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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워킹맘의 버지니아맘 도전기(1)_학교 선택부터 등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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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준비물 목록에 맞춰 준비한 개학 학용품입니다. 한국에서 준비하던 신학기 용품들과 많이 겹치는데, 미국 교실에선 이 중 일부 품목은 교실에 ‘기부(donation)’하는 형태로 한데 모아두고 공동 사용합니다.

유튜브 시대에 발맞춰 연수기 제목을 최대한 자극적으로 뽑았음을 고백합니다. 썸네일이 요란할수록 내용은 허접한 게 요즘 영상계의 국룰이라죠. 한 달 전 초등학생 딸과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IAD)에 내리기 전까지 10년여간 강남 옆동네에서 애를 키우긴 했습니다. 다만 기자들 으레 그렇듯 워낙 바쁜 탓에 줄곧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신세를 면치 못했고, 북미 한인 사교육계의 메카라는 이곳 페어팩스에서도 버지니아맘을 표방하기엔 정보도 경험도 (무엇보다 비자 기간이…) 크게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감히 자녀 교육을 주제로 글쓰기에 돌입한 건, 천재일우로 찾아온 연수 기간 동안 그간의 부모 노릇 부족함을 어떻게든 반까이해 보겠다는 의지가 다른 목적의식들을 훌쩍 앞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마음 한구석에 늘 자녀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그래서 이 1년만큼은 부디 잘 보내고 싶은 기자 엄빠들이 적어도 저보단 덜 헤매길 바라는 마음으로 좌충우돌 경험담을 적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제한된 경험을 토대로 한 글임을 감안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왜 미국인가

엄격해진 이민자 정책과 불리한 환율, 높은 물가에도 불구하고 미국 연수를 택한 배경에는 ‘단 1년이라도 아이에게 미국 생활을 경험시켜 주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시쳇말로 쌍팔년도 사고방식 같아 좀 창피하지만, 어학연수도 안 다녀온 토종 엄마가 17년 기자생활하며 느낀 아쉬움을 자식에게 투사한 셈입니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보호자 없이 학교와 학원을 오간 딸아이의 영어학원 선생님이 때마침 “○○이 가까운 친구들은 다들 리터니(Returnee, 귀국 학생)”라는 솔직한(?) 조언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리터니란 말을 그날 처음 들어서, 대충 짐작해 알아들은 척하고 넘어갔던 건 여기 처음 적네요.

나중에 듣게 됐는데 동네 리터니 친구들의 미국 거주지는 대부분 샌디에이고 인근이었다고 합니다. 요즘도 아이 친구 중 한 명이 그곳에서 한없이 화창한 날씨 사진과 간혹 집 안까지 들어오는 도마뱀 포획기 등을 보내고 있습니다. 만약 다시 연수지를 고른다면 저는 미 서부를 최종 리스트에 꼭 올릴 것 같습니다. (생활비가 여기나 거기나 전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수준이라 가능한 가정입니다.) 어쨌든 돌연 결정된 미국행에 부정적 반응을 보일 줄 알았던 딸아이는 비행기 날짜를 알려주기가 무섭게 카톡 프로필에 D-세자리 숫자를 입력하더군요. 출국이 다가올수록 치솟는 달러 환율에 심박이 요동쳤지만, 그녀는 이미 주변 모두에게 가슴 벅찬 작별을 고한 뒤였습니다.

한국의 예비소집일에 해당하는 개학 전 ‘Back to School Day’ 학교 건물 앞 풍경. 부모나 보호자가 아이의 손을 잡고 미리 교실을 찾아 선생님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확인한 뒤 학용품을 두고 옵니다. 안면이 있는 학생 및 가족들끼리 친분을 쌓고, 학교에서 준비한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기도 합니다.

학교선택: 세가지기준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서도 동부, 그 중에서도 워싱턴 DC를 연수지로 정했다면 어김없이 네이버 카페 ‘버지니아맘(DMV) 모여라~’에서 헤메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DMV는 DCㆍMarylandㆍVirginia의 머릿글자로 북버지니아 인근의 3개 지역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해있지만 지역별로 학제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여기서 학교를 보낼 예정이라면 자녀가 각 지역에서 몇 학년으로 편입되는지, 어느 쪽이 아이와 부모의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거주지 결정 이전에 미리 따져보는 게 좋습니다. 이왕이면 거주 후보지를 관할하는 교육청에 아이의 생년월을 적시한 이메일을 보내 정확한 답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제 경우에는 ‘중학교(메릴랜드)냐 초등학교(버지니아)냐’를 선택해야 했습니다. 미국에서 학업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판단 하에 상대적으로 적응이 손쉬울 것으로 예상되는 버지니아를 골랐습니다. 이왕이면 미국에서 중학교를 보내보라는 주변 권유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낯선 문화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가 자칫 사춘기와 성적 스트레스를 동시에 겪으면 제게 지옥문이 열릴 것 같았습니다.

