일자리 불안, 이민에 대한 인식 변화 등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 둘째, 갑작스런 브렉시트는 영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이후 정치 등 사회 전반적인 에너지가 이에 휩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셋째, 공급망 다변화와 산업정책 강화가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정책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넷째, 강대국에 맞서기 위한 중견국 연대와 협력은 도덕적·정치적 메시지로서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세계경제 구조를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작동하기가 쉽지 않다.

공급망 위협은 단기 충격이 아니라, 자유무역 질서의 균열과 패권 전환이 맞물린 구조적 변화로 흐르고 있다. 그래서 전미경제연구소 워킹페이퍼는 브렉시트 10년을 세계의 변화와 맞불려 해석하고 있다. 보고서는 결론을 통해 “영국의 이러한 브렉시트 경험은 최근 미국이 시행한 새로운 수입 관세 정책 등과도 분명한 평행이론(유사성)을 가진다. 선진국 간에 무역 장벽을 다시 높이는 사례는 극히 드물며, 브렉시트 사례가 보여주듯 무역 장벽의 예고와 복잡한 이행 과정은 장기적인 정책 불확실성을 낳아 국가 경제 전반에 상당한 경제적 대가(손실)를 치르게 만든다는 교훈을 준다”고 정리했다.

영국이 빠져나갔지만 유럽연합이 입은 타격은 이보다 적었다. 김흥종 전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여러 연구에 따르면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연합 전체의 GDP 손실은 0.5~1% 수준으로 추정된다”면서 “영국과 비교하면 현저히 작은 규모다. 유럽연합은 단일시장이라는 제도적 틀을 유지했고, 내부 무역과 투자 흐름을 통해 충격을 분산할 수 있었다”고 했다. 거대한 내수시장과 공통 규칙을 유지한 경제권은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지만, 그 체제에서 이탈한 영국은 홀로 비용을 떠안아야 했음을 의미한다.6

한국 경제가 이 같은 변화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한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위주의 무역구조여서, 유럽연합에 속해있던 영국과는 다르다. 미국과 중국의 첨단기술 갈등 와중에 수출이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공급망 이탈로 인한 심각한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낮다. 다만 중국의 요소수 공급 중단과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수출 제한 등 한국은 단일 공급망 의존도가 클수록 위험 요인이 크다는 것 역시 경험했다. 향후 미국이 대 중국 압박을 거세게 한다면 앞으로 공급망이 한쪽으로 쏠릴 수 있는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제 불안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제조업 중심의 경제전략을 유지해야 한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제조업 기반이 약한 상태에서 공급망이 흔들리면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기가 어렵다. 미국이 강력하게 자국 내 공장 유치에 나서는 등 나라별 산업정책이 활발한 시기인 만큼 제조업 인프라가 약해지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경제외교 정책이 필요하다. 또 상대적으로 취약한 소재부품장비 등 풀뿌리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둘째, 중견국 연대의 의미를 깊이 세우되 실행은 자원외교 중심으로 갈 필요가 있다. 나라별 이해관계가 달라 전방위적인 중견국 동맹이 쉽지 않은 만큼 공급망 중심의 중견국 연대를 활발히 추진하는 것이다. 희토류와 원유, 반도체 등 공급망은 지정학적 요인에 의해 언제든 흔들릴 수 있으니, 이에 맞춘 정부와 기업 차원의 정책이 각각 필요하다.

셋째, 국내적으로는 경제 불평등이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번 영국 지방선거 결과에서 보듯 브렉시트에 찬성한 이들의 정치적 타격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반이민 반유럽연합을 내세운 포퓰리즘 성격의 영국개혁당이 이번 선거 승리를 기반으로 다음 총선에서 집권당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세계화로 인해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 생활기반을 잃은 이들이 보기엔 ‘개방 경제의 풍요’만을 말하는 엘리트들의 논리는 거짓일 뿐이다. 극우적 성향 뿐만 아니라 생활비 부담 하향, 의료와 교통 지원 강화를 내세운 이들 역시 정치적으로 약진하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브렉시트 10년을 검토하며 “경제통합이 깊어질 때의 손해와 경제통합에서 이탈할 때의 손해 사이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장 연구위원은 “상품과 생산요소의 자유로운 교환은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이익을 경쟁에서 뒤처진 기업, 노동자, 지역에 재분배하는 포용적 자유무역 질서의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재 진행형인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주는 교훈”이라고 했다.7

  • 1 브렉시트 5년 : 평가와 시사점, KIEP 오늘의 세계경제, 2025년 2월18일
  • 2 국제금융 인사이트 2026년 6월, 국제금융센터
  • 3 THE ECONOMIC IMPACT OF BREXIT, NBER, 2025 November
  • 4 How Brexit has made Britain poorer, Guardian, 2026.6.14
  • 5 The UK's Modern Industrial Strategy, The Secretary of State for Business and Trade, 2025 November
  • 6 브렉시트 선택 10년 “영국 경제에 구조적이고 지속적인 손실”, 김흥종 주영 한국 대사, 2026년 1월8일
  • 7 브렉시트 10년, 현재 진행형인 이유, 장영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2026년 6월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