미국 공립학교 평가ㆍ비교 사이트인 GreatSchools.org에는 한국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민감한 정보가 비교적 자세히 공개돼 있습니다. 우선 학교별로 점수(10점 만점)를 매겨놓은 것부터가 신선한 충격입니다. (대체적으로 6점 이상을 받은 학교 선택을 권한다지만, 1년 지낼 초등학생의 경우는 이 점수 자체에 지나치게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전현직 특파원 선배들의 조언도 있습니다.) 사이트에는 이 점수를 어떤 기준으로 도출했는지는 물론,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과목별)와 인종 비율, 저소득층과 장애인 비율뿐 아니라 각 그룹별ㆍ성별 세부 학업 성취도 및 출석률, 실제 학교를 보냈던 학부모들의 후기와 평점까지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 중 ‘인종 비율’ 항목을 최우선으로 봤습니다. 역시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인종ㆍ다문화 환경에 비주류로 편입해 기존 학생들과 어울려야 하는 입장에서 가장 의미있는 지표였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영어 환경에 다소 익숙하지 않고, 학내 ESL 코스 수강이 예상되는 상황이라면 동양인 비율이 조금 높은 학교를 선택하는 게 연착륙으로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와서 보니 학년에 관계없이 초기에는 등교 거부로 갈등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하네요.) 버지니아맘 카페에 자주 언급되는 학교들은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이 많은 학교일 가능성이 큽니다. 저희는 ‘아시안 비율 30~40%’ 기준으로 학교를 선택했는데, 아시아가 넓은 탓인지(…) 교내 한국 학생 수가 전 학년을 통틀어 손에 꼽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전반적인 학교 분위기는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해 만족합니다.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청에서 학생 등록을 마친 뒤 나눠주는 학교 학용품(School Supplies) 보따리 모습. 실제 학교 준비물 리스트와는 상세 스펙들이 조금씩 달랐지만, 파일·노트·종이·펜·메모지·색연필·마커·헤드폰 등이 다양하게 들어 있습니다.

미국 내 학업 성취도가 중요한 상황이라거나, 1년 이상의 체류 기간을 확보할 수 있는 경우에는 AAP(Advanced Academic Programs) 센터스쿨 여부 역시 학교 선택에 주요 요소로 고려할 수 있습니다. AAP는 미국 내에서도 학군지로 꼽히는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가 운영하는 일종의 영재 프로그램입니다. 센터스쿨 재학생이 AAP에 선발되면 익숙한 자기 학교에서 심화 수업까지 소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반면 타 학교 소속 AAP학생들은 기존 학교 수업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심화 수업을 위해 별도로 센터 스쿨을 찾아가야 한다고 하네요. (제가 아직은 버지니아맘을 겨우 흉내내고 있는 관계로) AAP관련 자세한 정보는 유학원이나 DMV 카페 등에서 좀 더 검색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등교준비: 예방접종, 시험, 준비물

미국 도착 뒤 아이와 헤쳐온 각종 절차는 지나고 보니 ①몸 ②머리 ③도구 세 범주에서 ‘등교 적합’을 판정받는 과정이었습니다. 먼저 학생이 충분히 건강한 상태라는 걸 확인받아야 하는데요, 한국 정부가 발급하는 예방접종 증명서(영문본)와 별개로 TB test라고 부르는 결핵 검사가 필수입니다. 더러는 한국에서 출발 전에 결핵 검사를 받고 증명서를 떼 오는 경우도 있는데 간혹 미국 내에서 실시한 검사 결과만 인정하는 학교도 있다고 하니 만약 한국에서 검사를 받을 예정이라면 학교 측에 이 부분을 확인하는 편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여기서 종합 의료 체인인 CVS를 찾아가 TB테스트를 유료로 받았는데요, 나중에 보건소 격인 주립 공중보건센터(Fairfax County Health Department Clinic Services)에서 ‘무료 테스트가 가능했는데 돈을 왜 썼냐’는 얘길 듣고 1주일 전의 무지함을 탄식해야 했습니다.

공중보건센터는, 아이가 한국에서 법정 예방접종을 착실히 받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페어팩스 교육청 요구 기준에 미흡하다고 해 안내를 받고 찾아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에게 ‘당장 2가지 백신을 더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당황하기도 했지만 백신 규정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차분히 읽어보니 11-12세에 맞아야 하는 Tdap(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혼합백신이 미접종 상태더군요. 불과 몇 달 전 만 11세가 됐는데 챙기지 못한 겁니다. 그와 함께 수막구균 백신(Meningococcal ACWY Vaccine)도 맞아야 했는데 찾아보니 한국은 수막구균 유병율이 크지 않아 기본접종 대상이 아니지만, 미국과 동남아ㆍ중국ㆍ유럽 등지에서는 상대적으로 발병률이 높아 영유아 및 11~12세에게 기본접종을 시킨다고 합니다. 진료실에서 “메닝~고코칼”을 5회 연속으로 들었(지만 뜻을 짐작조차 할 수 없)던 때의 당혹감이 지금도 쉽사리 잊혀지지 않네요. 물론 모든 백신은 안전하고, ‘무엇보다 무료’라는 대목에서 금새 안도감으로 반전됐습니다.

페어팩스 교육청 안내에 따르면 초등 고학년은 접종 증명과 함께 신체검사 결과지도 학교에 제출해야 합니다. 교육청 건물 내 조지메이슨 대학병원 출장소에 별도 예약이 가능했는데요, 신체 계측 등 일반적인 검사 뿐 아니라 의료진 면담을 통해 수면시간과 영양 상태, 가정 내 화기(火器) 보유 유무 등을 꼼꼼히 체크받았습니다. 간호사들이 전반적으로 쾌활해 영어가 짧은 어린 학생들도 부담없이 검사를 받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학생들이 몰리는 시기에는 무료 검사 예약이 꽉 차서 유료 사설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니 시간 여유를 넉넉히 갖고 교육청에 문의하시길 권합니다.

신체검사가 이뤄지는 공간 한 켠에 붙은 ‘어린이 건강 수칙’. 9시간 수면과 2시간 스크린타임 제한 규칙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신체검사가 이뤄지는 공간 한 켠에 붙은 ‘어린이 건강 수칙’. 9시간 수면과 2시간 스크린타임 제한 규칙이 특히 눈에 띄었습니다.

학업 성취도 평가는 교육청 교실에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됩니다. 아이를 데려다준 뒤 나와서 다른 일을 보다가 종료 즈음 데리러 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소한 팁이라면, 가급적 남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위치의 책상에서 시험을 보는 게 유리한 것 같습니다. 여러 학년 학생들이 한 교실에 섞여 각자의 시험지를 푸는데 저희 아이는 옆 학생에게 방해가 될까봐 Speaking Test를 모기 소리로 녹음했다고 하더군요. 시험 당일 교육청에서 지체없이 점수를 알려주는데, 아니나다를까 스피킹 점수가 상대적으로 부진했습니다. 자녀가 ESL 과정을 수강해야 한대도 크게 상심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페어팩스 카운티 내 학생 과반(51%)이 영어가 아닌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 중이라니까요. 

개학을 일주일~열흘 앞둔 시점이 되면 각 학교가 준비물 리스트를 온라인으로 공지합니다. 저는 이때까지 ‘높이 4.5cm 이하 A4사이즈 직사각형 바구니’ 같은 건 한국 초등학교에서만 주는 목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에 질세라 여기서도 ‘Wide ruled 간격의 160페이지짜리 3분류 파란색 표지 노트’ 등으로 빼곡한 리스트를 배부하고 있었습니다. 내 미국 전화번호도 아직 못 외운 와중에 온오프라인 쇼핑 능력을 총동원해 준비물을 완비하고 성취감을 만끽한 것도 잠깐, 예비소집일에 교실을 찾았다가 학용품 회사 이름이 크게 찍힌 박스가 몇몇 자리에 다소곳이 올라가 있는 충격적 장면을 목도했습니다. 검색해보니 적잖은 학교의 학부모교사회(PTA)가 학용품 회사와 일괄계약을 맺고 준비물 목록 작성 단계부터 함께 일을 진행하는 구조더군요. 공지문 한켠에 찍혀있던 ‘Sprout’가 학용품 회사 이름이라는 걸 까맣게 몰랐던 외국인 엄마는 뒤늦게야 ‘Prepacked School Supply Kits’의 존재를 알았지만 만시지탄이었습니다. 학교 코드만 알면 온라인으로 준비물 일체를 교실로 직송할 수 있다고 하니 훗날 오시는 분들은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교육청 선생님과 학업 성취도 평가를 받으러 가는 아이의 뒷모습. 결국 부모의 역할이란 ‘어디로 갈지 알려주고, 가는 뒷모습을 오래 지켜보는 것’뿐임을 이곳에서 다시금 느끼고 있습니다.